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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Oct 12. 2023

사위가 오빠라니...

이렇게 수줍게 손 잡을 일이야?

추석 연휴에 언니들, 형부들과 다 같이 모여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엄마 요양원 근처에 숙소를 잡아 1박 2일로 시간을 보냈는데, 오랜만에 엄마를 보는지라 설레었다. 


요양원에 가서 엄마를 모시러 왔다고 말하고 1층에서 기다렸다. 보통 엄마를 모시러 가면 요양원 직원의 손에 이끌려 나온 엄마가 나를 보고 "아이고, 네가 여기 어떻게 왔냐? 나 여기 있는지 알았냐?"라며 반가워하시곤 했다. 그럼 웃으면서 "그러엄~, 엄마 여기 있는 거 알고 엄마 보러 왔지"하면서 엄마를 끌어안는 게 우리의 인사였다. 


이번에 만난 엄마는 조금 달랐다. 지난번보다 특별히 더 오래 못 본 것도 아닌데 내 얼굴을 보자 "아이고, 우리 OO이 아니냐? 아이고, 어떻게 왔냐"며 반가워하는 말 끝에 울음이 묻어나고 눈물이 맺혔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눈물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같이 눈물이 쏟아져 "우리 엄마 갑자기 왜 울어?" 하며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는 반가워서 그런다며 계속 눈물을 훔쳤다.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매일 오전 목욕탕 가는 게 일과인 엄마였는데, 치매가 심해진 후로는 씻지 않으려 하고 옷 갈아입는 것도 싫어한다. 엄마가 평소에는 순하다가도 목욕시키려 할 때는 화를 내고 심지어 직원들을 때리기까지 해서 직원분들이 엄마를 목욕시키지 못한다며 자주 고충을 이야기했다. 


이번에 엄마를 모시러 갔을 때 직원분들이 엊그제 엄마를 목욕시켰다며 뿌듯해하셨다. 목욕 의자에 앉혀서 20분 동안 이야기하며 진정시키고, 목욕탕으로 이동해서도 10분 넘게 대화하며 진정시킨 후 겨우 목욕을 했다며 세상 개운하다고 하셨다. 지난번에 엄마를 모시고 나왔을 때, 나도 엄마를 씻기려다 결국 포기했기에 어떤 마음인지 공감이 되었다. 



숙소에서 엄마와 다 같이 둘러앉아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자녀들을 헷갈리기 시작하시는 엄마는 이제 사위를 낯선 사람 보듯 했다. 언니나 내가 엄마에게 주전부리를 드리면 맛있게 드시면서도, 사위들이 엄마에게 간식을 드리면 예의를 차리며 오히려 상대방에게 먹을 것을 권했다. 우리와는 편하게 손을 마주 잡고 이야기하다가도, 사위들이 엄마 손을 붙잡으면 수줍어하면서 손을 빼려고 했다. 사위들이 어깨를 주물러주면 부끄러운 듯 웃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엄마에게 세수하자고 했는데 역시나 엄마는 싫다고 했다. 그러다가 형부가 "장모님~ 저랑 같이 가요~"하면서 욕실로 이끌자, 차마 거절을 못하고 수줍어하면서 따라갔다. 너무 쓰다며 약을 안 먹으려는 엄마에게 언니가 "엄마, 그럼 '오빠야'랑 약 먹을까?" 하면서 형부를 불렀다. '오빠야'가 약을 내밀자 엄마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순순히 약을 먹었다. 


수줍고 부끄러움 많은 엄마의 풋풋한 시절을 살짝 훔쳐본 것만 같다. 






치매에 걸리면 예의도 없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여전히 낯선 사람에게 예의를 차리고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다만 엄마 기억 속에서 낯익은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낯설어지는 것뿐이다.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인 든든한 존재였는데, 엄마의 기억 속에 편안하고 익숙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남지 않을까 봐... 그래서 엄마가 더욱 외로워질까 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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