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시던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여 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몸이 붓는 가벼운 증세였다. 혈압 때문인가 싶어 혈압약을 바꿔보고 병원도 바꿔봤으나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아빠에게 같이 큰 병원을 가보자고 해도 괜찮다고 알아서 하겠다고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빠가 피부가 까매지면서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아 서울의 A 대형병원으로 갔다. A 대형병원에서 내과, 신경과, 내분비내과, 호흡기내과까지 온갖 종류의 진료과를 계속 돌면서 진료를 받았으나 병명을 찾지 못했다. 부정맥 소견이 있어 인공심장박동기 수술을 받고, 온갖 약을 써보고... 그러는 사이 아빠는 더 안 좋아졌다.
거동이 불편한 아빠를 모시고 다른 병원을 가기도 힘들어 내가 아빠의 진료기록과 검사기록을 모두 떼어서 B 대형병원 진료를 잡아 의사에게 내밀었다. 이런 증상과 검사결과가 있는데 좀 봐달라고...
B 대형병원의 의사는 스윽 훑어보더니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이것만으로는 정확히 알기 힘들단다. 그리고 지금 병원의 주치의가 누구냐고 묻고는, 자기도 아는 주치의인데 실력 있는 사람이니 거기 병원에 맡겨보란다.
다시 A 병원으로 돌아와 진료과를 뱅뱅 돌았다. 여전히 의사는 병명을 모르겠다 하고 날로 아빠는 안 좋아졌다. 안 되겠다 싶어 C 대형병원으로 갔다. 그때 가져갔던 아빠의 진료기록과 검사결과는 A용지 한 묶음이었다. 아마 300여 장도 넘었을 것 같다.
새로운 병원에서 또 온갖 검사를 다 할까 싶어 아빠의 진료기록과 검사결과 중 이상이 있거나 중요해 보이는 것만 내가 다시 3장으로 요약했다. 이거라도 제대로 봐달라는 마음이었다.
C 병원의 진료교수는 아빠를 유심히 보고 내가 요약한 진료기록 살펴봤다. 그러더니 점심을 포기하고 30분 넘게 한 뭉텅이의 진료기록을 한 장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C 대형병원에 다시 입원해서 검사를 받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검사가 끝나갈 무렵 주치의가 내게 전화해서 알려준 병명은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였다. 이미 상태가 많이 안 좋았던 터라 'A병원에서는 왜 이걸 알아내지 못하고 이제야 발견할 수 있었을까?'라는 내 질문에 주치의는 "저희 교수님께 진료를 받아서 잘 알아낸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사이 증상이 심해져서 알게 된 것일 수도 있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아빠가 싫다 해도 더 일찍 모시고 병원에 갈걸...
한 병원만 믿지 말고, 다른 병원도 더 일찍 알아볼걸...
아빠가 증상이 심해지면서 병을 알 수 있는 징후가 하나둘씩 나타났을 때, 의사만 믿지 말고 내가 더 검색해 보고 공부해 볼걸...
후회가 가득했다. '몸상태는 아빠가 더 잘 알아서 하실 테고, 병은 의사가 더 잘 알겠지'라고 생각하며 뒷짐 지고 있던 순간들의 내가 미워졌다.
주치의는 "아빠가 자가면역질환이라 특별한 치료법은 없고 증상을 줄여주는 약을 쓴다"면서, 아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은 갑자기 심정지가 오거나 폐렴 합병증이 생기는 것이라 했다.
낚시를 좋아해서 새벽마다 나가서 종일 낚시를 하고 돌아오시던 아빠는, 이후 내내 집에서만 지내셨다. 까맣게 변하고 부어버린 얼굴 때문에 외모도 달라지자 아빠는 사람 만나는 걸 꺼려하셨다. 종일 TV를 보시다가 심심하시면 창가에 서서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던 아빠의 뒷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당시 아빠가 얼마나 붓고 까매졌는지 의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언니 손이랑 비교해서 찍어둔 사진이다.
그렇게 1년 정도가 흘렀을 무렵이다. 엄마의 어깨 관절이 안 좋아져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때문에 엄마는 며칠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그 사이 아빠의 식사를 챙길 사람이 없으니 내가 집에 내려가있기로 했다.
집에 내려가서 이틀째였나, 아빠는 감기 기운이 있다며 기침을 하셨다. 생강차를 끓여드리고 병원에서 약을 받아와 드렸지만 차도가 별로 없었다. 그다음 날 아침 아빠는 주섬주섬 짐을 쌌다. 기침이 심한데 병원에 가면 아무래도 입원하라고 할 것 같다며 입원생활에 필요한 짐을 챙기기 시작하셨다. 아빠의 짐을 같이 챙겨 집 근처 병원으로 가는 길...
어젯밤에 아빠는 기침이 심해서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하셨다. 언제 어디서나 머리만 대면 곤히 잠드는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밤새 아빠가 기침하는 줄 알았으면 따뜻한 물이나 차라도 드렸을 텐데, 쿨쿨 잘도 잔 게 속상하고 죄송해졌다.
병원에 갔더니 엑스레이를 찍고 역시나 폐렴이라며 입원하라고 했다. 입원실에 누운 아빠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지만 이전처럼 며칠 약 먹고 치료받으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루 이틀이 지났는데도 아빠의 상태가 낫지 않았다. C 대형병원의 주치의에게 연락했더니 학회를 가서 다음 주 월요일에 온다고 했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다. 지금 아빠를 모시고 올라가면 입원할 수 있냐고 병원 측에 물었더니, 병실이 없어서 응급실에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당장 간다 해도 병실도, 주치의도 없다. 마음 한 켠으로는 몸이 안 좋아 오래 앉아있기도 힘들어하시는 아빠를 모시고 금요일 저녁 막히는 고속도로를 혼자 몇 시간이나 달려갈 자신이 없기도 했다. 아빠에게 내일 엑스레이 한 번 더 찍어보고 안 나아지면 서울의 C 대형병원에 가자고 했다.
힘없이 웃으며 "내일이라고 뭐가 더 나아지겠냐?"라던 아빠. 어쩌면 몸이 안 좋은 걸 느꼈는데도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나중에서야 계속 맴돌았다.
(.... 내용이 길어져서 다음 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