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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Aug 19. 2022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에 대한 디즈니의 헌사

판타지아(1940)



1940년에 개봉된 디즈니 역사상 가장 실험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영화, <환타지아>. 음악과 인간이 그려낸 이미지의 마리아주를 꿈꾸며 디즈니에서 야심 차게 거대한 예산을 들여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계속해서 시리즈로 만들려는 처음 계획과는 달리 흥행 참패로 인해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도 82년 최초로 소개된 이후 91년에 재개봉되었지만 서울 관객 십만 천이라는 얄팍한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만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후 그 실험적인 기법과 그림이 찬사를 받으며 재평가되었고 미국에서 꾸준히 계속해서 재개봉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은 이 영화가 1940년 작품이라 우리나라에선 저작권이 소멸되어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 무려 유튜브에 풀버전이 올라가 있다는 것. 풀버전을 볼 수 있는 링크는 아래 '볼 수 있는 곳'에 남겨두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는 주로 음악과 영상과의 관계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선 숲 해설사의 입장에서 애니메이션을 통해 작화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자연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총 8곡의 음악이 소개되는데, 오늘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두 번째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부분과 네 번째 음악인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부분이다.

https://youtu.be/_N0zs2AyCWA


이 음악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숲 속의 사계절을 만난다. (원래 음악적 순서가 아닌 사계절 순서로 바꾸어 연주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 음악이 시작되고 숲 속에선 날개 달린 숲의 요정이 깨어나 꽃과 나무에게 빛의 씨앗을 뿌린다. 그 빛은 거미줄에 걸리는 이슬로, 민들레의 씨앗을 퍼트리는 바람으로, 하루 저녁에 불쑥 솟아나는 버섯의 붉은 갓으로 그 형태를 바꾼다. 꽃받침 채 물 위에 떨어진, 아마도 사과 속이나 벚나무 속일 것으로 추정되는 꽃의 꽃잎은 솟아오르면서 뒤집어져 드레스의 치마가 된다. 기포를 뿌리며 물속을 헤엄치는, 숲 속의 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금붕어가 춤출 때 그 화려한 지느러미는 꽃이 되고, 엉겅퀴 꽃과 어느 콩과 식물의 것으로 보이는 꽃으로 보이는 이들의 군무는 해가 뜨기 전 숲 속 깊은 어둠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잠을 깬 요정들은 숲의 나무들에게 시간의 변화를 알리는 듯 잎을 노랗고 빨갛게 물들이고, 클레멘티스로 보이는 미아리아재비과 꽃의 씨와 아마도 박주가리로 보이는 열매의 씨는 새하얀 레이스 치마가 되어 공기 중을 떠돌기 시작한다. 바람이 강해지고 고사리가 말라가면 숲의 요정들은 얼음 옷을 입고 숲 속 나무와 풀에 서리를 조각하기 시작하고 하늘에서는 하얀색 눈의 결정이 내려온다.


https://youtu.be/E4AU3V58gqY


네 번째 음악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통해서는 지구와 생명 탄생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지구와 생명 탄생의 이야기를 다루기엔 짧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짜깁기해 연주된 음악은 꽤 길다.


이 음악을 원초적 삶의 표현이라고 한 작곡가의 말에 따른 것인가?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영상은 지구 생명의 역사이다. 지구의 시작에서부터 생명의 탄생, 그리고 공룡의 시대까지의 이야기. 생에 대한 의지라고 하는 것이 처음 생겨나는 순간, 처음으로 하는 행동이 놀이처럼 보이는 것이 놀랍다. 그 이후 생겨난 생명체들의 다양한 모습은 그 자체로 생명의 축제 같다. 여러 가지 모습의 공룡들과 함께 쥐라기 양치식물들에 대한 상상도 함께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 속 그들의 멸종을 야기한 것은 변화하는 환경이었다. 그들의 시대가 끝난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의 시대도 끝이 날까? 그러면 그때 많은 식물종이 사라지는 동안 은행나무가 살아남았던 것처럼, 인간의 시간이 끝나는 그 순간에도 살아남는 나무가 있겠지? 그 나무는 무엇이 될까 하는 뜬금없는 의문이 생긴다.




8가지의 음악이 소개되면서 중간중간 사회자의 내레이션도, 음악회처럼 인터미션도 있다. 나머지 6개의 작품도 모두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줄 수 있으니, 시간이 되는 분들은 시청해 보시길 추천한다.






뜬금없는 글1


90년대에 들어서야 이 야심 찬 프로젝트를 부활시키려는 계획이 발동되었고 2000년 2월에 드디어 <환타지아 2000>이 개봉되었으나 여전히 흥행에는 실패한다. 새로운 환타지아에서 추천하는 에피소드는 마지막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불새>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의 저작권은 우리나라에서도 버젓이 살아있어 대놓고 링크를 공유할 수는 없지만, 꼭 찾아보시길 추천한다. (유튜브에서 'fantasia stravinsky L'Oiseau de feu'로 검색 가능)


당당한 뿔을 가진 순록의 숨결에 녹은 고드름이 떨어져 깨어난 정령은 나무의 새순을 틔우고 초본의 꽃을 피운다. 아마도 벚나무로 보이는 나무에 분홍 꽃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분화구 속 잠이든 불새를 깨우고 불새는 화산을 폭파시켜버린다. 흐르는 용암은 술과 들판을 불태우고 나무 위로 피신한 정령마저 집어삼켜버린다. 모든 것이 재가돼버린 곳에서 다시 한번 순록은 정령을 불러내고, 처참한 잿더미에 흘린 정령의 눈물이 땅에 떨어지자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새로운 시작에 고무된 정령은 환호하고 다시 한번 그 땅에 비를 불러온다. 떨어지는 빗줄기 아래 새로운 싹이 트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땅은 초록으로 물든다. 마지막 그녀가 날아가는 뒤로 잿빛 땅이 초록으로 변해가는 장면과 정령의 환희에 찬 표정은 꽤나 감동적이었다.



뜬금없는 글 2


1940년 버전의 환타지아에는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역할에 대한 편향적인 시각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해 디즈니 플러스에서는 해당 부분에 대한 편집을 하는 것이 아닌 영화 시작 전 이에 대한 인지와 양해를 구하는 문구를 영화 시작 전에 넣고, 관련된 자세한 내용이 들어있는 웹페이지의 링크를 알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개인적으로 지난 과오를 수정하고 지워버리는 것보다 이렇게 알리고 인정하는 방식이 관객으로 하여금 해당 이슈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같아 더 좋은 것 같다.


https://youtu.be/bmpt-s-zY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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