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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Aug 16. 2022

일본 산림 감독관의 좌충우돌 일상 코미디

우드잡(2014) - 야구치 시노부

지금이야 일본의 장인정신을 일본을 갈라파고스화 시킨 주범이라느니 혁신의 방해물이라느니 하는 말을 하며 폄하하는 시선도 있지만, 20년 아니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일본에게서 배워야 할 것으로 평가되었다. '오사카 상인들'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도요다의 6 시그마 이론의 대유행 같은 것도 그 일본의 장인정신이라는 것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 것일 테다. 일본 영화 아니 일본 소설, 일본 애니를 통틀어 일본에서 만들어 내는 이야기 중에 특정한 직업을 다루는 이야기는 거의 모두 이런 장인정신에 대한 찬양을 기반으로 한다. 일본의 임업을 다루는 이 영화 '우드잡(2014)'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정신은 아마도 이 대사 한 줄로 설명된다.

산을 우습게 보면 죽을 줄 알아


기본적으로 코미디 영화의 형식을 따르는 이 영화에서는 임업이라는 직종을 통해 아무런 꿈도 의욕도 없던 어린 주인공이 장인정신을 배우면서 성장하는 이야기, 성장물이자 힐링물이다. 대학에 떨어지고 여자 친구에게도 차인 히라노는 욱하는 마음에 발견한 취업 전단지 표지모델에 끌려 '산림연수생' 프로그램에 지원을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전화기도 망가져서 꼼짝없이 연수를 받게 되고, 실습을 나간 가무사리 숲에서는 강사였던 요키와 전단지 모델이었던 나오키에게 조금씩 인정을 받게 된다. 전 여자 친구와 함께 취재 온 대학의 동아리 대원들을 상대하면서 임업인의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데 촌장의 아들이 실종되면서 가무사리 숲과 마을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영화의 배경은 나고야와 오사카 사이, 숲이 65% 정도를 차지한다는 미에현의 산간 가무사리 마을이다.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오지. 이곳의 주 산업은 임업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보면서 느꼈던 것은 임업이라는 것이 참으로 체계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무는 하나하나 잘 관리되고 있고 잘 선별되어 간벌한다. 나무를 베어낸 뒤에서는 다시 묘목을 심는다. 작업을 수행하는 산을 메우고 있는 쭉 뻗은 편백나무들이 너무나도 멋져 보였고, 그 임업이라는 직업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산을 신성하게 여기는 태도 역시 부럽다고 느껴지게 만들었던 영화였다.


그런데 다시 본 가무사리 숲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종 다양성에, 인간의 손으로 줄 맞춰 키워놓은 듯한 모양을 가진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숲으로도 보였다. 하지만, '이걸 다 잘라 팔면 억만장자'라는 말에 세대를 이어가는 숲의 가치를 (여전히 인간 중심이기는 하지만) 하는 마을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변해가는 히라노의 태도를 통해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숲의 신을 기리고 존중하며 마츠리와 노동요를 통해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은 그런 전통을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과 비교되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영화는 재미있다. 갓 고등학교를 마친 도시 아이가 현실을 배워가는 모습도,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뜨는 모습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맛깔난 인간관계를 통해 좌충우돌 부딪혀 가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도 가볍게 웃고 감동받으며 볼 수 있다. 불편한 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모든 걸 차치하고서라도 아름다운 가무사리 숲과 쭉 뻗은 편백나무들과 계곡물 흐르는 사이 바위를 덮고 있는 아름다운 이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는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 히라노의 기억을 깨우는 나무의 내음은 숲 속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에 일어나 맡았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 일 년을 지내는 동안 히라노의 감각을 잔뜩 벼려놓은 숲. 우리가 숲이 좋은 이유, 숲에서 나를 더 가까이 찾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뜬금없는 덧글 1


이 영화는 미우라 시온의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원작으로 하지만 대략적인 배경과 인물들의 이름 외에는 거의 비슷한 것이 없다고 한다.



뜬금없는 덧글 2


 '산을 우습게 보면 죽을 줄 알아'라는 말이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다. 혹시 그 '산'은 '자연'이고 지금 우리 모두는 자연을 우습게 보았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어서일까? 빨리 지구의 마지막 한 사람도 산을, 자연을 우습게 보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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