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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Sep 02. 2022

서울 속 무인도의 생태 엿보기

김씨표류기 (2009) - 이해준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 표류했던 '캐스트 어웨이'에 대한 유쾌한 한국식 대답일까 아니면 사람들로 가득한 공항에  표류하게 되었던  '터미널'에 대한 직설적인 해석일까? 그것도 아니면 두 작품 모두에서 주연을 맡은 톰 행크스에 대한 오마주일까?


예전에 영화를 보고 난 뒤 한강에도 섬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의식의 표면에서 지식과 정보로 인식되었다. 그래도 영화를 본 시점이 대학시절  보낸 시간을 소급해 서울 생활 오륙 년 차 정도는 되었을 때인데,  섬이라고는 지하철 역 이름에 나오는 여의도와 뚝섬 외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살고 장소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일천함에 부끄러웠던 순간.


영화 속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이 코너에 몰린 주인공은 한강 다리 위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 한가운데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금지된 밤섬에 갇힌 주인공은 그곳에서 홀로 살아남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사투를 강 건너 아파트 속,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과 담을 쌓은 히키코모리 여인이 그를 응원한다.



사실 영화 속에서 밤섬의 생태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주인공을 쫒는데 바빠 그 옆과 뒤를 살피는 여유가 없다. 하지만 언듯 보이는 밤섬의 생태는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보기에는 좀 빈약하다. 다양성도 밀도도 부족해 보이고 자라고 있는 식물들은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강기슭에는 밀려온 쓰레기들이 가득하다.


이런 밤섬에서 곯은 배를 채우려 물고기를 잡으려고도 오리를 잡아보려고도 했으나 다 실패하고 포기한 주인공이 주운 세제로 머리를 감는 순간 물고기는 배를 뒤집은 채 떠오른다. 그리고 그 물고기를 구워 먹은 뒤 남은 찌꺼기를 먹은 새도 그 옆에 죽어 나자빠진다. 코미디의 옷을 입고 있지만 웃음 뒤에 남는 것은 공포다. 지금 내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각종 화학물질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에게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새똥에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씨앗에 기대를 걸고 땅을 일구는 주인공은 그 목표를 통해 삶을 이어갈 의지를 찾는다. 하지만 그 목표가 쓰레기 속에서 발견한 짜파게티라고 하는 것이 조금 슬프다.


밤섬에 갇혀 유람선을 탄 사람들에게 구조요청을 하는 주인공에게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주는 장면을 보고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개인의 비극이 희극으로 해석되고 소비되는 순간이다.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심리적 기제가 작용되겠지. 그러다 짜장면 배달부가 직업적 자존심을 걸고 오리배의 패들을 밟아 배달 왔을 때 탈출하지 않은 주인공을 보았을 때는 인간들이 가지는 아집과 고집을 본 것 같았다. 상황에 익숙해진 인간이 그 상황에서 스스로 세웠다고 믿는 목표에 몰입하여 퇴보하는 장면을 보는 듯 해 들었던 슬픔이었다.





그러다가 숲해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과학적 지식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자연과 생태에 대한 해설을 할 때 어떤 시각과 태도를 가지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주 많은 자연 속 대상과 현상을 볼 때 우리는 상상하고 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믿고 있는 가치를 잊지 않고 자의적이고 작위적이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는 밤섬 생태 기념관을 방문해 봐야겠다. 가을쯤에는 방문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그곳에서 망원경으로 밤섬을 보면 표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수도...





뜬금없는 덧글 1


현재 밤섬은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방문이 금지되어 있다. 일반인들은 영화에 나와 있듯이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면서 보거나, 마포대교에 있는 밤섬 생태체험관에 있는 망원경을 이용해 밤섬을 관찰할 수 있다. 서강대교가 밤섬 위를 통과하기 때문에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사람 중 밤섬 위를 지나가 본 적 없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테지만, 밤섬에 발을 디뎌본 사람은 거의 없다. 가지 못하는 곳이라 그런가, 꼭 한 번은 방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환경연합 분들은 한 번씩 생태조사를 하기 위해 들른다는데, 지금은 영화가 나온지도 10년이 지난 시점, 어떤 환경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뜬금없는 덧글 2


밤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밤섬에 살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밤섬보존회라는 모임이 있고 분들이 고향을 방문하는 행사도 매년 진행된다고 한다. 서울 출신으로 실향민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밤섬 위를 지날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까? 찾아보니 밤섬은 여의도를 개발하기 위한 제물 같이 쓰인 곳이었다. 주인 없는 땅을 만들어 개발하기 위해 주인 있는 땅을 빼앗아 폭파하여 그 땅의 돌과 흙을 가져다 만든 것이 여의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배는 불렀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남은 밤섬의 조각에 흘러온 흙과 모래가 쌓여 커져와서 지금 밤섬은 원래 크기보다 커졌다는데, 그곳에 쌓인 것이 밤섬의 원과 한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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