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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Aug 30. 2022

나의 정원에는 무엇을 묻어야 하나

오두막 (2017)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 맥은 어두운 과거를 뒤로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가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날 첫째 아들과 둘째 딸, 그리고 마지막에 얻은 귀여운 딸, 그렇게 세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떠난 캠핑은 이 완벽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악몽이 되었다. 첫째 딸의 장난으로 호수에 빠진 아들을 구해내는 사이 막내가 납치를 당했다. 지역 경찰, 주 경찰, FBI가 모두 뛰어들어 찾았지만 손에 남은 건 근처 산속 오두막에서 발견한 딸이 입고 있던 원피스 하나뿐. 그 이후 가족 각자가 가진 죄책감과 분노는 그의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해 겨울, 집에 혼자 남은 맥에게 딸이 살해당한 곳으로 초대하는, 발신인이 없는 편지가 오고, 절망한 아버지는 그 오두막을 방문해 주말을 보내게 된다.



베스트셀러였다는 원작 소설에 대한 소개를 오래전에 읽었다. 기억이 나는 건 '오두막에서 만난 신과의 주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특별할 것이 없는 소개였는데 왜 기억에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나왔다는 말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찾아본 영화 속 이야기는 딱 생각한 것만큼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영화를 통해 본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 숲과 정원과 호수의 모습은 눈을 정화하고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데 충분했다.


딸의 옷을 발견했던, 아마도 범인이 잠깐 기거했을 산속 오두막은 눈만 가득한 채 비어있었다. 하지만 오두막을 찾아온 사슴을 따라 밖으로 나간 맥은 한 남자를 만나고 그를 따라간 맥은 계절이 급변해 푸르름으로 가득한 봄의 호수가의 오두막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파파라고 부르는 하나님, 그의 아들 예수, 그리고 바람의 숨결이라는 사라유를 만난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호수가,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오두막은 그야말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신이 휴가를 즐기러 올 것만 같은 곳이다. 파파를 연기한 옥타비아 스펜서가 가본 곳 중 가장 아름답고 평온한 곳이라고 한 이곳은 캐나다 서부의 컬투스 호수이다. 호수는 투명하고 잔잔하며 호수를 둘러싼 산은 장엄하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쭉 뻗은 나무들은 마치 관리해 놓은 것처럼 울창하고 신비롭다. 화면을 뚫고 촉촉한 숲 속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을 것만 같다.



여긴 엉망이네요.
그러게요, 아름답지요. 야생적이고 멋지고 완벽하게 진행 중이죠.



오두막에서 함께 지낸 셋 중 가장 신비로운 사라유는 떠나려는 맥에게 도움을 청한다. 여러 식물들이 마구잡이로 자라 있는 정원 한 복판 바닥을 파내기 시작하는 사라유에게 맥이 한 이야기이다. 맥의 영혼 그 자체인 정원에 대해 사라유가 하는 말에서 숲과 자연에 대한, 인간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게 된다. 그 정원은 혼란스럽고 엉망인 듯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 혼돈은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 아름다운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다. 꽃으로 가득한 듯 보이지만 독초도 있고 가시도 있다. 그 모든 것을 품고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정원 한가운데 맥은 비밀과 고통, 슬픔을 묻어왔을 거다.



내 정원에는 무엇이 묻혀있을까를 상상해 본다. 어떤 모양으로 어떤 꽃이 피고 어떤 나무가 자라고 있을까? 눈이 시원해지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은, 상처를 보듬어 주는 듯한 그 오두막을 나도 방문해 보고 싶은 날이다.






뜬금없는 댓글 1*


'라이프 오브 파이'의 제작자 질 네터가 지휘하여 만든 영화여서인지 '라이프 오프 파이'제작진이 만든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제작자 한 사람 외에는 겹치는 스탭이 거의 없다. '오두막'의 아름다움은 몽환적이고 판타지스러운 '라이프 오브 파이' 스타일이 아닌 환상적인 캐나다의 자연이다.



뜬금없는 덧글 2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반한 영화이지만 오히려 독실한 교인들이 보기에는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보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엉망'이지만 '완벽하게 진행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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