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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Sep 13. 2022

바닥을 본 사람의 도움닫기

와일드 (2014) - 장 자크 발레


'금발이 너무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통통 튀는 매력을 가진 금발의 미인이자 청춘스타였던 리즈 위더스푼을 기억할 것이다. 영화 '와일드'의 포스터는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소비된 그녀의 '금발 미인'이미지에 익숙한 사람에겐 조금 충격일 수도 있겠다. 마구잡이로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에 화장기 없는 창백하고 표정 없는 얼굴, 꼬질꼬질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그녀와 그녀의 등에 얹힌 거대한 배낭만과 그 뒤로 보이는 야생의 황무지로 가득 찬 포스터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이 한 사람과 자연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원작의 작가인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주연 배우인 리즈 위더스푼이 직접 제작을 맡아 영화화를 이끌었다고 한다. 출판되자마자 “숨을 멎게 하는 모험 이야기인 동시에 슬픔과 생존의 본능에 대한 심오한 성찰”(뉴욕타임스), “놀랍도록 자극이 되는 책은 당신이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용기를 내도록 이끈다”(오프라 윈프리), “중독적이고 멋진 이 책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읽은 것만으로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보스턴 글로브) 등 극찬을 받으며 순식간에 밀리언셀러가 되었던 이 책은 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마약 중독, 외도로 인한 이혼 등을 겪으며 인생의 바닥을 헤매던 셰릴이 다시 일어서기 위한 방법으로 퍼시필 크레스트 트레일, PCT를 횡단하기로 결심하면서 겪게 되는 일종의 자서전이다. 트레킹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전무했던 셰릴은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4,265km에 이르는 PCT를 94일 동안 걸으면서 망가진 자신의 인생을, 실패와 좌절을, 잃어버린 엄마의 사랑을 극복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걸어갈 힘을 얻게 된다.



PCT를 걷기 시작하는 주인공은 처음 싼 배낭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다. 그것이 오롯이 전부 그녀가 짊어지고 있었던,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던 삶의 무게였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텐트도 치치 못하고 연료를 잘 못 가져가 불을 쓸 수 없어 생곡을 씹어먹던 그녀가 트레일의 방명록에 남긴 'Will you take me as I am, will you?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래요?'라는 글은 아마 이 여정을 출발할 때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자존감의 바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다시 장만한 연로로 만든 더운 음식에 감동하고, 점점 더 배낭과 길에 익숙해지는 그녀의 모습은 그대로 스스로의 삶에 주인이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고 있는 나 역시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성장해 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미국을 관통하는 PCT의 자연은 리즈 위더스푼과 함께 이 영화의 공동 주연을 맡고 있다. 25개의 국유림과 7개의 국립공원을 통과하며 사막과 고산지대, 화산지대를 거치고 탈수, 눈사태, 낙석과 산불, 산사태나 흑곰, 독사,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과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느끼는 외로움...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걸어야 하는 이 길은 때로는 웅장하고 아름답게 환영하다가 때론 거칠게 거부하고 흉폭해진다. 하나하나 들여다볼 시간도, 감사하고 감동할 여유도 없다. 하지만 고개를 들면 그곳엔 이끼 이불이 덮인 나뭇가지가 있고, 눈 속에 서 있는 여우가, 하늘과 산을 안은 호수가 있다. 그리고 해는 언제나 떠올랐다.



94일째 날 '신들의 다리'에 다다른 셰릴이 말한다.



How wild it was, to let it be

와일드 (2014)






뜬금없는 덧글 1


유럽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면, 미국에는 PCT가 있다! 그럼 한국에 있는 것은 '국토 대장정'일까 아니면 '올레길'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름 있는 모든 산 주위의 '둘레길'들일까?

워낙 걷기를 위한 코스 개발과 등산코스들이 많이 되어있는 우리나라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PCT, 국토대장정이나 올레길 일주 같은 길을 걷는 데는 아주 거대한 목적이나 계기 같은 게 필요할 것 같다. 아직 살면서 30킬로 이상을 한 번에 걸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고행일 듯. 그만큼이나 그걸 해 내고 난 사람들은 그만큼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질 자격이 충분할 것 같다는 상상만 해 본다.



뜬금없는 덧글 2


미국에는 3대 트래킹 코스가 있다. PCT Pacific Crest Trail(4,300㎞)·AT Appalachian Trail(3,500㎞)·CDT Continental Divide Trail(5,000㎞)이 세 곳을 모두 종주한 사람을 '트리플 크라우너'라고 하고, 한국에는 양희종, 이하늘이라는 유명한 트리플 크라우너 부부가 있다고 한다. 이 분들이 각자 종주한 경험을 책으로 썼는데, 양희종 씨는 PCT 종주기를 담은 <4,300km>를, 이하늘 씨는 AT 종주기를 담은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를 출판했다. PCT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와 양희종 씨의 <4300km>를 비교해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뜬금없는 덧글 3


늘 생각한다. 자연은 그냥 그곳에 있을 뿐, 거기에 대고 받아주느니, 거부하느니, 감동적이라느니, 흉폭하다느니, 포근하다느니... 하는 건 결국 인간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도 나는 결국 인간이라 가만히 있는 그들을 끌어다 놓고 불평하다 감동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양 우쭐댄다. 하지만 결국 이런 나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반성하게 되는 것도 그런 자연의 힘이라, 마냥 이런 '인문학'적 접근을 거부하고 '자연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스스로를 적대시하고 타자화하며 비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싶기도... 끝없이 물고 늘어지는 생각의 꼬리에 넋두리를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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