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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Sep 16. 2022

발끝에 걸린 풀과 꽃의 이름이 궁금했던 건 언제인가요?

식물도감 (2016) - 미키 코이치로


 뇌가 순수한 이야기가 좋을 때가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자기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순수하고 정직하게 세상을 사는 법이라 소리치는 일본식 정의가 마음을 흔드는 순간들이... (돌아서서 거기에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 건 나의 순수가 퇴색되어버려서 인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정직하게 '나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건데, 안 넣어?'라고 외치는 듯 한 제목의 영화, 힐링 영화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소개되는 '식물도감'이다.


사실, 이 영화는 멜로도 드라마도 코미디도 아닌, 순정만화 그 자체다. 일본 연애소설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작가 아리카와 히로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에는 부동산 회사를 다니며 매일 이리저리 치이고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혼자 사는 외로운 사야카가 있다. 성추행 고객에게 클레임이 들어와 상사에게 깨진 어느 날 술김에 길에서 이츠키라는 이름을 가진, 성도 가르쳐 주지 않는 비밀투성이의 남자를 하나 주웠다. 그리고 그날부터 반년 동안 함께 살면서 그의 음식과 그를 통해 알게 된 식물들의 세상에 길들여진다.



잡초라는 풀은 없다.
모든 식물에는 이름이 있다.

제목이 식물도감인 것 치고 소개되는 식물이 많지는 않다. 계요등, 머위, 고사리, 미나리, 쇠뜨기, 달래와 산딸기, 크레송, 민들레, 토끼풀, 애기노랑토끼풀(이건 처음 들었다) 정도가 다인 듯... 그래도 이 영상을 담기 위해 제작진은 전국을 돌며 야생 식물학자와 함께 80종이 넘는 야생화와 산야초를 조달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에서 소개하는, 이츠키의 카메라에 담긴 이 식물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이런 이츠키의 소개로 사야카도 잡초라 불리는 식물들과 가까워진다. 이츠키가 사라진 뒤에도...


헤어지는 남자에게 꽃 이름 하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꽃은 해마다 어김없이 피어납니다.

-카와바타 야스나리




내가 발끝에 채이는 이름 모를 풀들이 궁금해진 건 언제였나? 분명 '키 큰 건 나무, 작은 건 풀' 하고 부르던 시절이,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던 날들이 그리 먼 옛날이야기는 아닌데 그 과정이 어땠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분홍분홍 하지는 않더라도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풀과 나무와 숲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새삼 궁금해진다.







뜬금없는 덧글 1


귀여운 커플이 자전거 타고 달려 사진 찍으면서 봄나물 따는 건 저리 이쁜데, 봄이면 까만 봉지 들고 동네 공원에서 쑥캐고 작살나무 새순 따고, 뒷 산 고사리 따다 미아가 되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도 카메라에 담으면 예뻐 보일까? 아니면 결국 패완얼인 건가 아니면 감완얼? (감성의 완성도 얼굴???)



뜬금없는 덧글 2


계요등이 닭 오줌 냄새나는 등이라는 의미인지 처음 알았다. 제주에서 만난 적 있는데, 그땐 냄새나는 줄도 몰랐네.. 예쁜 꽃을 가졌는데, 이름이 얄궂다.

출체: 네이버블로그 https://naver.me/I5cUpK58



뜬금없는 덧글 3


너무나도 어여쁘게 벌레 먹은 자국 하나 없이 누렇게 변한 흔적도 하나 없이, 흙 자국 하나 없이 나 데려가소 하며 자라 있는 풀들이 참으로 어색했다. 뭐랄까 설정이라며 툴툴거렸던 리틀 포레스트(일본판이든 한국판이든)의 진정성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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