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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Sep 20. 2022

숲 속에서 다시 보니 완전히 새로운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2011) - 오성윤



한국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이다. 그래 봤자 천만 관객을 부르는 영화가 일 년에 몇 편이나 나오는 상황에서 극장 관객 220만 명이라는 성적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2위와는 백만 명 이상 차이가 나는, 범접할 수 없는 1위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이 이미 유명하고, 이 애니메이션이 인생영화라는 지인도 있다. 그만큼 본 사람도 많겠지만, 이번에 다시 본 '마당을 나온 암탉'은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영화였다.


책을 읽었든, 영화를 보았든, 아니면 그냥 어디서 소개글을 읽었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이야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양계장에 갇힌 채 먹이를 먹고 알을 낳는 것만이 전부였던 삶을 살던 잎싹이 어느 날 죽을 각오를 하고 양계장을 벗어나 야생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죽음을 맞게 되는 이야기, 그러니까 잎싹의 성장드라마이자, 인생 드라마이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 읽기의 시각으로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가졌던 질문들은 주로 개인으로서의 잎싹의 캐릭터와 다름에 다한 사회의 시선, 아는 만큼 보이는 사고의 확장, '엄마'라는 역할에 요구되는 희생과 헌신, 성장이라는 것의 의미, 새로운 세대와 구세대 간의 차이와 갈등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발전, 잎싹이 처한 인간이 만들어낸 무자비한 환경의 잔인함, 그리고 자연 자체가 가지는 잔인함 등과 관련된 인문학적인 주제가 대부분 이였다. 전체관람가인 데가 아기자기하고 발랄한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 분위기에 원작을 모르고 본 사람들은 그 결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올 만큼 묵직한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 그것이 10년 전 보았던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다.


이런 기억을 갖고 다시 본 영화 속에는 그땐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작은 디테일이 가득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한 장면은 1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었다. 왜 수달이 공인중개사에 동네 오지라퍼인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왜 잎싹을 위한 잠자리를 찾아주기 어려운지를 이해했다. 습지로 이동하는 동안 숲 속에서 지나친 달팽이, 다람쥐, 박쥐, 부엉이, 사마귀 , 거미들의 모습과 그들의 개성 있는 행동에 집중하고, 겨울을 난 뒤 눈 밭에서 만난 꽃이 복수초인 것을 알아보았으며, 팽나무 언덕이라는 대사에 다시 한번 나무의 모양새를 살펴보았다(이전에 그 대사를 들었을 땐 그냥 나무가 서있는 언덕인가 보다... 했다). 초록이와 이별하고 족제비 애꾸눈에게 먹히기로 결정한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습지를 찾아온 청둥오리의 군무와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습지의 환경에 눈물이 났다.





아마 다시 보아도 내 눈에 눈물을 고이게 만들 것 같은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10년 후엔 어떤 장면으로 나를 울리게 될까?




뜬금없는 덧글 1


마당에서 사는 어린 오리들의 얼굴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의 얼굴이 보인다. 안면인식 장애라고 놀림받는 나로서는 누가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지만, 이 것도 이번에 다시 보면서 발견한 것. 뭐 처음 보았을 때는 그 국회의원은 정치판에 등장하지도 않았으니... 영화가 가지는 시간적 맥락의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뜬금없는 덧글 2


이런 영화를 보면 궁금해진다. 분명 문학적 영화적 상상력이 동원된 창작물이지만 자연적, 생태학적 사실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눈 속의 복수초 (이것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의미 있는 정보일 테지만)라던가 습지에 머무르는 청둥오리의 군무와 같이 생물학적 사실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고, 족제비를 두려워하는 수달이라던가 거미줄을 타는 다람쥐 같은 상상의 영역도 있는데, 관객은 어느 만큼 구별해 가면서 볼까?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어린이들은 어떨게 상상의 산물과 사실의 정보를 구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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