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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Sep 23. 2022

지구의 몰락을 본 증인의 고백 그리고 놓지 않은 희망

데이비드 애튼버러: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 (2020) - A. 포더길



이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이라는 사람은 같이 15년 전 프라하에서 함께 영화를 공부했던 친구의 우상이었다.

52년에 BBC에 입사해서 자연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방송인이자 자연과학자인 이 남자는 90세가 넘은 오늘까지 아주 건강하고 멀쩡하게 살아서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숲과 관련된 영화를 소개할 때 언젠가는 이 사람이 만든 영화나 시리즈를 소개할 날이 오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만든 영화가 아닌, 그의 증언을 먼저 다루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일을 해 온 사람이긴 하지만, 영화 중간중간에 보이는 그의 과거 영상과 사진을 보면 그 자신도 인정하는 바 대로 '엄청난 행운과 호사'를 누려온 사람임에 틀림없다. 50년이 넘게 전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모든 야생을 방문하고 그 속의 식물과 동물들을 만나 기록했다. 그 영상들은 전 세계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경이에 대해 소개했다. 그리고 그 50년 동안 그가 알게 된 공포와 좌절, 그리고 마음속에 쌓인 죄책감을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영화는 체르노빌 사건 이후 무인 도시가 되어 버린 우크라이나 어느 작은 도시의 인적 없는 폐허와 함께 시작한다. 단일 이벤트로 인간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실수라고 하는 체르노빌의 폭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이라고 하는 종이 저지르고 있는 각종 환경범죄를 소개하는 동안 지난 100년 동안 폭발한 인구와 증가하는 온실가스, 그리고 동시에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야생의 공간 그리고 생명들이 숫자로,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를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서의 자신이 배운 것들, 느낀 것들을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보고 증언한다. 


지난 100년간 변화한 추세에 기반한 미래의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이 영화의 장르는 공포물로 변하는 듯했다. 영상이 갖는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분명히 몇 번이고 듣고 읽은 적이 있는 이야기가, 변화를 직접 마주하고 목격해 온 사람의 말과 영상으로 전달되는 순간에는 주먹진 손과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하지만 사실 이다음,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좀 UN의 홍보영상같이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다.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지만, 이 시궁창 같은 인간들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천사들의 나라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이야기는 헛웃음이 나오게 할 뿐. 그래도 마지막 자연의 힘이 느껴지는 장면은 다시금 희망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그 희망에 베팅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쉽게 쉽게 잘 넘어가는 영화는 아니다. 군데군데 리듬이 끊어지고, 너무나 아름다운 영상과 너무나도 슬프고 공포스러운 영상이 함께 내 눈과 위를 자극한다. 너무나도 환상적이었을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인생에 배가 아프기도 하고, 그 영상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면서 다녔을지, 그가 소개한 영상으로 모르는 세계를 탐하다 또 더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사람들이 만들어졌을지를 생각해 보면 질투를 바닥에 깐 짜증과 분노가 조금씩 솟아나기도 한다. 그래도 90이 넘은 사람이 자신의 영광만을 보고 있지 않고 계속해서 목소리는 내는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볼 수록 내가 이 순간 이곳에서 숨을 쉬며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단 하나 내 고약하고 이기적인 바람이라면, 내가 인간종 몰락의 증인이 되지 않는 것,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에는 그날이 오지 않는 것뿐....





뜬금없는 덧글 1


홀로세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맨 프럼 어스(2007)'라고 하는 저예산 영화를 보면서였다. (알고 보니 모르는 건 나 혼자였나 싶을 정도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단어였나 보더라. 홀로세... )' 이직하는 교수 환송회에 온 동료 교수들과의 하루 저녁 이야기'라는 정말이지 간단한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진진해 질지 몰랐다. 숲과는 딱히 크게 관련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혹시 시간이 많으신 분들은 한 번쯤 슬쩍 구경해 보아도 좋을 추천작이다. 그리고.... 지구온난화가 이슈가 되기 전, '탱크걸'이나 '매드 맥스'같은 영화를 통해 디스토피아를 그렸던 사람들이 뜨거우진 지구를 상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혹시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미래는 이미 세포단위에 혹은 분자 단위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와중에 진정 뜬금없는 생각이다.


뜬금없는 덧글 2


영화 속에서 밑동을 잘라내어 쓰러지는 열대우림 속 나무를 볼 때, 정말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마당 나무의 가지는 잘도 잘라내고 있다.... 영상의 힘인지, 내로남불이라는 인간 본성인지... 부끄럽고 죄스럽다고 느낀다. 그러고 돌아서면 또 손바닥만 한 마당 여기저기서 올라온 뽀리뱅이와 망초를 뽑아대고 있다.


뜬금없는 덧글 3


지구온난화가 신화라고 하는 사람들의 의견 중 하나는,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원래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토록 오래 안정을 유지해 온 것이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 만약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의무 이자 권리니까 우리는 최선을 다해 보아야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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