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쏘아 올린 로켓은 무엇이 되어 돌아오는가?

Koyaanisqatsi (1982) - Godfrey Reggio

by 여명의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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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도 어려운 '코야냐스카시 Koyaanisqatsi' 호피족 인디언의 말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지만, 영화의 부제는 그 세 번째 의미인 life out of balance, 균형이 깨어진 삶이다. 당연히 극영화는 아니다. 실험영화, 영상미술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명확한 의도가 드러나고,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엔 내러티브가 부족하다. 영상시라고 하기엔 너무 날 것 같이 느껴진다. 뭔가 성명서나 선언문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 규정하기 어려운 영화는 40년 전 1982년 10월 4일 뉴욕의 라디오시티에서 5000명에게 처음 보인 이후로 전 세계 영화제를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해 댄 영화다. 감독인 갓프리 레지오라는 사람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유명한 필립 글라스의 음악을 탑재하고, 긴 시간 동안 지구가 만들어낸 것들의 이미지와 인간의 만들어낸 것들의 이미지를 나열하였다. 가공하지 않은 이미지들은 영화의 형태를 갖추어 가면서 그 순서와 속도가 달라진다. 이런 이미지의 충돌 사이에 관객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질문을 하고 거기에 자신의 해답을 찾는다. 대사 한 줄 없는 영화인데, 프레임 사이 숨은 질문들은 참으로 날카롭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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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83년이야 모두 다 극장에서 봤으니, 영화가 불만인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벌떡 일어나서 걸어 나오는 것 정도뿐이지만 지금이야 우리에겐 pause의 자유가 있다. 화면 속에 나를 잡아두는 건 다른 아무것도 아닌 지적 호기심뿐이다.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이미지와 음악에서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몇 번이고 dvd를 뒤로 돌려야 했었다. 소개글을 쓰기 위해 새로 볼 때도 마찬가지. 그러고 보니 이 영화를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보기 위해서는 극장이 필요하겠다. 아니면 내 몸을 묶어 둘 밧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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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까지 작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작가는 친절을 베풀었다. 영화 제목의 정의와 함께 영화를 관통하는 스토리에 대한 단서인 호피족 벽화 속 예언을 영화를 통틀어 유일하게 인간 언어의 형태로 넣어두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넣은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우리는 작가의 의도 따위에 휘둘리는 세대가 아니니까....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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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we dig precious things from land, we will invite disaster
Near the day of Purification, there will be cobwebs spun back and forth the sky
A container of ashes might one day thrown from the sky, which could burn the land boild the oceans
우리가 땅에서 소중한 것들을 캐낸다는 것은 재앙을 초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정화의 날이 오면 거미줄이 하늘을 덮고
하늘에서 재를 가득 담은 것이 떨어져 땅을 태우고 바다를 끓일 것이다

호피족 인디언의 예언 - 코야나스카시




이 영화를 보면 이 호피족의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터넷의 그물이 하늘을 뒤덮은 지 오래고, 하늘에서는 이미 우리가 쏘아 올렸던 많은 것들이 떨어져 땅을 태우고 바다를 끓였다. 아니 아마 지금도 끓고 있으리라. 주위를 돌아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세상이다. 영화가 나온 지 40년, 속도는 더 빨라졌다.



영화 끝에 Koyaanisqatsi의 여러 뜻을 알려준다. 1. 미쳐버린 삶 craxy life 2. 혼돈의 삶 Life in turmoil 3. 균형이 깨어진 삶 Life out of Balance 4. 분해되는 삶 life disintegerating 5. 다른 방식의 인생이 요구되는 삶의 단계 a state of life that calls for another way of living



이 중에 나는 5번째 의미에 눈이 간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마지막에 남은 뜻에 희망이 보인다. '다른 방식이 요구되는 삶의 단계'라니,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삶의 변화가 요구되고, 그렇게 변하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는... 결국 이 것이 감독이 의도하였든 아니든,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해야 변화하면 내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 수 있지 않을까?







뜬금없는 덧글 1


비위가 약하거나 멀미가 심한 분께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굳이 보셔야겠다면, 멀미약 드시고 가능한 작은 화면으로 보시길...)



뜬금없는 덧글 2


카시 삼부작이라고 부르는 세 편의 영화가 있다. 모두 갓프리 레지오가 연출하고 필립 글라스가 음악을 맡은, 대사 없는 논버벌에 충돌하는 이미지와 음악만으로 구성된 이 세 영화, 83년에는 너무나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던 영화가 2002년에는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었지만 여전히 스토리가 전달되는 방식은 놀랍다.

《코야니스카시: 균형 잃은 삶(Koyaanisqatsi: Life out of balance)》(1983년)

《포와크카시: 변형 속의 삶(Powaqqatsi: Life in transformation)》(1988년)

《나코이카시: 전쟁으로서의 삶(Naqoyqatsi: Life as war)》(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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