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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Oct 07. 2022

숨 가쁘고 치열한 그곳의 '24 Hours'

마이크로 코스모스 (1996) - C. 누리드사니, M. 페렌노우

개미를 몇 시간이고 관찰하던 파브르의 이야기를 아마 대부분은 어릴 적에 듣고 읽어 보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중 얼마나 되는 사람이 몸을 땅에 누이고 곤충이 걸어가는 모양을 관찰했을까? 


여기 파브르가 되는 경험을 하게 해 주는 영화가 있다. 흙바닥에 몸을 더럽히지도 않고, 빗속에 풀밭을 헤매거나 벌과 모기에 쏘일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된다. 편안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모니터를 켜면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작은 우주, 마이크로 코스모스.

가까이 봐야 예쁘다. 

이 말은 진리인 듯하다.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눈높이에서 카메라에 걸리는 작은 우주의 생명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여쁘고 애틋하다. 그런데, 이 말이 진리라면, 멀리서 보면 안 예쁠까? 예쁘고 아니 예쁘고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가까이서 보면 마음이 간다. 감정이입이라는 게, 그게 된다. 

https://youtu.be/d5j8ZMtO_3k


쇠똥구리의 흙공이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식물의 가지에 걸리는 순간  느끼는 안타까움, 거기서 그 공을 빼내려고 노력하는 쇠똥구리를 응원하는 마음은 카메라가 뒤로 빠지고 인간의 눈높이로 올라오는 순간 사라진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에로틱한 장면이 포함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장면만 생각하면 이 영화가 전체관람가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싶다. 나는 이 장면을 표현하고 묘사할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아니 그 언어는 머릿속 저 깊숙한 곳에 숨어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 장면, 찾을 수 있을까? 



개미떼 위로 드리워지는 닭의 그림자. 개미굴을 들여다보는 닭의 눈은 공포영화의 괴물처럼 비열하다. 우리 집 마당의 개미굴 소탕을 위해 뜨거운 물을 준비하는 내 얼굴도 저리 했을까? 마지막 흰 새벽에 황금빛을 띤 투명한 몸을 빛내며 마치 우아한 발레의 아라베스크 동작을 취하는 것처럼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뽐내며 고치에서 빠져나와 날아오르는 그놈은 모기. 어제저녁 내 손바닥에 생을 마감한 그분인지도 모르겠다. 


이 황홀한 마이크로 코스모스를 여행하며 감동하고 흥분하고 두려워하며 안타까움을 느끼는데 정보로 가득한 내레이션은 필요 없었다. 필요한 건 좋은 모니터와 좋은 스피커 하나면 갈 수 있다. 



비 한 방울에 천지가 뒤집히는 이곳, 마이크로 코스모스.






뜬금없는 덧글 1

아껴두었던 영화를 꺼냈다. 아마도 내 인생의 영화 10편을 꼽으면 한 자리 차지할 영화이다. 언젠가 작아지는 약이 나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뜬금없는 덧글 2

살짝 장르가 애매모호한 영화다. 그래도 이 영화는 절대 다큐멘터리!! 작은 우주의 하루, 뭔가 너무 아무것도 아닌 하루가! 이렇게 스펙터클하다니...




뜬금없는 덧글 3

작년만 해도 국내 배급이 안되어 있어서 수소문해 중고 DVD를 샀다.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나를 고민하다 보니 왓챠에 들어와 있었다. 얼마나 오래 국내 배급이 될지 모르겠지만 있을 때 많이 봐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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