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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Oct 18. 2022

어디까지 함께 날아갈 수 있을까?

아름다운 여행 (2019) - 니콜라스 베니어

우리는 조상들의 땅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로부터 잠시 빌린 것이다 
- 인디언 속담



유럽에서는 매년 4억 2천만 마리의 새가 30년도 안되어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800평방 킬로미터의 땅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있다. 이 인디언 속담을 더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 아름다운 여행




엄마 파올라와 엄마의 새 남자 친구 줄리앙과 함께 살면서 모바일 게임에 빠져있는 14살 파리의 차도남 토마스는 3주 동안 아빠와 살기 위해 프랑스 남부로 간다. 인터넷 연결도 안 되어 있고, 핸드폰도 잘 안 터지는 습지에서 아빠 크리스티앙은 뭔가 수상한 일을 하고 있다.



기러기들에게 안전한 이동루트를 교육시키는 프로젝트를 박물관 관장으로부터 거절당한 크리스티앙은 서류와 도장을 조작해서 프로젝트를 강행한다. 기러기의 알을 친구 비욘으로부터 받아 집에서 부화시키며 비행기의 엔진과 클랙션 소리를 알 상태일 때부터 들려주고, 기러기들을 인솔해가며 함께 날기 위한 모터패러글라이드도 준비한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러기에게 부모로 각인된 것이 토마스가 되자 절대 하지 않겠다는 파올라와의 약속은 살포시 무시하고 토마스에게도 비행을 가르친다. 물론 기러기의 부모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술과 지식과 정보도 함께 말이다. 20마리의 기러기를 싣고 그들이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 곳, 라플란드에 도착한 그들은 기러기들을 날릴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하고 크리스티앙의 거짓말까지 탄로 나고 만다. 기러기를 잡으러 사람들이 몰려오자 도망치듯 기러기 20마리를 인솔해 비행을 시작한 사람은 토마스였다. 남프랑스까지의 혼자 비행, 진짜 모험은 지금부터다.


가끔 생각한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속도가 아닐까. 인간이 너무 빨리 변화시켜버려서 이 모든 환경과 관련된 문제들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함께 가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가 늦추는 것만큼이나 그들의 속도를 높이는 건 어떤가? 그들에게도 교육이란 걸 할 수 있다면?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 드는 순간 들려온 영화 속 대사 하나.


기술의 발전 덕에 모든 것은 컴퓨터로 처리해. 
기술적으론 발전했는데 생태학적으론 뒤쳐졌지
- 비욘

: 너무나 옳으신 말씀. 교육을 한다면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할 것인가? 전체 80억이 안 되는 인간도 제대로 교육을 못 시키는데, 지구의 그 수많은 생명들, 동물과 식물,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잘 맞물려 지구를 움직여가던 그들을, 그 완벽한 평형 어디를 건드려야 그리도 치밀한 시스템을 망가뜨리지 않고 업그레이드할 것인가?


그동안 선택과 집중을 너무 잘해온 인간들, 여기 잘못 선택한 것 하나요~~ 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다 마주친 장면 하나: 토마스가 기러기떼와 함께 비행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거칠고 무자비하다. 노르웨이에서 유럽을 뚫고 프랑스 남부로 날아가는 토마스와 기러기들이 그 긴 여정 동안 만난 악천후가 단 한 번의 태풍뿐이었다니, 엄청난 행운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화적 설정이니까 가능한 것인가? 프랑스 남부에서 낳은 20개의 기러기 알 중에 자연 상태에서 살아남아 노르웨이까지 다녀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장애물들이 아니라도 자연 상태의 천적과 악천후는 그들에게 친절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무자비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발버둥 친 결과가 지금이라면, 인간을 이기적이라고 매도만 할 건 아닌 것기도 하다. 그 또만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달랐던 점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능력이 있었다 일뿐. 그럼 결론은 인간은 지구가 만든 실패작 혹은 망작? 뭐랄까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니야'라고 훌쩍대는 혹은 짜증 내는 신의 모습을 일견 한 기분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아름다운 유럽의 자연과 뒤뚱거리다 한 번씩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찍는 기러기들은 지친 마음을 다독여준다. 그 와중에 다른 종의 기러기를 하나 넣어서 차별금지에 대한 메시지를 넣는 것도 조금 작위적인 듯 하지만 작은 울림이 있다. 그 이야기를 지지하고 sns를 통해 나누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다시 한번 성선설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다. 심지어 엄마의 남자 친구는 떠나고 엄마와 아빠는 다시 합치기로 한다. 아빠의 실수 혹은 공문서 위조는 기러기들이 돌아오고 그의 실험이 성공한 것으로 보이자 바로 용서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세상이다. 영화다.




뜬금없는 덧글 1.

사실 처음 소개하려던 영화는 비슷한 제목을 가진 1996년 영화 '아름다운 비행'이었다. 비슷한 소재인 데다 둘 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서 의도적으로 비슷한 제목을 지은 건지도 모르겠다. (각 영화는 각기 다른 나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어쨌든 덕분에 이 영화를 찾게 되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다른 이야기, 다른 영화이지만 `아름다운 비행' 역시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선한 사람이 잔뜩 나와 인간과 자연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며 아름답게 마무리 짓는다. 아니 우리가 나쁜 놈들인 것만은 아니라고 조금은 위안을 삼을 수 있게, 자기 최면을 걸 수 있게...


뜬금없는 덧글 2.

목요일 저녁 EBS의 '이것이 야생이다`에서 인간의 부주의로 인해 죽어나가는 동물들에 대한 스케치를 보여주었다. 다 보지는 못하고 뒷부분 잠깐만 챙겨볼 수 있었는데, 투명 차음벽을 포함한 유리창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 새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점이 찍힌 유리는 인식을 한다는 실험과 함께... 긴 여정을 기억하는 철새들처럼, 도시 사는 새들에게도 인간과 함께 살기를 가르쳐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인간들의 학교에서도 인간 외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기 수업이 의무교육 커리큘럼에 들어있으면 좋겠다.


뜬금없는 덧글 3.

이 영화는 아빠로 나오는 크리스티앙 물렉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아들 토마스는 그림에 없는 가공의 캐릭터이다. (물론 토마스의 이야기가 되면서 더 애틋하고 뭉클해지고 드라마틱 해 지긴 한다.) 그런데... 지금 이 크리스티앙 물렉은 모터패러글라이딩에 타서 새들과 함께 나르며 토마스가 한 것처럼 나르는 새들을 만져볼 수 있게 하는 체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210유로를 내면 한 시간 새들과 비행할 수 있다. 그를 부모로 생각하는 기러기들과 함께 날면서 말이다. (https://www.flywithbirds.com/) 갑자기 영화 속 그의 고귀한 정신이 퇴색되는 듯 느껴지는 순간이다. 동시에 학자들은 순수하고 고결한 목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속물적인 시각을 발견하고 흠칫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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