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의 정원 (2020) - 오키타 슈이치
이것은 몇 살짜리 아이가 그린 그림입니까?
그림을 감상하던 일본의 쇼와 천왕이 화가 '구마가이모리카즈'의 그림을 보고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이 질문이 97세로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고 현역으로 활동한 화가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문장이라 생각한 감독의 선택일 것이다.
1974년의 여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우리는 30년을 자신의 집과 정원에서만 생활했다고 하는 일본의 근대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를 만난다. 결혼한 지 52년 된 화가와 화가의 아내 히데코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친척 아주머니와 함께 느긋해 보이는 일상을 살아간다. 화가 모리는 낮에는 정원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저녁에는 그림을 그린다. 집으로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가끔은 만나고, 가끔은 부탁을 들어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모리에 감명받아 그를 촬영하러 집을 방문하는 젊은 사진작가는 그의 생활을 필름에 담으면서 그의 태도와 철학까지 함께 담으려 하고 사진작가의 어린 조수는 모리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다시 오고 싶다’. 모리가 쓴 집의 명패는 늘 누군가 훔쳐간다. 모리의 집 옆으로는 아파트가 들어올 계획이라, 그늘이 생기는 것을 사람들은 걱정한다. 얼굴도 모르는 열혈 청년들이 모리의 정원을 보호하기 위한 플래카드를 집 밖 담에 걸고 시위하고 있으나, 모리는 관심 없다. 집과 정원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이다.
주인공 ‘모리'를 연기한 ‘야마자키 츠토무’는 대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배우였고, 부인 ‘히데코’ 역할을 맡은 배우 ‘키키 키린’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의 단골 배우로 출연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잘 알려진 일본의 국민배우다. 그녀가 ‘모리카즈를 연기하는 야마자키 츠토무의 옆에 있을 수 있는 기회라니’라고 하면서 시나리오를 읽기도 전에 참여의사를 밝혔다고 하고, 사진작가와 그 제자로 출연한 ‘카세 료’나 '요시무라 카이토’도 이 영화를 통해 ‘모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며 만족해했다고 한다. 아파토 공사를 하는 현장감독과 인부들, 아무 일 없이 그냥 들렀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익숙한 배우들이다. 하지만, 그 어떤 유명한 배우보다 더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존재라고 하면 이 크지 않은 정원에 빼곡하게 차 있는 수많은 식물들과 크고 작은 곤충, 동물들일 것이다.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한 번 보고 두 번 보니 조금씩 익숙한 친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원추리도, 단풍나무도, 느티나무 치수도 보인다. ‘조연’ 정도엔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개미들과 신스틸러 자벌레, 밟히는 것이 아닌가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던 도마뱀도 있다. 등장인물이 너무나 많은 영화다. 그 인물들이 다 살아있다.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지만 그들의 이야기로 빼곡하다. 모리의 정원 같다.
이영화는… 숲해설가 교육 과정에 ‘숲해설가의 태도와 자세’라는 챕터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연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인내, 이 모든 것이 그냥 너무나 즐거운 모리의 하루는 딱 그대로 내가 살고 싶은 하루이다. 오는 이를 막지 않고 가는 이를 잡지 않는다. 그렇다고 얽히지도 않는다. 다들 그곳에서 원하는 것을 조금은 다른 방식, 다른 형식일 수도 있지만 얻어간다. 돌아보면 거기엔 늘 새로운 것이 있다. 매일매일이 신기한 것들 투성이다. 딱 그렇게 살고 싶다.
뜬금없는 덧글 1.
진짜 개미들은 왼쪽 두 번째 다리부터 움직일까? 영화를 보고 나도 우리 집 마당의 개미를 살펴보려고 해 봤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개미들은 너무 빠르고, 나는 너무나 할 일 없이 바쁘다.
뜬금없는 덧글 2.
키키 키린의 유작이라고 한다. 57년 배우 인생을 마무리하기에 너무나도 완벽한 작품을 고르신 듯하다.
뜬금없는 덧글 3.
드넓은 우주보다 좋은 곳, 나에게는 지나치게 넓은 정원.
외계인의 초대에 '부인이 더 피곤해 지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하는 모리... 이건 핑계였을까 배려였을까?
나에게 딱 알맞는 크기의 정원은 어느 정도일까? 나의 30년을 책임질 수 있는 크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