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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Sep 30. 2022

자유, 책, 꽃, 달...

산의 톰씨 (2015) - 우에다 오토


누군가 이쯤 되면 '고바야시 사토미'는 그냥 장르가 아닌가'라고 하는 말을 주워들은 기억이 있다. 정말 이젠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일본의 힐링 무비 전문 배우 '고바야시 사토미'의 영화 '산의 톰씨'를 꺼내보았다. 이제는 줄을 세우면 서울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을 것 같은 '보고 싶은 영화' 혹은 '챙겨봐야지 영화' 리스트에 자리 잡고 앉은 지 꽤 된 것 같은데, 몇 년이나 지나서야 드디어 마침내 마음속으로는 이미 백번쯤 본 것 같은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시골마을, 작은 기차역에서 한 시간을 걸어야 하는 곳에 하나, 토키, 그리고 토키의 딸 토시가 산다. 아, 고등학교를 가지 않기로 한 하나의 조카 아키라도 같이 살러 왔다. 하나와 토키는 어떤 사이인지 알 수 없지만, 한 집에서 가족을 이루고 같이 밭농사를 지어 밥을 해 먹으며 살고 있다. 그렇게 한 집에 살고 있는 네 사람을 근처 사는 겐과 시오리 부부는 물심양면 도와주며 가깝게 지낸다. 초보 농사꾼 하나와 토키, 토시와 아키라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 가면서 밭을 일구고, 닭과 염소를 키우면서 산골생활에 적응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게 다인 영화다. 물론 소소한 이벤트들이 그들의 일상을 채운다. 천장 위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 톰을 입양하고, 글 쓰는 하나의 편집자가 도쿄에서 방문하러 왔다가 쥐들 소리에 소스라쳐 도망가는 일도 생긴다. 줄을 풀고 도망가 버린 염소 메이와 시로를 찾으러 갔다가 아키라가 옆집 어르신들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하고, 토시의 친구들 무리가 집에 놀러 오기도 한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듯 한 밤 토키와 매실주 한잔을 나누며 하나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내일도 잘 부탁한다고 토키에게 인사한다.


산속 마을이 배경이라, 영화는 초록 초록하다. 집 앞마당도, 산 넘어 우체국 가는 길도, 역에서 걸어오는 길도, 잡화점 할머니와 낚시 가는 길도 싱그러운 초록이 가득하다. 하지만 어느 하나 앞으로 나서는 나무 한 그루가 없다. 눈 씻고 찾아봐도 아마도 편백나무가 아닐까 소나무가 아닐까 포플러가 아닐까 하는 느낌만 줄 뿐,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이걸 숲에 대한 영화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제목도 '산의 톰씨'라는, 원제를 그대로 번역한 한국어 제목보다 영어 제목 'Mountain days with Tom san' 그러니까 '톰씨와 함께한 산촌생활'이 더 영화를 잘 설명하는 것 같지만, 딱히 영화 속에서 고양이 톰이 그들의 삶에 염소 메이나 시로보다 더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의 매일매일은 그렇게 편안하고 느긋하게, 좋은 날씨와 너그러운 자연, 건강한 음식과 친절한 사람들로 채워진다. 가끔 흙탕물이 튀기는 하지만 어느새 맑은 물로 돌아와 있는 것처럼...

사실 알고 있다. 이 영화가 판타지라는 것을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은 알 고 있을 것이다. (최소한 집안일이라는 것을 해본 사람이라면, 텃밭이라도 갈아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흙바닥 마당을 향해 열어둔 창문으로 먼지가 얼마나 들어오는지, 빵과 치즈, 과자를 만드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고무장화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품이 드는 일인지, 염소가 똥을 얼마나 싸 대는지... 그래도 우리는 깨끗하게 비질된 마당 위 햇살을 머금으며 말라가고 있는 고추와 갓 구워져 나온 따끈한 빵과, 하얀 앞치마에 밀집모자를 꿈꾼다. 한국 남자들의 최애 프로그램이라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여자들 타깃으로 만들면 이쯤 되려나? 사실 요즘 이 정도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유튜브에 이미 많이 있으니 새 프로그램을 만들 것도 없다.

그 한적함과 유유자적함, 너그러움과 여유를 만끽하고 부러워하며 힐링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가 자연에게 바라는 것이 딱 이만큼이지 않을까 하는 반성이 들었다. 초록초록 싱그럽기만을, 유기농 채소를 키워 자급자족할 수 있기만을, 피크닉을 가고 싶을 때 넓게 펼쳐진 딱 적당히 푹신하게 자란 풀밭이 준비되어 있기를...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연이라는 단어를 힐링이라는 단어과 묶어서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나의 잣대로 나를 위해 내 기준에 맞춰 느끼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동안 우리가 자연과 이만큼 멀어져 온 게 아닌가? 산의 눈, 자연의 눈으로 본 하나네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 산의 눈, 자연의 눈에 그들은 들어있지조차 않는 건 아닐까?


자유, 책, 꽃, 달이 있다. 이걸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하나가 예전에 읽었던 책 한 구절을 이야기한다. 아... 나는 행복하구나. 굳이 받자고 드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 내 행복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준 듯한 느낌이다. 이런... 돌아서는 순간 드는 생각. 나의 행복도 검증이 필요한가? 받았다고 생각한 도장이 부끄럽다 느껴지는 순간이다.





뜬금없는 덧글 1

묵혀둔 영화를 볼 때면 가끔 비디오 생각이 난다. 먼지도 않고 가끔은 테이프를 씹어먹던 오래된 비디오 플레이어와 그 옆에 쌓여있던 비디오 테이프들도.... 철컥거리며 들어가던 소리, 방송심의에 대한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시작되던 본 방. (그 안내방송은 맥주 한 잔과 오징어 다리를 구워 준비하기에 딱 적당한 길이의 영상이었다.) 묵혀두었던 '리스트'를 생각하면, '줄 세우면 서울 부산을 왕복'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때면 (비디오 테이프란 걸 본 적 없는 친구들은 배워서 익혀야 할 표현) 이런 빛바랜 광경들이 떠오르는 나는 이젠 정말 '구'세대가 되어가나 보다.



뜬금없는 덧글 2

'고바야시 사토미'의 힐링 영화는 시리즈로 죽 한꺼번에 다 써야할 지도 모르겠다. 혹은 앞으로는 더 이상 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뭐랄까 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결이 너무나 비슷하여 보고 난 뒤 느끼는 감상의 결도 비슷한 '안경' '수영장'같은 이야기를 쓴다면 아마도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혹시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사는 게 너무 그냥 피곤하고 힘들면... 스위치 끄고 한번 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뜬금없는 덧글 3

투덜투덜거렸지만 사실은 그리 살고 싶은 삶이다.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일까? 인형을 만들지 못해서, 치즈를 만들어 먹지 못해서? 이런 모든 핑계를 뒤로하고 언젠가는 산으로 들어갈 날이 오지 않을까 손톱만큼의 기대와 욕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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