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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Jan 24. 2023

아직 계속되는 전쟁 혹은 산을 지키는 산의 이야기

모노노케 히메 (1997) - 미야자키 하야오


산이 이상하다.


새들이 보이지 않고 동물들도 사라졌다.



모노노케 히메, 영화의 시작에는 이런 말을 하며 산의 동태를 살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다. 새들이 보이지 않고 동물들이 사라진 산은 이상하다. 이 이상한 산들이 지금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1997년에 개봉된 영화는 25년이 지나 다시 보아도 충격적이다. 아니, 충격은 25년 전 보다 더하다. 현실은 더 나빠졌으니까...











산의 이상을 감지한 아시타카의 눈 앞에 붉은 눈을 한 재앙산이 산에서 튀어 나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무너뜨리며 마을로 향한다. 아시타카는 이 재앙신과 얘기하여 달래 보려 하지만 재앙신은 막무가내로 아시타카를 공격하여 상처입히고는 결국 아시타카의 화살에 쓰러진다. 쓰러진 재앙신은 상처 입은 멧돼지의 모습을 하고 자연의 증오와 한을 이야기 한 뒤 녹아버린다. 에미시 부족 마을의 지도자 히이 님은 멧돼지를 재앙신으로 만든 원인에 대해 살펴보고 아시타카의 저주를 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아시타카를 멧돼지가 온 서쪽으로 보낸다. 산과 습지, 강을 지난 아시타카가 도달한 서쪽은 전쟁으로 혼란스럽고 저주가 깃든 아시타카의 팔은 제멋대로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리고 서쪽 끝 고대의 신들이 사는 사슴신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계속 서쪽으로 향한 아시타카가 만난 것은 흰 늑대와 함께 인간을 공격했던 산, 원령공주 그리고 철을 만드는 타타라마을의 에보시였다.



진실은 사람 수만큼 존재한다고 어느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캐릭터가 말했다.



얀센병환자들을 살리고 팔려나가는 여인들을 구해 철을 제련하는 마을을 만든 에보시는 총을 만들어 숲을 태우고 산의 신들을 재앙신으로 만들어 저주와 원한을 사지만 사람을 살리고 있다. 인간에게 버림받고 늑대의 딸로 살아온 산, 원령공주는 이런 에보시를 죽이고 사슴신의 숲을 보호하려 한다. 에보시의 진실과 원령공주의 진실, 아시타카는 누구의 진실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 그 뿐 아니다. 인간들 모두와 싸우고자 사슴신의 숲으로 모여든 산의 신들인 멧돼지들이 있고, 인간을 먹어 인간의 힘을 얻어 숲을 되찾고자 하는 성성이들의 진실이 있다. 에보시의 철을 탐내는 영주와 그의 군대가 있고, 사슴신의 영생을 탐내는 천왕과 그를 위해 에보시와 거래하고 사슴신의 머리를 잘라가려는 이들도 있다. 에보시는 숲의 신들과 싸우면서 동시에 철을 탐내는 영주들과도 싸운다. 사슴신을 탐내는 천왕과 거래하고 마을을 지키려 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저주에 당한 몸을 갖고 모두가 사는 방법을 찾는 아시타카가 있다.








대혈전이 시작되기 전 사슴신에게 구명되어 산의 치료를 받은 아시타카는 묻는다.






숲과 사람이 싸우지 않는 길은 없는가?





이 말을 들고 총알이 몸에 박혀 죽어가는 늑대는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아시타카를 비웃는다. 그리고는 모두가 죽어나가는 전쟁이 시작된다. 슬프게도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다. 지난 몇 천년 간 진행되어 온 전쟁이다.



사슴신이 발을 딛는 곳마다 사계절이 지나간다. 싹이 트고 성장하여 씨앗을 맺고 스러진다. 산의 신들인 멧돼지들은 분노한다. 숲의 신인 사슴신이 왜 산을 보호하지 않는가? 인간은 묻는다. 사슴신은 생명인가? 목을 잃은 사슴신은 손이 닿는 모든 것에서 생명을 앗아간다. 사슴신은 죽음인가? 머리를 되찾고 쓰러져 대지로 스며든 사슴신 뒤로 불타버린 산과 고사목에 싹이 나고 초지가 되었다. 사슴신은 싹이 나게 하는 신인가?



아마 이 모든 질문의 답은 그렇다 일 것이다. 사슴신은 보호하지 않고, 생명이면서 죽음일 것이다. 자연 그 자체인 사슴신은 아마도 생명의 순환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뒤 에보시는 이야기한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가진 힘일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가진 순환의 힘이 그것이 아닐까? 사슴신의 목이 날아가면서 함께 사라졌던 고다마의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것은 희망일 것이다. 숲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 자연이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 제발 25년 뒤인 지금에도 그 희망이 건재하길 빈다. 모두의 마음속에 아시타카가 있기를, 그 마음속 아시타카가 목소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뜬금없는 덧글 1


깊은 밤 숲을 걷는 사슴신의 다이다라봇치 형상은 아바타의 나비족 같다. 나무와 연결되어 있던 나비족이 다아다라봇치와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상상이 된다. 아, 다이다라봇치는 일본에 전승되는 신 혹은 요괴로 주로 걸어 다니면서 산과 호수를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거대한 거인이다. 아마도 제주도 선문대할망의 신화에도 등장하는 거인의 전승이 아닌가 싶다.



뜬금없는 덧글 2


사슴신의 숲은 아름답다. 아마도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이끼카펫이 깔려있고 나무 하나하나 다 건강하게 반짝인다. 나무정령인 고다마가 잔뜩 있는 것을 본 아시타카가 건강한 숲이라며 좋아한다. 영화 속 캐릭터가 그러했듯 일본에도 나무정령인 고다마의 모습을 무서워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뭐, 텅 빈 동굴 같은 점 세 개가 흔들리는 모습이 기괴하기도 하다. 이들이 많으면 건강한 숲이라는데, 우리 집 뒷산에는 얼마나 살고 있는지, 혹시 우리 마당에 살고 있는 이는 없는지... 꼭 만나서 인사하고 싶다. 그리고 조몬스기가 있는 야쿠시마를 모델로 사슴신의 숲이 탄생했다고 한다. 꼭 한 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그곳이다. 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거기 가면 코다마를 만날 수 있을까?









뜬금없는 덧글 3


공식 트레일러를 찾을 수 없어 유튜브에 주요 장면을 편집해 놓은 것 중 한글 자막이 있는 것을 올려본다. 결말이 있으니 보실 분들은 신중하게 클릭하시길...





뜬금없는 덧글 4.


모노노케 히메의 이름은 산이다.


늑대형제 둘이 있으니 셋째라서 삼이었던 걸까 하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미야자키 하야오가 1980년대에 기획했다 접은 동명의 영화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원령에게 시집간 영화 속 째 공주가 주인공이어서 '산'. 그 말이 한국어의 산과 발음이 같은 건 우연이겠지만, 필연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산을 수호하는 산의 이야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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