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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Jan 20. 2023

전선 너머의 두메산골, 그 속의 낙원

웰컴 투 동막골(2005) - 박광현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미친년이 나오는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폭탄이 터져서 내린 팝콘비 또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면일 것이다. 다시 보아도, 언제 보아도 좋은 마음 아프고 '사랑스런' 전쟁영화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장진이 쓰고 연출한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이미 너무 유명하다. 한국 전쟁 중, 전선에서도 비껴 난 강원도 오지에 낙오된 남한군과 북한 인민군, 그리고 연합군 소속 미군이 모였다. 전쟁 중인지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의 반목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전쟁 중인 이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을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마을 안에서 만난 적들을 어찌 처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이 날 선 갈등을 코미디로 만든다. 맥락이 없어지면 많은 것들이 웃겨진다. 심각하게 보이는 일일 수록 더 우습다.






동막골은 오지이자 벽지다. 그러니까 외따로 뚝 떨어져 있는 궁벽한 땅,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의 혜택이 적은 곳이다. 생활이 힘들고 불편한 곳, 일반적으로 '낙원'이라는 이름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하지만 이런 곳이라 낙원이 되었다. 세상이 지옥이 되었을 때 외부와 멀리 떨어진 첩첩산중의 동막골은 그대로 산속의 낙원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낙원에는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인이 있다.



이 낙원으로 숨어든 여섯 사람, 부상자를 버릴 만큼 모질지 못한 인민군 중대장과 병사 두 명, 자살하려던 남한군 소위와 의무병, 불시착한 미해군 비행기 속 살아남은 미군 조종사 대위 한 명.



낙원에 들어가는 길은 험하고 험하다. 산을 넘고 암벽을 탄다. 숲을 헤치고 지나가야 한다. 그렇게 도착한 낙원에는 웃음이 있었다. 전쟁에 피폐해진 이들의 눈에 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사는 동막골 사람들은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동막골 사람들의 눈에 철모는 바가지로, 장총은 긴 작대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행기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외부에서 들어온 손님들인 '산 아래 것들'은 뱀 나오는 곳도 모르고 앉아 있는 정신없는 것들일 뿐이다. 이 들이 만나는 순간, 동막골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전선'의 한 복판에 서게 된다. 총과 수류탄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대치도 반목도 위협도 모두 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산 아래 것들의 행동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 간의 얄팍한 대치와 반목은 채워야 할 곳간이 생기고 멧돼지라는 공동의 적이 생기는 순간 끝이 났다.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전선은 그들을 같은 방향에 서 있게 만들었다.




동막골을 낙원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험한 산이다. 캐야 할 감자들로 가득한 감자밭과 메밀꽃이 가득 피어 있는 들판, 당산나무가 동네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동막골은 산과 숲의 비호를 받아 험한 전쟁 중에도 살아남았다. 팔랑거리는 날개를 가진 나비들이 보호하고 있는 듯한 동막골, 언제나 추락한 비행기의 틈새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힘을 가진 그곳엔 웃을 줄 알고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산다. 상처 입은 이들을 보듬어 주고 치유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이 산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다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삶이 바로 그 곳에 있다. 소외되고 차단된 그 곳에 낙원이 있다.




뜬금없는 덧글 1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영도력의 비밀은 뭐를 많이 멕이는 것' 영화 속 최고의 대사인 듯하다. 생각해 보면 세상 거의 모든 반목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배부르고 등 따신 것 만으로 세상은 꽤나 살 만한 곳이 된다. 거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걸로 행복한 세상이면 참 좋겠다.



뜬금없는 덧글 2

강원도는 잘 모르지만 한국 전쟁 중에 그렇게 전쟁이 난 지도 모르고 살아남은 두메산골이 있었다고 한다. 강원도 정선의 여량이라는 곳과 인제의 기린면, 홍천군 내면 일대의 골짜기라고 하는데, 지금도 깊은 원시림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한 번쯤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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