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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Jan 27. 2023

욕망의 숨, 죽음의 숨, 삶의 숨

물숨(2016)-고희영



새소리 인가 싶기도 하고 바람소리인가 싶기도 하다. 휘파람인가 싶기도 하다가 함께 들리는 파도소리에 그제야 아, 이것이 숨비소리라고 하는 것이구나 했다. 영화는 그렇게 넓게 펼쳐진 바다를 파도소리 위로 높게 나는 숨비소리와 함께 시작했다.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이 송지나 작가와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해녀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제주 우도 해녀들의 이야기 '물숨'이다.


얼마 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제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통해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해녀들의 삶, 그리고 물 안과 밖 두 개로 나뉜 그들의 세계가 영화를 통해 펼쳐진다. 그들의 해녀들 간의 계급 수심 3m에서 물질하는 상 하군(똥군), 5-9m를 잠수할 수 있는 중군, 15-20m를 잠수하는 상군으로 나뉜다. 철저한 능력에 기반한 계급사회, 그들의 숨에 의해 정의되는 능력이다. 상군 해녀들은 최고 3분까지 숨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상군 중 가장 높은, 그러니까 가장 숨이 긴 대상군은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물질하고 일반 하군들의 몇 배나 되는 수확을 거둔다. 숨과 바꾼 수확이다. 영화 속 우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해녀의 눈으로 기억한다. 봄의 우뭇가사리, 여름의 태풍과 물고기 사냥, 남방고래와 함께 오는 가을의 바다, 그리고 차가운 눈보라 속 겨울의 바다.

숨이란 것은 태어날 때 하늘이 주고 바다가 허락한 것

물숨은 욕망의 숨이다. 자신의 숨이 다하는 순간 발견한 전복 하나, 숨을 쉬고 다시 돌아오면 절대 찾을 수 없다고 하는 그 전복 하나가 해녀의 목숨을 앗아간다. 천초라 불리는 봄의 우뭇가사리 철, 빠른 손놀림으로 천초를 채집하는 손놀림에 급한 마음이 끼어들면 숨이 가빠진다. 물숨이 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해녀들의 매일은 욕심과의 전쟁이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욕심이다.



해녀들의 바다는 해양생태계를 탐구하거나 환경문제 혹은 취미로 바다에 들어가는 이들과는 다른 바다이다. 아름답지만 아름답지만은 않고, 너그럽지만 너그럽지만도 않다. 봄이 되어 우뭇가사리 철이 되면 수확하는 해녀들의 바쁜 손길에 바다는 황무지가 된다. 예쁜 노란 줄무늬를 가진 물고기도 작살에 꿰어져 물을 나선다. 한 영화에서 선생님이었던 문어는 해녀들에겐 사냥거리이자 물질을 방해하는 골칫덩어리다. 제주에는 일 년에도 몇 번씩 해녀의 죽음이 뉴스에 보도되고 수십 년 동안 매일같이 바다에 들어가는 이들이 바다에서 숨을 놓는다. 그래도 해녀들은 바다를 그리워한다. 말리는 가족들의 성화에 더 이상 물질을 하지 않는 나이 든 해녀도 호이호이, 숨비소리가 들리면 바다가 그리워 가슴이 뛴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소리 없는 제주의 바다를 본다. 짙은 쪽빛 바다 위 오렌지 색 테왁의 강렬한 대비는 그리고 그 바닷속을 거침없이 누비며 해산물을 채집하는 해녀의 모습을 본다. 자신들의 숨으로 가족들의 배를 불리고 머리를 채웠던 그들의 모습을 본다. 움직이지 않는 팔을 하고도 바다에 들어가는 나이 든 해녀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만난다. 강인한 여성, 단단한 어머니, 바다에 기대어 사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바다의 여인.



해녀들이 이야기하는 바다를 듣는다. 그네들에게 바다는 밥이자 집이고 인생이고 금고다. 목숨보다 귀한 것이다. 잃어버린 남편이고 신이다. 먹고살게 해 주는 곳이고 섬겨야 하는 것이며 감사해야 하는 것이고 동시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욕심을 갖지 말라 가르침을 주는 것이고, 가르침에 따르지 않을 때 따끔하게 벌을 주는 것이다. 목숨을 앗아가는 곳이 아니라 목숨을 내어주고 넋이 되어 돌아가는 곳이다. 그대로 우리가 바다 뿐 아니라 산에게 숲에게 땅에게 가져야 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숲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숲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숲을 관리하고 경영하려는 마음을 먹으면서 숲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숲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명줄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해녀들의 배움을, 지식을, 깨달음을 배워야 할 순간은 이미 지나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제발 늦지 않았기를 기도한다.




뜬금없는 덧글 1

'나의 문어선생님'에서 만난 문어는 감독에게 가르침을 주고 친구가, 치유사가, 선생님이 되어준 문어였다. '물숨'의 문어는 해녀들에게 사냥의 대상이자 골칫덩이이며 동시에 두려운 존재이다. 이전엔 긴 다리로 해녀의 코를 막아 숨을 앗아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새삼 세상 모든 것이 가진 여러 얼굴을 생각한다. 나의 정의가 다른 이에게 악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렇게 다시 한번 말하기보다 듣기를, 드러내기보다 받아들이기를 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본다.



뜬금없는 덧글 2

지금 제주바다에서 해녀들은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제주의 관광객들과 제주에서 수상레저사업을 추진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과는 꽤 마찰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현지 사람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이야기도 한쪽의 말 만을 듣고 판단해서는 안되겠지만, 이렇게 숨을 잘라먹고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들의 손에 무게가 더 실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달아서 잴 수도 없는 숨의 무게가 더해져서 그런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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