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명의여명 Jan 13. 2023

폭력과 탄압에 저항하라??

벅스라이프 (1998)-존 라세터


숲에 대한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쓰겠다고 하면서 어떻게 이 영화를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숲에는 나무와 풀만 있는 것이 아닌데, 숲의 또 다른 주인인 곤충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곤충'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리치는 이 영화를 잊고 있었다. 1995년 '토이스토리'로 화려하게 등장한 픽사가 3년 후에 내놓은 두 번째 애니메이션 '벅스라이프'다.




영화의 스토리는 픽사에서도 공개적으로 말했듯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54년 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오마주 했다고 한다. 도적들에게 약탈당하던 마을사람들이 저항하기 위해 도움을 찾아 나서고, 외부에서 사무라이들을 만나 마을로 함께 돌아온 뒤 힘을 합쳐 약탈자들을 무찌른다는 이 단순해 보이는 구조의 이야기는 이후로 할리우드와 일본에서 여러 번 다른 장르의 옷을 입고 리메이크되거나 혹은 영화 속에서 오마주로 이용되었다. 벅스라이프에서는 약탈당하는 마을 사람들은 '개미'로, 약탈하는 이들은 '메뚜기'(생김새와 행동양식 등을 통해 '풀무치'가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사무라이들의 역할은 삼류 서커스단의 여러 곤충들이 맡았다. 곤충들이 주인공인 데다 도움을 주는 외부인들이 진짜 용병들이 아닌 서커스 단원들이라는 데서부터 이 영화는 코미디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물론 영화는 주인공 개미 플린의 입장에서는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개미와 메뚜기, 검은 과부거미, 무당벌레, 대벌레, 사마귀와 장수풍뎅이, 아마도 어떤 나비의 애벌레와 공벌레, 집시나방과 노래기 그리고 반딧불이 등 각각의 특징을 잘 살려 3D로 그려진 여러 곤충들이 모습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본 주변의 모습, 식물과 동물들 그리고 도시의 모습도 충분한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척박한 땅과 메뚜기떼가 자리 잡은 버려진 밀짚모자 근처의 선인장을 보면 꽤나 척박한 환경이라 영화의 배경이 숲보다는 사막에 가까울 것이라는 것, 그리고 도시에서 만난 이들이 서커스단원이라 혹시 플린이 찾아간 도시는 라스베이거스에다 개미들과 메뚜기떼가 있는 곳은 라스베이거스 주변의 네바다주 모하비사막지대가 아닐까 막연히 짐작한다. 그리고 마냥 황폐할 것 만 같은 사막 속 자연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사실 그것 만으로도 감동적일 수 있다.




하지만 곤충이나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우화에 가까운 많은 애니메이션들은 조금 불편하다. 곤충과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언정 이야기 속에는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기반한 가치관과 교훈들로 가득한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많은 우화들 속 단순화된 인물 간의 관계나 특정 캐릭터의 악마화 등이 갖는 부정적인 영향력, 특히 주 관객이 되는 어린이들이 그 대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가치관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간과된다. 여기서도 폭력과 탄압의 아이콘이 된 메뚜기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 게으르고 폭력적이며 멍청한 이미지로 기억될 것인가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수 있을까? 자연상태에서 다른 이에게 온전히 억압당하고 이용당하기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다시 재학습하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어야 할까?



숲 속은 전쟁터다. 살아남기 위한 폭력이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전쟁터. 하지만 이 전쟁에 참여하는 모두는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전략을 갖고 있다. 싸우거나 피하거나 대량증식을 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서바이벌과 종족의 번영을 위한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그곳에는 모두가 매일같이 유전자에 새겨진 이기심으로 무장한 채 생존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들의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 우리의 도덕적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생태적인 시각이 반영된 콘텐츠가 더 많이 제작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유이다.



애니메이션은 힘이 있다. 25년 전에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이 미국 어린이들에게 '개미와 베짱이' 대신 억압당하는 개미가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개인이 가진 가능성을 무시하고나 간과하지 말고 목력과 억압에 저항하라,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읽어내는 교훈이다. 그렇게 메뚜기는 억압과 폭력을 대표하는 곤충이 되고 개미는 성실을 대표하는 곤충이 되었다. 모든 곤충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인 되새는 압도적인 공포를 주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하는 되새는 10센티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작은 새이다. 알이 있는 둥지를 지키는 이 공포스러운 되새를 보니 다시 한번 '마당을 나온 암탉'의 애꾸눈이 생각난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악인인 메뚜기 하퍼의 경우도 동생에게는 관대한 형이다.




뜬금없는 덧글 1

어릴 적 곤충들과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벌레라면 질색을 하게 된다. 혹시 애니메이션에서 본 귀여운 곤충의 이미지와 현실의 괴리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뜬금없는 덧글 2

실사판 리얼 '벅스라이프'영화라면 '마이크로코스모스' 일 것이다. 그들의 진짜 모습도 충분히 감동적이고 아슬아슬하며 가슴 졸이는 서스펜스로 가득하다. 그리고 훨씬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