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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Aug 09. 2022

文魚 선비의 덕목과 겸양을 가진 선생님

나의 문어 선생님(2020)- P.에를리쉬, J. 리드

숲에 대한 영화를 이야기할 때 다큐멘터리를 빼놓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피, BBC, 디즈니 같이 자연 다큐멘터리에 특화된 제작사들도 꽤 있고, 자연 다큐멘터리는 아주 비싸고 고급진 콘텐츠라 한편 제작하면 종합 방송사의 얼굴 삼아 수준을 자랑하는데 써먹기도 한다.


 물론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로 이런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에 이런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거라는 건 온전한 내 추측이지만, 그리하여 이번 cinewald at dawn의 숲 영화는 ‘나의 문어 선생님’, 다큐멘터리다. 2021년 아카데미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2020년 가장 핫한 다큐멘터리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소개된 첫 번째 자연 다큐멘터리였다.



영화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번아웃 신드롬에 시달리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의 바닷가로 돌아가 매일 잠수를 하며 자신을 다독이는 동안 문어 한 마리를 만나게 되고 그 문어를 관찰하면서 찍은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문어의 생활을 관찰하면서 ‘그녀’와 가까워지고 그 문어가 짝짓기를 하고 산란을 하고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다시 찾게 되고, 번아웃에서도 벗어나 문어와의 추억이 깃든 해초숲을 지키기 위한 환경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 문어를 이야기하며 그리운 마음에 눈물을 삼킨다. 


내가 아는 문어에 대한 지식이라곤 그저 제사상에 오르는 맛있는 바다생물이라는 것, 문어가 내뿜는 먹물 덕인지 우리네 선조들은 문어를 선비의 상징으로 였다는 점, 서양인들은 그 문어의 생김새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과 혐오감을 가졌다는 것 (그래서 외계생물과 같다고 느껴서인지 HG웰즈의 소설 <우주전쟁>에서도 외계인의 형상으로 그려졌다) 정도일까? 어디에서인가 스쳐 지나듯이 문어가 상당히 지능이 높은 생물이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 듯도 했지만, 이 다큐멘터리 속 문어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들이 가진 호기심도, 살아남기 위한 재능도, 2세를 남기기 위한 헌신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는 나의 이런 무지를 가엽게 여긴 듯 문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새롭고 방대한 지식이 들어 있었고, 나는 크레이그 포스터가 되어 듯이 처음 만나는 세상에서 오랜만에 누군가와 마음을 통하는 순간의 떨림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신기해하고, 안타까워하며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하는 동안 90분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숲과 무슨 관련이 있나 하고 물어본다면, 사실 그곳은 조금 더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을 뿐 바닷속 숲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환경도 생태계도 다르고 살고 있는 생물들도 다르지만, 그곳을 대하는 태도 자체는 다를 것이 없다고 아니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숲을 사랑하는 사람이 바다라고 해서 그곳을 함부로 대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바다 생물들을 마구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물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생명들이 땅 위의 숲을 만들었듯이 물속에 남기로 결정한 생명들은 물속 생태계를 만들어 온 것일 테다. 물 위 생물인 인간이 가까이 하기 더 힘든 만큼 더 많은 새로운 세상이 그곳에 있겠지.


며칠 째 비가 쏟아지고 있다. 서울 시내와 수도권 지역 곳곳에서 침수피해가 있다는 방송과 함께 재난문자로 손 안의 핸드폰이 바쁘다. 이런 날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물고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물속에 잠긴 듯 한 오늘, 저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하여 문어 선생님께 인생의 한 수를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뜬금없는 덧글 1

문어가 처음으로 크레이그에게 손을 뻗어 만지는 순간을 보고 있자니 커다란 갈색머리를 한 E.T.가 생각이 났다. 결국 마음이 통하는 순간은 서로의 손 끝이 만나는 순간일까?


 


뜬금없는 덧글 2

그래도 움직임이라는 것이 있는, 아니 같은 속도의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동물과의 교감이 다른 시간대에서 움직이고 있는 식물과 교감하는 것보다 조금은 더 쉬운 것일까? 식물과 손끝을 맞닿으며 교감할 수 있는 순간은 내 시계를 얼마나 늘여야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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