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으로 바라보기

싫어하는 사람을 다르게 바라보기

by 새벽Dawn

살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받고 사람이 싫어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나 나에게 더 가까운 사이일 수 록 그런 감정과 상처가 더 깊게 다가온다.

가족일 수도 있고, 오래된 친구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 피하기 어려운 누군가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미워하는 나 자신이 너무 지치는 순간이 다가올 때,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미움은 생각보다 체력이 드는 감정이다.

계속 떠올리게 되고, 말다툼을 복기하게 되고, “왜 저래?”라는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마치 내 하루의 한 부분을 통째로 내어주는 것처럼, 미움이 내 시간과 기분을 가져가 버린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방향을 바꿔보기로 했다.


“미워하지 말자”가 아니라, “미워하기 힘들면 연민으로 보자”로.


연민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거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연민은,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성인군자 같은 게 아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거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밖에 못할까.’
‘저 사람은 어떤 결핍을 저 방식으로 숨기고 있을까.’
‘저 사람은 지금도 자기 자신이 불편한 사람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놀랍게도, 내 마음이 조금 멀어진다.

그 사람이 한 말이 여전히 불쾌하더라도, 그 불쾌가 내 안에서 오래 눌어붙지 않는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인가 보다.” 이 한 문장이, 내 마음을 불필요하게 태우는 불을 조금 꺼준다.


특히 가족이라면 더더욱이 상처가 깊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너무 당연하게 선을 넘기도 한다. 어느 날은 “왜 꼭 저렇게 말하지?” 싶다가도, 또 어느 날은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생각이 들고, 그 사이에서 마음이 계속 흔들린다.


내가 어느 순간 깨달은 건, 가족을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다시 내게 돌아온다는 거였다.

연을 끊을 수 없으니까. 결국 다시 보고, 다시 듣고, 다시 마주해야 하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내 마음의 방어 방식을 바꾸는 편이 낫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본다.


“저 사람도 저 방식 말고는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거야.”
“저 사람도 불안하니까, 남을 눌러서라도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거야.”
“저 사람은 자기가 상처받았던 방식으로 말을 배운 거야.”


이 말들이 그 사람을 ‘옳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그리고 내가 받은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상처 위에 내가 또 하나의 상처를 덧칠하지 않게 해 준다. 미움으로 내 하루를 망치지 않게 해 준다.


친구 역시 그렇다.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가끔은 더 쉽게 함부로 말한다. 어떤 친구는 나를 ‘늘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내 선을 계속 넘어온다. 어떤 친구는 내 성장을 불편해하며 농담처럼 깎아내린다.

그럴 때 “넌 왜 그래?”라고 미워하는 대신, 나는 한 번 더 뒤를 생각해 본다.


“얘는 지금 자기 삶이 불안한가 보다.”
“내가 잘 되는 게, 이 친구에겐 거울처럼 불편한가 보다.”
“이 친구는 도와달라는 말 대신 공격을 먼저 배운 사람인가 보다.”


이렇게 보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내가 그 사람을 다 받아들이게 되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되어서.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하나다.


연민은 ‘참아주기’가 아니다.

연민으로 바라보되, 선은 그어야 한다. 나는 오히려 연민을 선택하고 나서, 선을 더 잘 긋게 됐다. 미워하면 감정이 과열돼서 말이 거칠어지고 관계가 더 깨진다. 하지만 연민으로 보면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


“그 말은 난 불편해.”
“그 얘긴 여기까지 하자.”
“다음에 또 그런 식이면 난 자리를 피할 거야.”


연민은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사실 나를 위한 기술이다. 내 마음을 덜 다치게 하는 방법, 내 하루를 덜 뺏기게 하는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얻은 가장 큰 변화는 이거였다.


‘그 사람이 나를 싫게 하는 이유’보다
‘내 마음이 평온해지는 방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는 것.


싫어하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은 늘 그런 사람을 한 명씩 내 앞에 놓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일이라는 이름으로.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내 마음을 불태워가며 미워하든가, 아니면 마음을 조금 떨어뜨려 연민으로 보든가.

나는 이제 후자를 선택하려 한다. 그게 더 착해서가 아니라, 그게 더 편하니까.
내가 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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