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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반짝 Oct 22. 2020

프롤로그 - 3

190409

 한심한 바보에게도 슬픔은 크게 덮쳐 왔다. 어쩌면 난 슬픔을 모른척 하기 위해 과한 긍정을 끌어왔고 현실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현실감은 현실감대로 잃어버리고 슬픔은 줄어들지 않은채 더 큰 덩어리로 뭉쳐있다가 방심한 사이 날 덮쳐 왔다. 그럴 때마다 기록을 했다. 


 엄마가 아프신 동안 다신 못느낄 것처럼 슬픈 날들이 있었고 틈나는데로 이곳저곳에 기록을 했다.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노트에 적기도 하고 아이폰 메모에 남기기도 했다. 처음의 의도는 나중에 엄마가 다 나으셨을 때, 쌓인 글들과 사진을 가족과 함께 돌아보며 우리 정말 수고했구나 라는 마음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금조금 모은 글과 사진들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대외비가 되어 버렸다. 사진의 경우, 가족들은 내가 얼마나 찍어왔는지 조차 모를 것이다. 알고 찍힌 것도 있지만, 자는 동안 모르고 찍힌 사진도 꽤나 많은데 다들 모르고있다. 나만 보는 사진. 글의 경우 노트, 메모장, 컴퓨터 등 곳곳에 퍼져있어 정리가 안된채 뒤죽박죽인 상태다. 무엇보다 글과 사진을 본 가족들이 다시 엄마를 그리며 힘들어할까봐 아직은 못 보이겠다. (이건 나의 잘못된 생각일까? 사실 다른 가족들은 나랑 달리 다 괜찮아져서 엄마 사진을 보고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더 늦기전에 혼자서 글이라도 정리해보려 한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 언제 공개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잊혀져서 뭘 기억하고 있었는지조차 모르기 전에,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이제는 글의 용도가 달라져버렸다. 언젠가 기쁨을 주기 위한 글들이었는데, 지금은 슬픔을 되짚는 글이 되었다. 처음에 이름 붙인건 엄마의 투병기가 아닌 회복기였다. 결국 다시 투병기가 되어버렸다. 결말을 알고 정리해 나가는 글은 씁쓸하다. 그래도 나는 이걸 정리해야만 한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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