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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쪽지 Apr 13. 2020

사랑을 갈구하는 모든 미운 마음에게

내가 모두를 사랑할 수 없듯이 모두가 다 나를 사랑해줄 수도 없다.

<미움받을 용기>



나는 나를 사랑했다.

그래서 나를 아는 누군가도 반드시 나를 사랑할 거라 생각했다. 사랑받아야 한다는 강한 믿음에서였을까. 어려서부터 아쉽지 않게 사랑을 먹고살아서였을까. 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일이 서툴렀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 때면 속이 메인 듯 불편했다. 지독한 우울에 빠져 새벽 내내 앓아누울 때도 있었으나 해가 뜨면 발버둥 쳐 벗어났다. 내가 슬플 때 슬퍼하는 것과, 우울할 때 우울해하는 것,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따위는 너무도 당연한 문제였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도저히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왜?’라는 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질문이었다.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데 이유는 없다고 한다.


 “그냥 네가 싫어.”


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상대는 꼭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왜 스스로를 비하하고 작아져야만 할까. 그건 고작 그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인데. 사랑의 탈은 천천히 써지고 쉽게 벗겨질 때가 많고, 미움의 탈은 쉽게 써지고 천천히 벗겨질 때가 많다. 아니 어쩌면 안 써지거나 안 벗겨질 수도 있겠지만 보통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처음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그 사람을 파악한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나랑 맞는지 혹은 맞지 않는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내가 이해해줄 수 있는 문제인지 등을 자기도 모르게 일일이 따져보게 된다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랑에 목메는 사람들이 많다. 시대가 급변하고 각박한 세상이 되면서 밥을 굶는 사람은 줄었지만 사랑을 고파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됐다고 해서 행복이 완성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모두 사랑해야 하고 사랑받아야 할 것 같은 갈망 속에 세상을 살아간다. ‘사랑합시다.’, 혹은 ‘사랑받고 싶어요.’와 같은 문구들이 이토록 많아진 것만 봐도.


사랑받아야 하는 사람과 사랑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나뉘어있지 않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 마땅하다. 그저 미움의 굴레에는 내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과 나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나이를 먹고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다. 미움받는 건 견딜 수 없으나 미워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거나 미워한다고 해서 당신도 그 사람을 이유 없이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미움은 가진 사람도, 주는 사람도 비참하게 한다. 미움이 아니다. 그저 사랑하지 못할 뿐이지.


나는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더 많이 쫓지만, 나머지 한 번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관계는 언제든지 틀어질 수 있다. 내가 잘못을 했든지 안 했든지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거다. 언젠가부터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된 거다. 쉽게 틀어지거나 꼬여서 틀어지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모든 관계는 내 마음과 같지 않으니까. 세상은 늘 잔잔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겠다. 사랑받기위해 애쓰지도 않겠다.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단어는 결국 미움과 사랑을 한 마음 안에 함께 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다보면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살아진다.



사랑하면,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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