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들을 위하여.
"세상에 영원한 게 있을까."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잡고 몇 시간을 끙끙 앓았다. 처음에도 답이 없었고 얘기를 한다고 해서 그 답이 해결되거나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우린 항상 그 '영원함'에 초점을 맞춰 말을 덧붙였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본다면 "영원한 게 어딨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라며 핀잔을 주고 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지금 당장 그 해답을 찾기 위함도,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마음보다 발 빠르게 걷다 보니 마음에도 위안을 삼을 곳이 필요했다.
문자로 서로의 읽음 여부도 모른 채 휴대전화를 붙잡던 우리가, 알이 떨어졌다며 1541 콜랙트 콜을 서슴지 않고 눌렀던 우리가, 이메일을 물어보고 이메일이나 쪽지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던 우리가 모두 이 어쩔 수 없는 시대에 발맞춰 걷고 있다. 누군가는 이 상황이 얼마나 편하냐고, 또 누군가는 이제 익숙해져 버린 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ㅣ"야, 내 친구가 술만 먹으면 내 휴대폰 번호를 다 지우는데 이번에도 다 지웠더라. 하.."
고등학생 때 나와 짝꿍이었던 친구 중 한 명은 아직도 연락이 되는데 자주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자주 연락을 했던 친군데 하루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있냐고 물었는데 "미안한데 번호 좀.. 나 지금 전화번호 0이야. 누구야 너?"라고 답이 오는 거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으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저장을 해야 했다고 하고, 그 친구는 이후로 내 번호를 따로 자필로 적어뒀다고 했다.
웃음이 참다 참다 터져버렸다.
요즘 시대에 자필로 휴대폰 번호를 적어두는 건 꽤나 어색한 일이다. 그래도 서로 문자를 나누던 시절에는 친한 친구들의 번호를 외우는 건 여사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언제부턴가 휴대폰이 만능이 되면서 우리 인생에도 전부로 자리 잡았다. 사진도 사진첩에 다 저장되어 있다. 어느 순간 용량이 없으면 지우기도 하고, 휴대폰을 바꾸면서 사라지기도 하고, 사진이 너무 오래되면 바래서 화질이 깨지기도 하고.
여기서 정말 웃긴 건, 각자 살기 바쁜 세상에서 시간을 내서 만나도 서로 휴대폰만 쳐다보는 관계도 많다는 것. 휴대폰을 손에서 놓으면 내 전부가 무너진 듯 찾아 헤매기도 한다.
그렇게 우린 휴대폰이, 편리함이 전부가 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 1년에 한 번씩은 사진을 다 인화하려고 하는 것, 생일이면 꼭 편지를 써주는 것.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는 휴대폰이 아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화하는 게 도리라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게 내가 이전의 우리 모습을 잊지 못해서 일거다. 아니면 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걷기 싫어서.
세상은 나만 두고 다 변한다. 변하는 게 싫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한참 시간의 흐름에 맞춰 걷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만 꼭 그 자리에 홀로 남은 것 같았다.
어쩌면
영원하다고 믿는 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부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믿을 수밖에 없는 나만의 착각이 아닐까.
내가 나에게 거는 주문 같은.
나는 아직도 아날로그가 좋고, '자필'이라는 말이 좋고, 뽑아둔 사진이 좋다.
나는 전처럼 전화번호를 줄줄 외우진 못한다.
자필로 적어둔 전화번호부도 없고, 연락이 끊기면 끊어질 사이가 많지만
그래도 나는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언젠가 시간이 더 흐르고 흐르면 이 조차도 사치가 될까.
나도 지금 이런 내 모습을 비웃게 될까.
우리는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 걸까.
얼마나 더 멀어져야 우리는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있잖아, 정말 휴대폰이 전부가 되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