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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쪽지 Jul 13. 2020

화를 내서 달라지는 게 있다면

도착한 택배도 다시 보자. 택배 기사님도 길을 잃는다.

-띠링.


토요일 오전, 알림 문자가 왔다.

받아야 할 등기가 있어 월요일쯤 오나 싶었는데 오늘 오전 중으로 배송이 된다길래 들뜬 마음으로 배송지 수정 요청하기를 눌렀다. 코로나 때문에 언젠가부터 모든 택배는 비대면으로 받고 있다. 보통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라고 하면 두고 가시거나, 인기척을 확인 후 "문 앞에 두고 갑니다."라고 먼저 말하고 가시는 게 다반사였다.

'집 앞에 두고 문자 주시면 바로 가져갈게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네, 택밴데요. 문자 와서 그러는데 그거 진작에 배송했잖아요. 아침에 제가 문 두드리니 현관 앞에 두고 가라고 하셨잖아요."


영문도 모르고 받은 전화에는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벨을 누르는 소리도, 배송했다는 문자도 없이 배송 예정이라 떠서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한 거였는데 그게 그렇게 화를 낼만한 일인가 싶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나빠지긴 했지만 내가 확인하고 문 앞에 택배가 있으면 그만 아닌가 싶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끊었다.


문을 열어 바닥을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통로를 다 뒤졌으나 집 앞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다. 놀란 마음에 경비실로 뛰어내려 가 우리 집으로 온 택배가 없냐고 하자 몇 번을 뒤적이다니 오늘 온 건 없다고 했다.


그래, 분실이 된 거다.


지금껏 살면서 택배는 한 번도 분실이 된 적은 없어 걱정은 없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번에 받아야 할 서류는 개인정보에 중요한 서류라 잃어버리면 안 됐다. 내가 잘 못 본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5층부터 3층까지 다 돌았다. 집으로 들어가 가족들에게 혹시 택배가 온 게 없냐고 물으니 그런 건 없다고 했다. 또한 아침에 누가 문을 두드려서 집 앞에 두고 가라는 말을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의문이었다. 분명 그분은 집 안에서 누군가가 집 앞에 두고 가라고 해서 두고 갔다고 했고, 집 안의 사람들 중에는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다. 혹시나 오배송을 한 게 아닌가 해서 다시 전화를 했다.


"103동 ***호에 갔다 주신 거 맞으시죠. 저희 가족 중에는 아무도 그런 말 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요.."


난감한 듯 말하자 수화기 너머로는 또 한 번 짜증 섞인 말투가 들려왔다.


사실 나는 그분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저 사람은 누구나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집에 배송한 게 맞는지 확실하게 확인을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확하게 동과 호수를 말하자 택배기사님께서도 그 주소를 정확히 말하셨고 분명 틀림없었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주변에 더 찾아보겠다고 끊고 앞 동에 같은 층도 다 돌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고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는 택배기사님이 전화가 왔고 정확하게 자신이 갖다 놓은 시간을 알려줄 테니  CCTV를 돌려보라고 했다. 억울함이 잔뜩 섞인 말투였다.



경비실 아저씨께 이 상황을 말씀드리고 내 이름, 휴대폰 번호, 집주소를 적었다. 혹시나 누군가 내 택배를 가져다준다면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드리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CCTV는 확인할 수 없다 했고 사실상 '확인'이 아니라 그냥 없다 했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답답했다. 서로가 억울한 상황이었으니. 그 짧은 시간 안에 온갖 생각들이 지나갔다. 내 개인정보가 털리는 생각, 누군가 내 택배를 뜯고 돌려주지 않는 생각.. 더 오랜 기다림이 지속될수록 그 생각들은 안 좋은 방향으로 더 부풀어졌다.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 조급함에 더 커져버렸다.




한두 시간쯤 지났고 택배기사님께서 전화가 오셨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오배송을 한 것 같네요. 한 시간 안에 다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이제야 안도했고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아니에요. 찾았으면 됐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중요한 거여서 요.."


 지나고 나서야 드는 생각인데 처음엔 나한테 왜 그렇게 화를 내신 걸까.

결국 무안해지는 건 상대일 텐데.

나도 오해해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렸을 때, 상대가 그 오해를 풀어주면 오히려 나는 뻘쭘해졌다.

이 상황을 정리해서 가족들에게 말하니 아빠는 "아빠가 그 사람 오면 화내 줄까" 왜 자기가 잘 못해놓고 그러냐고 화를 냈다.


한 시간가량 시간이 흐르고 기사님은 오지 않고 전화가 왔다. 다른 동에 모르고 배송을 해버렸는데 그분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전화가 왔단다. 그분이 지금 밖에 나와서 저녁쯤 돼서야 집에 들어갈 것 같다해서 배송을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미안하지만 101동 경비실에 맡겨놓을 테니 저녁이나 내일쯤 찾아가라는 말을 남기고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처음부터 그분이 짜증을 냈을 때 나도 같이 짜증을 냈을 거다. 나도 모든 걸 쉽게 다 수긍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니라, 이렇게 엇갈린 상황에 기분이 나빠졌을 거다. 본인이 잘 못한걸 우리 탓하며 결국엔 스스로 찾아가라는 말을 듣고 화가 솟구쳤을 거다. 오늘은 이상하게 그러지 않았다.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물품이었고 걱정은 됐지만 같이 화를 내고 싸우고 싶진 않았다. 저녁쯤 택배를 찾으러 갔다 오니 동생은 내게 "본인이 잘 못한 건데 갖다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하며 나보다 더 화를 냈지만 나는 괜찮다며 찾았으니 됐다고 했다.


화를 내서 달라지는 게 있다면 진작 냈을 것 같다.

세상엔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이 많고,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난다. 나는 내가 그런 기이한 일들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 나만 이런 일이 생길까.' '왜 나만 힘들지.'

이런 생각들이 사실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라고.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나 혼자 열불 내며 화를낼 필요 있을까. 항상 누군가에게 불이었던 내가, 물이 되고 나니 세상이 편해졌다.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 나빠진 기분에 나도 함께 동요하면 얻는 게 뭘까. 잠깐 기분이 풀리는 것? 일시적인 화풀이 상대로 이용하는 것?



지는 것이 또 한 번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린 살아가면서 조금씩은, 한 번씩은 그 상황에서 뒷걸음질 치며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인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미성숙한 내가, 미완의 너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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