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2013년 나는 독일 미대에 입학했다. 큰 꿈을 가지고 머나먼 나라로 왔고 그 꿈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딜 수 있었던 것이다. 2019년 여름 나는 다행히도 졸업을 하게 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 나의 학교생활을 돌아보며 느낀 점을 써보고자 한다.
독일에는 두가지 형태의 미대가 존재한다.
첫번째는 쿤스트 혹슐레(Hochschule)이다. 여기서 쿤스트(Kunst)는 예술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인 대학교 시스템의 미술학교로 보면 된다.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 있고 시험을 보고 실습도 한다. 학생들은 본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회도 갖는다.
두번째는 쿤스트 아카데미(Kunstakademie)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학교는 아니다. 독일은 대학교라는 단어를 인문대와 공대에서만 사용한다. 그런데 쿤스트 아카데미가 바로 독일의 전통적인 미술학교 시스템이다. 왜냐하면 예술가들의 대한 도제식 교육이 행해지는 곳이 쿤스트 아카데미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의 이름, 즉 레벨이 아니라 내가 어느 교수 밑에서 배우고 싶은지를 보고 그 교수가 있는 학교에 지원한다.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있는 예술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은 학생이 지원하기 전에 교수 혹은 조교에게 메일을 보내 약속을 잡고 본인의 포트폴리오(Mappe)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거의 그 학생이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될 지 결정이 난다. 물론 그 기준은 오로지 교수한테 있다. 교수가 학생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본인 스타일과 맞는지, 가능성이 있는 학생인지 보고, 혹은 본인과 맞지 않는 학생일 경우 다른 교수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입학을 하게 되면 그 교수 클래스의 학생이 되는 것이다. 쿤스트 아카데미는 딱히 정형화된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없다. 지도교수가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자기의 스타일로 수업을 연다. 즉 지도교수에 따라서 수업의 형태와 퀄리티가 천차만별이다.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하는 아카데미에도 한가지 모든 학생들이 참가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바로 매년 열리는 전시회(Jahresausstellung)다. 클래스 별로 전시의 컨셉을 정해서 일주일정도 전시를 연다. 이 기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 방문에 학생들의 전시를 구경한다. 이 과정에서 인기가 많은 학생들은 사람들에게서 작품에 관한 질문을 받기도 하고 호응이 좋으면 작품을 팔기도 한다.
나는 쿤스트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다. 첫 수업시간에 신입생들은 본인들이 지원했을 때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줬다. 아카데미에서 클래스는 학년의 구분이 없다. 내가 속한 클래스의 모든 학생들이 모여 새내기들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피드백을 주었는데 정말이지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당시 독일어를 100% 다 알았들었더라면 나는 바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비판은 매우 공격적이고 직설적이었는데 쉬는 시간에는 언제 싸웠냐는 듯 서로 웃고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떠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조적인 상황이 한국에서 초중고를 경험한 나로서는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사실 나한테만 싸우는 상황으로 보였던 것이지 그들에게는 절대 싸움이 아니었다.)나는 졸업할 때까지 이러한 수업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다. 내 작품을 보여주는 것도, 또 그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도 너무 무서웠었다. 지금에 와서 가장 후회가 되는 것 중에 하나이다.
나는 현재 예술가로서 살고 있지 않다. 독일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직장을 다니며 살고 있다. 내가 왜 예술가로서 살아가지 않는가 혹은 못했는가 생각해보면 대답은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하고싶은 예술 프로젝트가 없어서이다. 나는 작품을 보여줘야 할 때 늘 힘들었다. 어떤 작품을 해야할 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늘 작품주제를 찾아 해매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본인이 원하는 작품주제가 항상 있었다. 혹은 같은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학생들도 있었다.
두번째, 스스로 나의 시간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 아카데미 학생이 되는 순간 모든 시간이 나에게 자유롭게 주어졌고 나는 그것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혹은 잘 활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예술 프로젝트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시간을 잘 쓰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게 명확히 있었다면 시간계획을 잘하고 실행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