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정답?

답을 찾아야만 할 때

by 브레첼리나

독일의 예술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두려웠던 일은 내 작업을 교수님께 그리고 같은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독일의 쿤스트아카데미는 작업을 점수로 평가하지 않는다. 통과하거나 낙제하거나 둘 중 하나다. 예술을 점수로 평가할 수 없다라는 철학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수업시간에 자기 작업을 보여주면 교수와 학생들은 각자 자기만의 의견을 얘기한다. 예술의 정답은 없다지만 작업의 대한 본인의 의견을 얘기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설득하려고도 한다. 꼭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의 예술은 참으로 다양하며 이해하기 쉽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열린결말처럼 같은 작품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도 하고, 그저 질문만 던지는 작품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때로는 하나의 작품으로 여러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는 좋은 대화의 장이 열리기도 하지만 그저 자기들의 얘기만 하고 결론이 나지 않는 공허한 대화가 되기도 한다. 처음엔 이러한 태도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다양성을 존중하고 정답만 내려고 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처럼 보이기도 했고 각자 모두가 동등한 위치 속에서 건강하게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화자체가 수업인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5년을 보내다 보니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나의 말이 옳고 너의 말도 맞다면 우리는 왜 서로 대화를 해야하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대화일까? 그저 대화 속에 있는 모두가 각자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특히 예술분야에서 이러한 현상들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사실 대화를 통해 더 좋은 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면 우리는 아마 발전이라는 단어를 써야할 것이다. 과학에서처럼 말이다. 하지만 "발전"이라는 이 단어는 예술에서는 참으로 어색하게 들린다. 예술의 발전?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기에 아마 예술에는 발전보다는 변화라는 단어가 더 적합할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의 정답을 내고 싶지 않고 내 의견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옳다 혹은 그르다 라는 말을 해야 할 때에도 우리가 회피하고 있는건 아닌가 생각도 든다. 나는 다른 사람과 갈등을 만드는 것이 너무나도 불편해서 가끔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내 생각을 얘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해서 혹은 다양성을 존중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저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구나? 나랑은 안 맞는 사람이었어, 굳이 친해지려고 하지 않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답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이 너무 부정적이게 되어 버렸지만 대화를 통해 혹은 어떠한 사회 현상들에 대한 옳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참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점점 이러한 노력들이 거부당하고 낡고 틀린 것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서 너무나 안타깝다. 우리 모두는 다양하고 귀한 존재이기에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선하고 옳은 답을 찾아야만 할 때 조차도 외면한다면 건강한 사회,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기 점점 어려운 세상이 오지 않을까? 질문을 던지는 예술도 좋지만 질문만 던지고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질문은 결국 아무런 힘도 없는 공허한 문장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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