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네필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영화를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특히 20대 초반에는 일본 영화에 깊이 빠져 있었다. 『카모메 식당』,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허니와 클로버』 같은 유명한 일본 영화는 거의 다 챙겨봤다. 일본 특유의 감성 예를 들면 영화의 색감, 잔잔한 분위기, 배우들의 엉뚱한 연기, 소소한 일상이 내게는 참 좋았다. 그러다 독일에서 살게 되면서 오랜 시간 영화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다. 일부러 피한 건 아니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쳐 있을 때 영화는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그럴 땐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예능을 보는 게 나았다.
지치고 힘들었던 학업을 마치고, 독일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고 있던 남편이 있는 곳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맥주 한 잔 하며 집에서 영화를 보는 여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게 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의 작품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일본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이 영화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일본 영화들과는 달랐다. 물론 예전에 본 일본 영화들도 훌륭했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더 깊고 강한 여운으로 다가왔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아도, 영화는 어느새 관객을 그 안으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그 영화를 계기로 나는 다시 영화에 빠져들었다. 우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태풍이 지나가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등, 그의 가족을 다룬 영화들을 중심으로 보았다. 모든 영화가 좋았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이야기하며,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었다. 감정이 요란하게 휘몰아치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듯했고,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특별히 강조되진 않지만,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사회적 문제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혹은 혈연으로만 가족을 정의하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기적인 태도를 취해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니, 처음으로 한 감독이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일까? 영화처럼 따뜻한 사람일까? 검색해서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모습은 매우 평범했다. 흔히 말하는 ‘예술가의 아우라’는 전혀 없었고, 그냥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감정 표현이 크지도 않았고, 인터뷰할 때도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말하거나, 웃더라도 소박하게 웃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듣다 보면 그의 진중하고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백 번은 들어봤을 질문일 텐데도, 대답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말에 신중함이 있었고, 그 모습에서 "정말 좋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도 읽었다. 감독이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각 영화의 제작 과정과 연출 철학,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 그리고 다큐멘터리에 대한 생각까지 담담하게 풀어낸 글이었다. 책도 영화처럼 꾸밈이 없었다. 그중 특히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었다. 감독은 영화에서 사건과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관객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움직일 수는 있지만, 오히려 지속적으로 사유하는 데는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감정을 절제하고 간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관객이 오히려 더 깊이 고민하고, 스스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나 역시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어떤 영화는 사회적이거나 개인적인 문제를 너무 직접적으로, 감정적으로 다루다 보니 보는 순간엔 눈물을 흘리지만, 막상 영화가 끝난 후에는 ‘울었다’는 기억만 남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정말 훌륭한 감독이자, 좋은 사람이다. 나는 평소에 누구를 존경하거나 닮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이 감독의 영화를 보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가 쓴 글을 읽다 보면,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다. 나도 이렇게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있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