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알프스에 쉽게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내가 살던 기숙사 근처 공원에서 알프스 산맥이 보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 사진으로만, TV에서만 보던 알프스를 이렇게 가까이서 바라보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감사했다. 유학 생활이, 그리고 외국인으로서의 삶이 불안하거나 두려울 때면 자연을 찾게 되었다. 거대한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고민들이 한없이 작아 보이고, 곧 지나갈 것만 같았다. 자연으로부터 다시 힘을 얻어, 다시 용기를 내고 일어설 수 있었다. 독일에 살면서 가장 많이 보고, 가장 많이 위로받았던 자연은 알프스였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에 있는 많은 나라들은 휴일과 휴가가 참 많다. 새해 1년 계획을 세울 때 많은 유럽 사람들은 여행 계획부터 세울 만큼, 여행은 그들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도 독일에 살며 여행을 많이 했는데, 여행을 거듭할수록 다양한 여행 형태를 고민하게 되었다. 도시를 구경하며 관광지를 돌아보는 여행, 휴양지에서 긴 여름을 신나게 즐기는 여행, 푸른 자연 속에서 느긋하게 힐링하는 웰니스 여행 등, 매번 이번에는 어떤 여행을 할지 계획하는 재미가 있었다. 남편과 나는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했지만, 해마다 최소 한 번은 꼭 알프스로 향했다.
알프스에 가면 뭐니 뭐니 해도 등산을 해야 한다. 가볍게 걷는 둘레길 코스부터 암벽을 타는 험한 코스까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길은 정말 다양하다. 우리는 주로 하루 4~5시간 걷는 코스의 등산을 많이 했다. 알프스 꼭대기에서 걷고 싶을 때면 케이블카를 타고 어느 정도까지 올라간 뒤, 그때부터 등산을 시작하기도 했다. 알프스를 걷다 보면 정말이지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눈앞에 있으면서도 그림처럼 보이는 풍경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눈부시게 펼쳐진다. 산을 걸으며 나무, 꽃, 흙, 돌, 동물, 식물, 벌레, 구름과 하늘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행복'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행복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삶의 위로이고 치유임을 깨닫게 된다.
알프스에는 산만큼이나 아름다운 호수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알프스 여행을 계획할 때, 주로 호수가 있는 장소를 선택했다. 수영이 가능한 호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호수도 있다. 수영이 가능한 호수는 대개 알프스 산 중턱이 아닌, 산 입구 초입에 자리한 마을 근처에 있다. 알프스 산들에 둘러싸인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SUP 보드를 타다 보면, 어느새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멍해진다.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날씨가 더운 날이면 하루 종일 호수에 머물게 된다. 돗자리와 간단한 음식, 맥주를 챙겨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더우면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지치면 물 밖에 나와 책을 읽으며 쉰다. 그렇게 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간다.
유럽에는 어디를 가든 캠핑장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많은 캠핑장은 단연 알프스 근처에 있는 곳들이다. 여름이면 알프스 방면 고속도로가 캠핑카들로 가득찰 만큼, 캠핑장의 인기는 대단하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캠핑장에 텐트를 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캠핑카를 몰고 오거나, 상주해 있는 캠핑카 주인들이 일반 차를 몰고 온다. 조금 크거나 좋은 캠핑장에는 붕갈로처럼 나무로 지어진 작은 숙소들도 있다. 우리도 몇 번 알프스로 캠핑을 갔었다. 캠핑카가 없었기에 처음에는 텐트를 들고 갔지만, 텐트를 칠 수 없는 캠핑장이 많아 나중에는 붕갈로가 있는 큰 캠핑장을 찾게 되었다. 알프스를 바라볼 수 있는 캠핑장은 사계절 내내 아름답다. 눈 덮인 알프스를 보는 것은 특히 운치 있다. 캠핑장에는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많이 오는데,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참 정겹다. 나도 아이가 된 것처럼 캠핑장에 있으면 마음이 순수해진다. 노부부들도 종종 보이는데, 캠핑카 앞에 책상을 펴고 책을 읽는다. 그 모습을 보며 남편과 나는 우리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구에게나 몸과 마음의 치유는 필요하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삶에 만족하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일상 속에서 쉼이 필요할 때가 있다. 외국에 사는 것은 좋을 때도 있지만 힘들 때도 있다. 결국 모국에서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항상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힐링이 필요할 때 나는 알프스를 찾았다. 지금은 갈 수 없어 더 그리운, 나의 알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