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었던 시절, 음악 숙제로 클래식 감상문을 쓴 적이 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쇼팽의 곡과 동물의 사육제 중 몇 곡에 대한 감상문이었다. 인터넷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한참을 집중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 듣다 보니, 어느새 음악이 나를 어떤 숲 속으로 데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고요해졌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음악에 완전히 빠져 있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 경험이 나의 삶에서 첫 클래식의 기억이다. 하지만 그 후로는 클래식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첫 경험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들었던 클래식에서는 그때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그저 지루하고 어려운 음악일 뿐이었다.
성인이 된 후, 독일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유학생들 중에는 음대생들이 꽤 많았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만날 일이 없었을 사람들이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성악 등 클래식의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는 이들이었다. 그중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한 오빠와 같은 기숙사에 살게 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 오빠를 통해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매일 최소 5시간 이상 연습해야 하고, 너무 격한 운동은 피해야 하며, 특히 성악을 전공하는 이들은 목 관리를 철저히 하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악기를 더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음대생들이 모든 클래식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새로웠다. 그렇게 클래식이 멀게만 느껴졌던 내가 조금씩 클래식을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다. 가끔 혼자서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오빠를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평소엔 유쾌하던 그 오빠가 연주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놀랐었다. 곡에 집중하는 모습, 진지하게 음악을 느끼며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클래식 음악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연주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꼈을 뿐, 음악 자체에 특별한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독일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음대생은 아니었지만,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쳐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 대학교에는 음대생들을 위한 피아노 연습실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그곳에서 가끔 피아노를 친다고 했다. 한 번은 남편이 연주하는 모습을 감상하러 간 적이 있었다. 몇 곡의 클래식 곡을 연주해 줬는데, 그때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클래식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강렬하면서도 우아하고, 어쩜 음악이 이렇게 깊이가 있을 수 있을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밀려왔다. 그때를 계기로 남편이 연주했던 클래식 곡들을 내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자주 듣게 되었다. 자주 듣다 보니, 같은 곡이라도 누가 연주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클래식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
독일에 있으면서 남편을 따라 성당에 자주 가게 되었다. 특별한 종교 행사가 있는 날이면 성당에서 클래식 연주나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주로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이 연주되었는데, 성당에서 듣는 음악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합창단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독일의 높고 큰 고딕 양식의 성당에서 연주와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거룩하고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빛까지 더해지면, 클래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 있는 지금 클래식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부엌에 있는 라디오는 항상 KBS 클래식 FM으로 맞춰져 있어서 아침, 점심, 저녁을 먹거나 요리를 할 때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거나 아름다운 곡이 흘러나오면 나도 모르게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듣다 보면 울컥할 때도 있고, 뜻하지 않게 음악으로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아름다워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이런 나 자신이 참 좋다. 예전에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의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클래식이 대중화되기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반대로 대중이 클래식의 전문가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클래식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