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

by 최기현


출처 : 교보문고


나는 이 세상을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 위 작은 한구석에서, 삶은 괜찮게 굴러간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까 한다. 몇 년 전 작은 정원이 딸린 1층으로 이사를 왔다. 전에 이곳에 살던 사람은 정원을 전혀 관리하지 않았다. 그동안 방치되었던 정원은 마치 밀림처럼 온갖 잡초가 빽빽하게 차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정원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이사를 한 뒤 무더운 여름 날씨에 모기에게 살을 뜯기는 사투를 벌이며 수일에 걸쳐 풀과 잡초를 모두 정리했다. 예쁘게 화단을 만들고 정원석을 깔았다. 주말마다 화원에서 예쁜 꽃과 나무를 가져다가 하나씩 심기 시작했다. 이내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고 도심 속 자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출처 : 교보문고


프랑스 작가 시몽 위로의 만화 <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는 지구의 생태 위기를 인지한 주인공이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여 오랫동안 방치된 정원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았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몇 년 전 정원을 가꾼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오버랩되었다.

주인공은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을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나처럼 일단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하나씩 처리했다. 정원의 한쪽을 차지한 오래된 홍자단 덤불을 치우고 길에서 발견한 식물과 버려진 붓꽃, 물옥잠을 가져다 심는다. 공간이 하나둘 채워지면서 동물과 곤충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 되었나 보다. 말벌이 포도 몇 알을 먹으러 오는가 하면 오리, 뉴트리아 같은 동물, 까치와 찌르레기, 여러 곤충이 자기 발로 정원을 방문한다. 물론 해충과 같이 불청객은 전혀 반갑지 않다. 시간이 지나 정원은 일종의 자연 생태계로 바뀐다.

출처 : 교보문고

일러스트를 색연필로 그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모습이 독자에게 부드럽게 다가온다. 마치 식물도감이나 곤충도감처럼 정원에 심은 식물, 정원에 찾아온 새와 곤충이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었다. 여기에 부가적인 정보를 붙여 읽을거리도 더했다. 단순히 나비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나비의 학명과 함께 산호랑나비, 쐐기풀나비, 붉은 제독나비, 작은멋쟁이 나비, 산네발나비, 악마 로베르, 그을린 나비, 뱀눈 나비 등을 세밀하게 구분하여 그렸다. 평소에 관심도 없었고 만날 일도 없었을 나비를 일러스트로 만나는 것은 과학책에서 사진으로만 접했던 나비와 또 다른 느낌이다.

출처 : 교보문고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자연 생태계가 단시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을 통해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여타 만화처럼 드라마틱하게 스토리가 전개되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시시각각 맞닥트리는 문제에 대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통해 해결하며 정원을 가꾸어간다. 해충이 생기면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강력한 해충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식물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친환경 해충약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자연과 공존할지 고민하는 식이다.

출처 : 교보문고

이 책을 덮으면서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하나의 정원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기에 자연과의 공존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개입이 생태계를 교란하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동물이나 곤충은 차치하고서라도, 어느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식물이 인간에 의해 강제로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것은 생태계의 균형을 깨는 행위이며 보는 각도에 따라서 폭력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지구가 유지되는 한 계속해서 풀어야 할 숙제다.

출처 : 교보문고


색연필로 칠한 일러스트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정원 만들기가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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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 / 시몽 위로 지음, 한지우 옮김, 김영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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