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확장 유행의 시대, 콘텐츠 장르 다양성 확보는?

IP 확장 유행의 시대, 콘텐츠의 장르 다양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by 최기현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


올해 추석 명절을 맞아 카카오웹툰의 <미생>이 돌아왔다. 2018년 5월 이후 3년 만에 연재를 재개하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은 직장인의 애환을 현실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미생>은 로맨스 서사에 기대어 온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로맨스 없이도 인기를 누린 작품으로 초창기 웹툰 IP 확장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뉴스에 언급된 웹툰 원작 드라마는 총 34개이다. <이태원클라쓰>를 비롯해서 <경이로운 소문>, <여신강림> 등 18건은 2020년에, <스위트홈>, <간 떨어지는 동거>, <유미의 세포들> 등 7건은 2021년에 오픈했다. 나머지 9건의 작품은 기획이나 캐스팅 단계에 있어 조만간 만날 수 있다. 최근 웹소설 IP를 웹툰으로 제작하는 이른바 ‘코미컬라이징’도 급증하여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총 48건에 이른다. 웹소설과 웹툰,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매체에 따라 일정한 경계로 구분했던 콘텐츠 제작은 이제 ‘콘텐츠 IP 확장’ 개념을 기반으로 그 경계를 허물고 있다.


그리하여 2021년 현재 우리는 IP 확장 유행의 시대를 살고 있다. IP는 Intellectual Property의 약자로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지식재산’을 뜻한다. 예전에는 OSMU(One source multi use)라는 용어가 하나의 콘텐츠를 드라마,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등 다양한 매체 장르로 활용하는 것을 가리켰다. 수익을 창출하는 원작 콘텐츠를 IP로 지칭하며, ‘IP 확장’은 콘텐츠 IP 기반의 지식재산을 확대하여 부가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웹소설을 원작 IP로 활용하여 웹툰으로 제작하고 그 웹툰을 다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드는 사례가 많아졌다. 엄밀하게 말하면 웹툰의 IP 확장은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 등 2차 창작물의 제작을 뜻하지만 ‘웹소설→웹툰→영상’의 제작 구조 속에서 ‘웹소설 원작의 웹툰’을 제외한 채 웹툰의 IP 확장을 ‘웹툰 원작의 드라마나 영화’로 한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웹툰 IP 대상을 웹소설과 웹툰, 영상 등으로 확대하여, 요즘 유행하는 웹툰 IP 확장 현상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웹소설 기반 웹툰’과 ‘웹툰 원작의 영상물’ 등을 ‘웹툰의 IP 확장’의 대상으로 포함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원작 콘텐츠를 기반으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웹툰의 IP 확장의 유행은 이제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웹툰의 IP 확장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드래곤볼>이나 <원피스>, <포켓몬스터> 등 인기 만화의 IP를 확장하여 게임과 애니메이션, 완구 등으로 출시했고, 미국에서도 디즈니만화, 마블코믹스 등 다양한 인기 작품을 원천 IP로 활용하여 파생 콘텐츠의 제작 범위를 넓혔다.


웹툰 IP를 확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미 검증한 원작 콘텐츠를 활용한다는 장점 때문이다. 웹툰 플랫폼이나 영상 플랫폼이 콘텐츠를 제작할 때 일정 규모의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반드시 흥행 여부를 검토한다. 출시했을 때 흥행 여부를 예상하기 어려운 작품보다는 이미 인기를 얻어 대중적인 검증을 거친 작품의 IP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흥행 예측의 근거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를 받기도 쉽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원작 웹툰이나 웹소설로 조직된 열렬한 독자층인 팬덤은 2차 창작물인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의 시작과 함께 고정 수요층으로 확보된다. 2차 창작물의 독자는 다시 원작 콘텐츠에 유입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웹소설이 웹툰으로 변환될 때 웹툰의 작화나 스토리가 원작 웹소설의 분위기를 살리지 못한다거나, 웹툰이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배우들의 연기나 싱크로율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언급한 흥행에 대한 담보나 그 반대급부의 측면은 웹툰 IP 확장 유행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라고 보기에 조금은 어색하다. 웹툰 IP를 활용했을 때 발생하는 현상 또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효과에 가깝다.


웹툰 IP 확장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장르 획일화이다. 2020년 12월 28일 기준 2017년부터 네이버웹툰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웹툰의 현황은 총 48건이다. 48건의 장르를 네이버 기본정보를 통해 구분하면 로맨스 20건, 로판(로맨스 판타지) 9건, 현판(현대 판타지) 8건, 판타지 6건, 무협 4건, 사극로맨스 1건이다. 무협 4건을 제외한 나머지가 로맨스와 판타지 계열이다. 비율로는 91.7%에 해당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현황 역시, 2010년부터 2020년 초반까지 제작된 웹툰 원작 드라마 46편 중 로맨스와 판타지 장르의 비중은 50%가 넘는다. 장르 획일화는 비단 웹툰 IP 확장 대상 작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작 콘텐츠가 제작될 시점에 이미 장르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따라서 웹툰 IP 확장 유행 현상과 원작 콘텐츠의 장르 획일화 문제를 같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IP 확장 유행으로 도래한 웹툰의 산업적 성장과 함께 지속 가능한 웹툰 산업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장르 획일화라는 맹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자.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과 대중의 기호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은 웹툰 IP 확장의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는 관점으로 유용하다. 아즈마 히로키는 일본 오타쿠계 문화와 포스트모던 사회구조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며, 포스트모던 시대가 도래하면서 생긴 특징으로 ‘시뮬라크르의 전면화’와 ‘커다란 이야기의 쇠퇴’에 주목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원작과 복제의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시뮬라크르 개념이 등장했다. 원작과 복제 사이에 있는 시뮬라크르는 실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뮬라크르는 원작이 복제에 우선했던 이전 시대의 가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또한 커다란 이야기는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일종의 시스템이다. 눈에 보이는 표층 아래 심층에는 메시지를 담은 커다란 이야기가 존재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진입하면서 커다란 이야기는 쇠퇴한다. 시스템 전체를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커다란 이야기를 작게 분절하여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원본과 복제의 중간에 위치한 시뮬라르크가 파생되고 독자는 분절된 작은 이야기인 시뮬라크르를 소비한다.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에서 심층에 담긴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읽는 주체는 독자이다. 부호화된 데이터베이스는 독자의 경험, 방식 등에 의해 좌우된다. 독자는 커다란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와 관계없이 작품의 배후에 있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 캐릭터에 담긴 모에 현상은 일종의 키워드가 해체되고 나열되어 독자들의 취향에 따라 선별되는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대표적인 예이다.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은 작품이 데이터베이스로 해체되고 대중이 이를 소비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원본의 복제와 시뮬라크르의 파생 현상은 독자들의 기호를 겨냥한 데이터베이스 소비를 이끌어낸다. 오늘날의 수용자는 콘텐츠의 심층에 담긴 이야기가 아닌 분절화된 데이터베이스 즉, 취향을 소비한다.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를 돌아보면 출판만화 시절에는 만화잡지의 편집부가 콘텐츠 공급 시스템을 주도했다. 편집부의 큐레이션에 따라 잡지에 만화가 게재되고, 독자는 편집부가 제공하는 만화만 소비할 수 있었다. 독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독자가 ‘독자 의견’ 코너에 우편엽서를 보내더라도 편집부의 취사선택에 따라 실렸고, 매체의 출판 주기에 따라 독자의 의견은 출간 시점보다 한참 뒤에 표현되었다.


웹툰으로의 만화 제작환경 변화는 편집부가 가졌던 콘텐츠 소비 결정 권한을 독자에게 넘겼다. 독자는 이제 만화잡지 시절처럼 매체가 제공하는 작품만 소비하지 않는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플랫폼에서 웹툰 콘텐츠를 선별적으로 소비한다. 독자의 의견은 댓글과 별점을 통해 실시간으로 플랫폼과 작가, 다른 독자에게 전달된다. 디지털 만화 제작 환경의 도래는 생산자와 플랫폼 모두 대중의 기호에 반응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결국 산업적인 측면에서 콘텐츠의 흥행은 대중에게 달려있으며, 제작자는 대중이 원하는 기호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에서 ‘대중의 기호’는 콘텐츠의 유행을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다.


대중의 기호에 따른 현상과 유행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데이터베이스 소비는 대중의 기호에 의해 좌우되며 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돈과 연결된다. 그렇다면 대중의 기호는 웹툰과 웹소설 등 원작 콘텐츠에서 어떤 현상과 유행으로 나타나는가?


먼저 특정한 해시태그의 소비로 나타난다. 앞서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에서 모에 요소의 소비를 살펴보았다.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순간 그 캐릭터의 특징은 일정한 키워드로 해체되고 분류된다. 웹소설이나 웹툰에서는 장르나 콘셉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작품을 읽고 작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키워드의 형태로 나열된 데이터베이스를 소비한다. 최근 웹소설이나 웹툰에서 볼 수 있는 해시태그의 유행은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맥락과 맞닿아있다. 해시태그는 분절된 키워드로 작품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이야기의 성격이나 콘셉트, 장르의 특정 관습을 포괄하는 형태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텍스트릿은 웹소설 플랫폼의 대다수가 카테고리에 로맨스, 판타지 등 기본적인 장르의 구분을 두며 요즘에는 그 외에도 해시태그(#)를 활용해 작품의 특징과 요소를 밝히려는 시도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한정된 시간에 효율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해시태그를 선별적으로 선택하여 소비한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기호를 굳이 소비할 이유가 없다.


해시태그는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유행을 만들거나 다른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성공 이후 ‘전지적’을 붙인 제목이 쏟아져 나왔다. 2021년 9월 기준 네이버웹소설 플랫폼으로만 한정해도 <전지적 작가 시점>, <전지적 짐승 시점>, <전지적 직장인>, <전지적 독녀 시점>, <전지적 의사 시점> 등 비슷한 제목의 작품이 50여 건이나 된다. <나 혼자만 레벨업> 역시 <나 혼자만 노쿨타임>, <나 혼자만 모든 직업>, <나 혼자만 스켈레톤> 등 32건에 이른다. 흥행에 성공한 ‘#전지적’. ‘#나 혼자만’ 키워드는 유행이 되어 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웹툰과 웹소설 판타지는 대중의 기호를 대변한다. 해시태그의 선별적 소비는 작품에서 주인공을 먼치킨, 회귀, 빙의, 환생 등의 형태로 소환한다. 2021년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사람은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 고위 공직자 자녀의 입시 특혜 논란, 공공기관 직원의 땅 투기 의혹 등의 뉴스를 보며 현실에 분노한다. 독자가 몰입하는 판타지 속 주인공은 먼치킨, 회귀, 빙의 등의 콘셉트로 탄생하여 불합리한 현실 세계의 전복을 꾀한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난쟁이 이름에서 시작된 ‘먼치킨’은 웹툰에서 강한 능력의 캐릭터를 뜻한다. 먼치킨 주인공은 히든피스를 통해 완벽해진다. 만화 『유레카』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알려진 ‘히든피스’는 숨겨진 조각이라는 명칭 그대로 게임 판타지에서 주인공에게만 특별히 주어지는 비밀 퀘스트 또는 능력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제목 그대로 다른 사람은 그대로이고 나 혼자만 레벨업을 통해 강해진다. 요즘 유행하는 먼치킨 캐릭터는 히든피스에 의한 능력치 하나 이상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스토리를 시작한다.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위해 먼치킨과 히든피스를 원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많은 작품은 연약한 주인공이 다양한 시련을 극복하면서 강한 존재로 성장하는 영웅 서사를 기본 이야기 구조로 택했다.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신화 영웅 플롯’을 할리우드 시나리오에 적용하여 12단계에 이르는 영웅의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평범한 주인공이 모험의 소명을 받고 길을 떠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련을 극복하고 영웅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구조이다. 평범한 주인공이 강한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이 어렵게 악당 피콜로를 이기고 나니 더욱 강력한 프리저가 나타난다. 주인공은 프리저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단련하고 천신만고 끝에 프리저를 물리친다. 이후에 더욱 강력한 적인 셀이 등장하고 최종 보스로 마인부우가 나타나는 등 주인공의 성장과 함께 계속해서 강력한 적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모든 적을 물리치고 영웅이 된 손오공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과거 대중의 인기를 얻은 <슬램덩크>의 서사구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독자들은 예전만큼 주인공을 오랫동안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전 시대 평범한 주인공들이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했다면, 요즘 웹툰과 웹소설의 주인공들은 단시간에 레벨을 올리거나 우연한 기회에 좋은 아이템을 얻어 작품의 세계관 내 강력한 능력자가 된다. 앞에서 잠깐 소개했던 <나 혼자만 레벨업>이 대표적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성공 요인은 전통적인 성장 서사와 히든피스가 결합한 ‘먼치킨물’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E급 헌터 성진우는 우연한 기회에 S급 아이템을 얻으면서 갑자기 강해지지만 한 번에 최상위 단계로 올라가지 않는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성장한다. E급에서 C급으로 성장하지만 C급 레벨에서는 세계관 최강인 식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 외에도 <나노마신>, <전지적 독자 시점> 등 단계별로 발전하는 ‘전통적인 성장 서사’ 요소와 ‘먼치킨’ 요소를 결합한 작품이 대중에게 인기다. 먼치킨 트렌드를 좋아하는 독자는 물론 전통적인 성장 서사에 익숙한 독자까지 유입한 결과이다.


현재의 실패를 바로잡기 위해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회귀나 환생, 다른 사람으로의 빙의도 먼치킨이나 히든피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1895년 발표한 <타임머신> 이후 시간여행 콘셉트는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소재 중 하나이다. 뻔한 플롯이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시간여행 이야기에 열광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기대, 두려움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한 번 더 해요>, <신의 메스>, <판사 이한영> 등에서 주인공은 실패한 현재를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과거로 돌아간다. 현재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전생의 기억을 통해 과거의 다른 사람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행동한다. 전생의 실패를 하나씩 성공적으로 바꿔나간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나 <전지적 독자 시점>과 같이 주인공이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빙의 역시 소설 속 다른 사람보다 정보의 우위를 가지기 때문에 그만큼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게임에서 쓰이는 스테이터스 상태창 역시 유행처럼 판타지 장르에서 많이 쓰인다. 이전 세대보다 게임에 익숙한 MZ세대의 기호가 반영된 설정이다. 상태창에는 주인공의 레벨과 능력치, 쓸 수 있는 스킬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만 상태창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주인공의 상태창을 볼 수 없다. <나 혼자만 레벨업>이나 <취사병 전설이 되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 등 작품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마다 퀘스트가 주어진다. 퀘스트 요건을 달성할 때마다 레벨이 상승하고 진행에 필요한 다양한 보상과 히든피스가 주어진다. 그 외에도 환생, 빙의, 회귀한 여성캐릭터가 주체적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사랑을 성취하는 로맨스판타지도 마찬가지다. 현실에 지친 독자의 기호를 충족할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포럼 서은영 위원은 대한민국이 판타지에 열광하는 이유로 ‘독자가 판타지에서 리얼리티를 경험’하는 데 주목했다. 오쓰카 에이지와 아즈마 히로키의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 개념을 활용하여 독자는 판타지 속 먼치킨 캐릭터를 통해 가상세계에서 계급투쟁과 현실 세계의 전복을 실현한다고 말했다.


대중의 취향에 따른 일정한 장르 요소의 형성과 유행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만화 산업, 만화 생태계 구성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대중에 기호에 따른 유행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부단히 경계해야 하며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장르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웹툰 IP 확장이 되는 작품은 원작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대중의 기호에 따르며 장르 획일화 현상에 동조한다. IP 확장 이전에도 원작 콘텐츠가 제작되는 시점에 이미 장르 획일화의 문제는 존재하며, 전문가들 역시 무분별한 장르 획일화를 지적한 바 있다.


웹소설을 웹툰화하거나 웹툰을 드라마로 제작하는 데 직접 관여하는 것은 콘텐츠 플랫폼이다. 웹소설을 웹툰화할 때는 CP(Contents Provider)를 비롯한 웹툰 플랫폼에, 웹툰의 영상화는 스튜디오나 미디어 플랫폼에 의해 진행된다. 웹툰 플랫폼은 대중의 기호를 기민하게 파악하여 소위 ‘팔릴만한’ 작품을 선별한 뒤 2차 창작물을 제작한다. 여기에 많은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왕이면 시장에서 검증된 콘텐츠가 우선시 된다. 대중의 기호에 따른 특정 장르의 작품만이 IP 확장의 대상이 되면 웹툰의 장르 다양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만화평론가 성상민은 “가장 선도적으로 유료 웹툰 플랫폼의 모델을 만들었던 레진코믹스가 여전히 성인 웹툰 확보에 골몰하며,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에 속하는 탑툰이나 봄툰, 투믹스(구 짬툰) 등이 결국 ‘다양한 장르‘는 구색 맞추기 식으로 편성할 뿐 대다수의 작품을 성인 웹툰으로 편성했던 것은 이러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며 웹툰 플랫폼이 장르 다양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웹툰 업계에 줄곧 지적되어 오던 특정 장르의 쏠림 현상과 비슷한 맥락이다. 대중의 기호는 주로 학원물, 로맨스, 판타지에 집중된다. 작가는 자신이 잘 그릴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대중의 취향에 자신의 작품 스타일을 맞춘다.


물론 콘텐츠에 따라서는 웹툰 플랫폼에서 대대적인 흥행을 하지는 않았지만 소재나 작품성에 의한 IP 확장 콘텐츠가 전혀 없지는 않다. 대중의 기호보다 작품성으로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어 드라마로 제작된 <스위트 홈>, <정년이>(제작 예정) 등은 위에서 언급한 대중의 기호에 의한 장르 쏠림 현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많은 작품이 대중의 취향을 살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상의 현상을 종합하면 대중의 기호는 원작 콘텐츠와 웹툰 IP 확장의 ‘장르 획일화’ 문제와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 장르 다양성이 훼손되고 콘텐츠 장르가 획일화되면 웹툰 산업은 중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웹툰 생태계의 구성원인 생산자와 소비자, 매개자가 함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산업적인 측면에서 창작자와 소비자의 허브 역할을 하는 웹툰 플랫폼이 장르 획일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평론가 위근우는 웹툰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플랫폼 내 장르 점유율의 상한을 두는 방법, 기타 장르의 수급 균형을 맞추는 방법, 큐레이션의 활용, 일정 기간 작가가 연재하는 방법 등을 제안했다.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플랫폼에 일정한 사회적 책임을 부여한다는 취지이다.


제안된 의견을 보완하자면 ‘점유율 상한을 두는 방법’은 사회적 의무 부여 취지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다. 특정 장르의 점유율을 제한하는 방식이 장르 편중을 줄일 수 있지만 두 가지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익 침해’ 문제와 ‘역차별 논란’이다. 플랫폼 역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의 본질은 이윤 추구이다. 웹툰 플랫폼마다 주력 장르 콘텐츠와 점유율은 천차만별이다. 가령 한 장르의 점유율을 50% 이상 넘기면 안 된다고 제한했을 때 네이버나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은 어느 정도 점유율 안배가 가능하지만, 특정 장르를 주력으로 하는 플랫폼의 경우 점유율을 제한하는 방식은 기업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점유율을 달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점유율 상한을 설정하는 절대적인 근거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를 적용하기에 모호하다. 아울러 정책적 규제가 정당한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 국가의 개입은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장의 조절 능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장의 조절 능력을 최대한 존중하고 제도적 규제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역차별 논란이다. 어떤 플랫폼에서 한 장르의 점유율 기준인 50% 다 채웠을 때, 동일 장르 작품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해당 플랫폼에서 연재될 수 없다. 동일 장르의 다른 작품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이는 플랫폼과 작가, 독자의 손실로 이어진다. 점유율 상한의 방식은 장르 편중에 대한 대안이긴 하지만 문제가 될 요소가 곳곳에 존재한다. 그 외에도 네트워크 외부성에 의한 유인 효과를 들어 주장한 ‘큐레이션의 중요성’의 구체적인 방법도 보완될 필요가 있다.


위근우 평론가의 제안에 기반하되, 논의를 조금 더 넓혀 웹툰의 IP 확장 대상 작품의 장르 다양화를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겠다. 첫째, 콘텐츠 플랫폼은 해당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작품을 리뷰 또는 비평의 형식으로 소개해야 한다.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플랫폼 큐레이션에 의해 제공되지 않는 작품은 얼마 안 가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영상대학교 박석환 교수는 『만화 리뷰 쓰기』에서 리뷰의 기능을 소개했다. 리뷰는 하루에도 수백 권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작품이 가진 의미를 찾아내어 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히고, 흥행 위주의 작품 소비를 재고하며 독자가 다양한 성향의 작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 웹툰 플랫폼 내에 비평 또는 리뷰 코너를 설치하여 전문 비평가뿐만 아니라 시민 리뷰어, 대학생 리뷰어 등을 통해 웹툰 리뷰를 게재해야 한다. 플랫폼에서 리뷰와 비평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한다면 네트워크 외부성을 줄이고 장르의 다양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 구독 모델의 적용이다. 2013년 레진코믹스의 웹툰 유료화 서비스 이후 편당 결제가 일반화되었다. 편당 결제에서 대중의 기호는 절대적이다. 웹툰 플랫폼은 제한된 노출 영역에서 인기 있는 작품 위주로 큐레이션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배경에서 장르의 다양화는 실현되기 어렵다. 넷플릭스와 왓챠 같은 OTT(Over the Top)의 구독 모델을 플랫폼에 적용하면 독자로서는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마음껏 접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정주행 하는 것도 기존에 편당 유료 결제보다 부담이 적다. 웹툰 플랫폼 역시 매출의 압박이 줄어들기 때문에 비교적 소외된 장르의 작품을 서비스할 수 있고 실험적인 콘텐츠에도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다. 현재 미스터블루는 월 2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면 많은 작품의 무제한 감상이 가능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만화 감상 시 월평균 소비 가능 금액은 ‘1만 원 미만’이 2018년 63.0%에서 2020년 58.5%로 줄었으나 ‘3~5만 원 미만’, ‘5~8만 원 미만’, ‘8~10만 원 미만’, ‘10만 원 이상’은 모두 소폭 상승했다. 통계를 보면 월평균 소비 가능 금액이 충분히 늘어날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금액대를 기준으로 1인당 구독료를 1만 원으로 책정했을 때 유료구독자가 100만 명이라면 매출 규모는 100억 원이며, 1년으로 환산하면 1,200억 원이다. 이는 2020년 네이버웹툰(2,460억 원), 카카오페이지(매출액 3,592억 원)의 매출액과 비교했을 때 절반 수준이다. 당장 매출액만 비교하면 구독 시스템 도입을 주저할 수 있지만, 구독 기간을 월 단위가 아닌 주 단위나 일 단위로 구분하여 가격을 조정한다면 기존에 무료 콘텐츠만 소비하던 잠재적 유료 독자를 유료 결제의 영역으로 초대하여 구독자 수를 늘릴 수 있다. 장르 다양성 확보의 목적 역시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플랫폼 큐레이션의 적절한 활용도 필요하다. 웹툰 플랫폼의 큐레이션은 독자가 지금까지 읽은 웹툰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독자가 한정된 시간에 효율적으로 웹툰을 소비할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정하여 추천한다. 동시에 웹툰 플랫폼은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웹툰 플랫폼의 큐레이션 시스템은 AI와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웹툰 소비 증대를 위해 노력하지만 근본적으로 대중의 기호를 따르기 때문에 장르 획일화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큐레이션 방식, 즉 우선순위에 따른 추천에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하여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추가로 추천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이나 ‘내가 좋아할 만한 작품’ 추천 외에도 ‘한 번쯤은 볼만한 작품’ 같이 기존의 독자의 기호와는 다른 장르의 콘텐츠를 추천한다면 장르 다양성 확보라는 취지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마지막으로 오픈 플랫폼의 활발한 활동 역시 콘텐츠 장르 획일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 『2020 만화이용자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플랫폼 이용자의 88.7%가 네이버웹툰을 이용한다. 오픈 플랫폼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에 비해 매우 미미하다. 그러나 2018년과 2019년에 포스타입과 딜리헙이 ‘기타’로 분류되어 수치조차 확인할 수 없던 것에 비하면 2020년에는 포스타입이 1.1%, 딜리헙이 0.2%를 기록하는 등 오픈 플랫폼의 활동은 2018년 딜리헙 <극락왕생>의 성공 이후 점차 늘어나는 중이다. 오픈 플랫폼에서는 정해진 소수의 창작자가 아닌 다수의 창작자가 활동한다. 기존 웹툰 플랫폼에서 작가가 플랫폼과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방식이라면 오픈 플랫폼에서는 작가가 플랫폼과의 계약 없이 독립적으로 창작을 한다. 작가가 스스로 기획, 연재, 홍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자신의 호흡으로 작품을 창작한다는 매력적인 장점을 가진다. 오픈 플랫폼을 이용하는 독자 역시 기존 플랫폼을 이용하는 독자와 조금 다르다. 유행을 앞서 나가는 얼리어답터나 사회 담론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는 오피니언 리더 같이, 웹툰 장르를 다양하게 소비하려는 독자들이 주로 오픈 플랫폼을 이용한다. 오픈 플랫폼의 활발한 활동은 플랫폼과 창작자, 소비자가 함께 연대하며 건강한 웹툰 생태계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웹툰 IP 확장 유행과 장르 다양성의 확보

웹툰 IP 확장은 당분간 계속 진행될 전망이다. 카카오페이지 류정혜 부사장은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된 IP 확장 프로젝트가 65개인데, 2021년부터 향후 3년 동안 진행될 프로젝트 수도 65개에 달하며, 이는 앞으로 슈퍼 아이피 프로젝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 밝혔다. 웹툰의 IP 확장이 유행이라고 해서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무분별한 대중의 기호는 웹툰의 IP 확장에서 장르의 획일화라는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


이 글 처음에 언급한 <미생>의 격언처럼 웹툰 IP의 장르 다양성은 건강한 웹툰 생태계를 지속하는데 필요한 요소이다. 대중의 취향에 작품 제작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플랫폼이 비평과 큐레이션 등을 통해 독자의 기대지평 스펙트럼을 넓히고, 독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면 어떨까? 여기에 더해 오픈 플랫폼의 활발한 활동은 웹툰 IP 콘텐츠 ‘생산-매개-소비’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콘텐츠 플랫폼의 노력과 오픈 플랫폼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산업적 측면에서 폭넓은 웹툰 IP 활용을 기대해 본다.



2021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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