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무게
사랑을 지키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살다 보면, 치열하게 살다 보면 너무 힘에 부쳐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온다.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감사하지 않아서도 아닌, 말 그대로 힘에 부쳐, 잠깐이나마 모든 걸 놓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난 며칠이 그런 기분이었다. 하아,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에 대한 새삼스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시작한 인생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인생이고 내가 선택한 길인데, 그래도 무언가 억울하고 화가 솟구치는 기분이랄까.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편안한 인생을 보는 것에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오르며 결국 그 모든 불만의 뾰족한 끝은 이런 인생을 선택하고 살아온 나 자신에게 쏟아져 내린다. 어딘지 모르게 날카롭고 무서워진 나의 낌새를 가족들이 모를 리가 없다. 남편부터 시작해 항상 즐거운 막둥이까지 엄마 눈치를 보며 갸웃거린다.
하지만 괴로워하는 순간에도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꺼내고 다시 넣고 식기세척기에서 식기를 꺼내 정리하고 다시 넣고, 식사시간 한 시간 전에 밥을 안치고 요리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식탁을 정리하고 폰으로 장을 보고..
휴우, 인생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던가. 생이란 것은 시작부터 그 끝까지 무게를 버텨내어야만 유지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것도, 지키려고 들자면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무게를 견뎌내고 지켜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야 겨우 겨우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부치는 날의 내게는 사랑의 무게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처럼 느껴진다. 혼자 한숨을 쉬고 커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머리를 긁적여 보아도 마땅히 기분 전환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부릉, 가벼운 진동과 함께 구글 알림 창이 뜬다. 몇 년 전부터 내 핸드폰에 착착 저장해놓았던 아이들 사진을 연도별로 정리해 성장영화를 만들어 놓았다고 보여준다. 귀염둥이 막내가 뒤집기를 하느라 수유 베개에 코를 박으며 파닥거리는 사진에서부터 첫걸음마를 겨우 하는 영상, 놀이터에서 엄마 손 놓고 저 멀리 도망가는 영상까지 감동적인 음악과 함께 재생해준다.
이런, 한방 먹었다.
그래, 이렇게 시작했었지. 이 보드랍고도 연약한 생명체들을 사랑하게 되어서, 이 사랑을 지켜내고 유지하기 위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해내고 견디리라 했던 마음이 생각이 났다.
첫째 임신 때 출혈성 방광염에 걸려 피 소변을 보며 끔찍한 통증에 남편을 붙들고 울부짖었을 때도, 둘째 임신 때 대상포진에 걸렸는데 수포가 없어서 대상포진 인지도 모르고 칼로 후벼 파는듯한 통증을 견뎌내었을 때도, 셋째 때부터 시작된 조기진통으로 쌍둥이와 여섯째 이른둥이 출산, 일곱째 맥도널드 수술까지 이어진 병원생활, 급성간염 발병, 제왕절개 수술 등등 그 모든 괴롭고 처절한 순간순간마다 되새기고 떠올렸던 생각.
"엄마가 지켜줄게. 엄마가 버티고 견디고 참아내어서 지켜줄 거야. 사랑하니까."
며칠간 나를 괴롭히고 짓누르던 의문의 뭉텅이가 한 줄기 눈물과 함께 그냥 녹아버린다.
그래, 사랑하니까.
그럼 됐다, 자, 이제 밥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