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너무 좋아하는 고양이

내용에는 너그럽지만 종이질에는 엄격하다옹!

by 김여명

내 방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나 여명이도 이제 어느 정도는 적응을 했지만, 여전히 바닥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애착 바지가 깔린 침대에서 자는 걸 정말 좋아했지만, 아직 뽀시래기라서 자기 힘으로는 침대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 봤자 높이 50cm 정도인데 여명이한테는 한없이 높은 모양이었다. 올라가고 싶을 때는 침대 앞에 앉아서 내가 올려줄 때까지 뚫어지게 나를 쳐다봤다. 다행히 내려오는 건 스스로 할 수 있어서 나는 아침마다 애착 바지와 함께 여명이를 침대 위에 올려주고 출근했다. 집에 돌아오면 항상 바닥 어딘가에서 발견되긴 했지만.

여명이가 발판으로 사용할만한 도구가 없을까 살폈지만 마땅치가 않았다. 쥐돌이를 밟고 도움닫기를 하면 좀 나을 텐데, 여명이는 도구의 도움을 받지 않는 대쪽 같은 고양이였다. 자기 힘으로 서너 번 폴짝폴짝 뛰어보고 안되면 빠르게 포기했다. 작아서 침대에도 혼자서는 못 올라가는 여명이가 짠하면서도 귀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했다가 돌아왔는데 여명이가 없었다. 있을만한 장소를 싹 다 뒤져봤는데도 없었다. 얘가 도대체 어딜 갔을까 슬슬 당황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작게 재채기 소리가 났다.

나 여깄다옹!!

좁은 방에서 제일 공간을 많이 잡아먹는 침대, 그 위에 저렇게 보란 듯이 있었는데 재채기를 할 때까지는 절대 안보였다. 여명이가 절대 올라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침대 위는 아예 볼 생각을 안 했다. 저렇게 잘 보이는 위치에 있는데도. 혼자 침대에 올라갈 수 있게 되어서 기특한 한편, 그 역사적인 장면을 놓친 게 못내 아쉬웠다. 너는 이왕 올라갈 거 누나 있을 때 올라가지 그랬냐고 우는 소리를 한참 했다.

침대를 정복하고 나서부터 여명이의 행동반경이 확 넓어졌다. 침대 다음으로 등반에 성공한 곳은 책장이었다. 침대를 밟고 책장으로 올라갔다가 책장 옆 공유기로 착지하는 게 여명이의 등반 코스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여명이가 책을 너무 좋아했다. 꽂혀있는 책들 위로 올라가서 잠을 자는 날이 늘어났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여명이는 책을 스크래쳐로 쓰기 시작했다. 여명이와 나의 책 취향이 비슷한 것이 불운의 시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만 박박 긁어서 책장 맨 위칸으로 옮겼더니 그 책을 긁으러 맨 위칸으로 올라갔다. 못 긁게 하려고 수직 스크래쳐를 사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나는 아끼는 책들을 여명이가 좋아하는 위치에 꽂아줘야 했다. 책은 다시 사면되니까 맘껏 긁어라... 쉬익

책장 등반의 마무리는 공유기 위에서!

스크래쳐를 잘 쓰는 요즘도 가끔 한 번씩 책을 긁는데, 꼭 나를 빤히 보면서 긁는 게 얄미운 포인트다. 귀여우면 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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