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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Dec 31. 2020

죽음과 눈 맞추는 삶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_케이틀린 도티 * 죽은 자의 집 청소_김완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초반부터 경조사는 끊임없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내가 참석해야 할 경조사 중 결혼식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어느 순간 결혼식과 장례식의 비율이 비슷해졌다. 적어도 한두 달 전에 소식을 듣고 옷이든 마음이든(!) 준비를 할 수 있는 결혼식과 달리 갑자기 찾아오는 장례식은 아무것도 미리 준비할 수 없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죽는 날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장례식은 슬픔의 정도만 다를 뿐 항상 갑작스러웠다. 고인을 생각할 때의 슬픔, 남은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 등으로 마음이 잔뜩 무거워서 장례식장에서 먹는 밥은 항상 얹혔다.

연말에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을 읽으면서 그보다 조금 더 전에 읽었던 '죽은 자의 집 청소' 생각이 났다. 사실 막연히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 지에 대해서만 궁금했었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도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다. 사후 세계는 정말 있을까, 내 정신이나 영혼 같은 건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 걸까 정도. 그런데 이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 죽음 후 남겨질 것들에 생각하게 되었다. 내 몸은 어떻게 될까, 내가 생활하던 공간은 어떻게 될까. 누가 처리해줄까.


여자 장의사 케이틀린 도티가 풀어내는 죽음과 장례 이야기는 유쾌하지만 가볍지는 않았다. 그저 슬프기만 한 화장터의 벽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알았다. 작가가 처음으로 일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던 사람의 두개골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충격을 받았다. 중세사를 전공한 작가는 장례 절차뿐만 아니라 세계의 장례 문화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어렵거나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죽음이 막연히 무서웠는데, 약간 현실적인 무언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작가의 다음 책 제목처럼 '좋은 시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 죽은 사람의 몸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죽은 사람이 남기고 간 자리에 대한 이야기다. 읽는 내내 뭐라 짚어내기 어려운 마음이 들었다. 슬프기도, 안타깝기도 했고, 읽는 게 힘들 정도로 처참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고독사 이후의 집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을 정리하고 치우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저절로 집이 깨끗해지는 게 아니니까 누군가는 했을 일인데도. 시종일관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작가가 가끔씩 울컥하는 대목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에서는 같이 울컥하기도 했다.

죽은 자의 집 청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책으로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연말에 이 책들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정된 삶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써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생각만큼 시간을 귀하게 쓰기가 쉽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너무 매몰될 필요는 없지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인지하면서 매시간을 후회 없이 알차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죽은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도 가끔 생각하고 그걸 위해서 항상 주변을 너무 너저분하지 않게 틈틈이 정리하기로 했다. 몇 시간 뒤면 시작될 2021년에는 시간을 소중하게 쓰면서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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