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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Jan 09. 2021

그게 반드시 단점은 아니니까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_전홍진

나는 예민한 편이다. 예민한 사람인 게 확실한데 굳이 '편'이라는 쿠션을 넣은 이유는 예민함의 기준이 상대적이고, 집 밖에서는 덜 예민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 밖에서 보내는 10시간 이상 내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고 있다면 예민한 편이라고 해도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예민함은 그 사람이 가진 기질일 뿐 마음먹기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예민함이 온전히 단점인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내가 예민하다는 걸 말하기가 어렵다. '나 예민해요'라는 말속에는, 그러니까 내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게 굴어도 상대방이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 슬쩍 들어있는 것 같아서다. 나는 정말 예민한 사람인가, 어느 정도로 예민한 사람인가, 예민한 사람으로 살면 어떻게 되는가. 여러 의문들을 가지고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심지어 그냥 예민한 사람도 아닌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나는 평소에 내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과 예민한 사람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며 아니라는 걸 알았다. 책 속에는 자신이 매우 예민한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체크리스트가 있다. 28개 항목 중 7개 이상 해당되면 매우 예민한 사람인데, 나는 11개 해당이었다. 나는 사실 예민함과 매우 예민함 사이에 있는 사람이었나 보다. 사실 체크하면서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싶었다. 그만큼 체크리스트 상 매우 예민함의 기준이 내 생각만큼 빡빡하지는 않았다.

예민함과 뇌의 작용

책의 후반부에는 비교적 현실적인 조언들이 있지만, 앞에서는 대체로 예민함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예민함은 반드시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런 취지의 이야기들이 체크리스트 앞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결과를 들고서도 이걸 반드시 극복해야겠다는 비장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단지 내가 가진 예민한 기질을 잘 활용할 방법이 있을지를 알고 싶었다. 저자는 국내외 구분 없이 많은 예민한 사람들을 만나왔고, 그들의 마음을 뇌과학과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분석해왔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그런 사례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 있었다.

윈스턴 처칠과 블랙독

예민함을 극복하거나 강점으로 활용한 유명인들의 이야기부터 일반인의 상담 사례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너무 큰 과업을 달성한 유명인들의 이야기들보다 일반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유명인들 중에서는 처칠이 자신의 우울증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내가 먼저 내가 예민하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한 사람들을 만나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다. 너무 먼 미래나 과거를 생각하는 게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현재에 집중해야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자꾸만 과거에 얽매이게 되는 사람을 위한 조언으로 저자는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를 권했다. 책을 읽는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뭔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일단 생각을 한 번 끊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과거 생각에 사로잡히고 있다는 걸 인지하면 곧장 뭔가 읽을거리를 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나면 불편한 사람 vs 편안한 사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런 사람이 몇 떠올랐다. 사실 나도 이런 사람일지 모른다. 올해는 사람을 대할 때 너무 직설적이지 않게, 감정은 조금 덜어내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런 사람과 대화할 때는 표정이나 목소리에 너무 신경 쓰기보다, 대화 내용에 집중하기로 했다.

에너지를 잘 유지해보자

이건 예민한 데다가 우유부단하기까지 한 나에게 주는 직접적인 조언으로 느껴졌다. 물건을 하나 사야 하면 디자인이든 뭐든 최소 3일은 고민하는 나에게 그 에너지를 좀 줄여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결국 선택에 필요한 고민도 에너지를 쓰게 되고, 에너지를 소진하면 사람은 지치고 예민하게 되니 그 고리를 끊어보라는 이야기였다.

글을 맺으면서

모든 일을 너무 감정적으로,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을 올해는 해보기로 했다. 일희일비의 아이콘인 나에게는 어려운 도전이겠지만,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으면서도, 과몰입하지 않도록 밸런스를 맞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21년을 여는 책으로 어떤 걸 읽어야 할지 연말에 고민을 한참 했다. 후보는 세 권이었는데, 2020년에 리커버 한정판 표지가 예쁘다는 단순한 이유로 손에 넣은 이 책을 우선 읽었다. 표지에 이끌려 샀는데, 내용까지 괜찮아서 2021년 첫 책으로 만족스러웠다. 속지에 '예민할 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저자의 친필 메시지가 들어있었는데, 아마 내가 예민하다는 걸 인지할 때마다 나는 이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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