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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Mar 14. 2021

48시간 단식 후 깨달은 것들

인간과 고양이 모두에게 길었던 어느 주말

모든 일의 화근은 유튜브였다. 모처럼 여명이와 나란히 누워서 빈둥거리던 어느 오후, 여명이 냥통수에 1/4쯤 가려진 화면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주제의 영상들로 나를 이끌었다. 어느 순간 다이어트 관련 주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나는 이놈의 유튜브도 내가 살찐 걸 눈치챘나 싶어서 슬슬 언짢아졌다. 그런 영상을 몇 개 보다가 흥이 팍 깨져버려서 간식이나 먹어볼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일을 위해 전날 퇴근길에 산 크루아상이 그날의 간식이었고, 나는 함께 마실 커피를 내리기 위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내가 물을 끓이니까 간식 시간이라는 걸 기가 막히게 눈치챈 여명이도 신나서 뭐라도 좀 줘보라는 듯이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어필했다.

물이 끓는 동안 나는 문득 내 몸무게가 궁금했다. 안 맞는 옷이 늘어나기 시작해서 살이 찐 건 느낌으로 알겠는데, 정확히 몇 kg일까. 간식 먹기 전 활동으로는 적절하지 않지만, 나는 오랜만에 몸무게를 재보기로 했다. 4개월 넘게 몸무게를 안 쟀더니 체중계를 어디에 뒀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이때라도 체중 측정을 포기했으면 나는 크루아상을 맛있게 먹고 평화로운 오후를 보냈을 텐데, 그날따라 내 몸무게가 그렇게 궁금했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항상 모든 일을 그르친다는 걸 이제는 알 때도 됐는데.

방 한 구석에서 어렵게 찾은 체중계에 올라가면서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하염없이 올라가던 숫자가 멈추는 순간 멍해졌다. 수평이 안 맞았구나, 바닥이 좀 기운 것 같더니 이게 이렇게도 오류가 나나보다 하며 나는 자리를 옮겨 다시 체중계에 올라갔다. 같은 숫자가 떴다. 이놈의 집구석은 모든 바닥이 다 기울어진 건가. 또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도 같은 숫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숫자 표기가 달라진 건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 뒤로도 두 번 더 체중계에 올라갔고, 그때마다 같은 숫자가 떴다. 어쩔 수 없이 숫자를 받아들인 나는 먹으려던 크루아상을 우리 집 정신과 시간의 방, 냉동실에 봉인했다.

놀랍게도 작년 이맘때보다 10kg 가까이 체중이 늘어있었다. 숫자를 몰랐으면 좋았을 걸, 나는 왜 의무교육을 마쳐서 숫자를 읽을 줄 아는가. 왜 쓸데없이 인바디 측정까지 된다는 체중계를 집에 쟁였는가. 그동안 뭐가 그렇게 맛있었는가. 온갖 자책을 다 하는 동안 여명이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왜 간식을 안 먹냐는(주냐는) 눈치였다. 문득 여명이한테도 미안해졌다. 그동안 내 체중은 이 꼴을 하고선 정상 체중인 여명이를 그렇게나 놀린 거였다. 게다가 성장기였던 여명이는 7개월 동안 고작 4.5kg 정도만 늘었다. 체중계 위에서 나는 여명이가 숫자를 모른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나는 살쪄도 귀엽다옹!

간식을 쟁취해서 만족스러운 여명이 옆에 앉아, 나는 검색을 시작했다. 안 먹을 수는 있어도 적게는 못 먹는 나에게 유튜브는 '단식'이라는 키워드를 내밀었다. 보아하니 단식도 종류가 여러 가지인 모양이었다. 제일 일반적으로 하는 단식은 72시간 단식인 것 같고 길게 하는 사람들은 10일, 14일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72시간도 버거울 것 같아서, 굵고 짧게 48시간 동안 물과 소금만 먹는 단식에 도전하기로 했다. 마음을 조금 일찍 정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였다. 나는 새벽 배송을 해주는 마켓컬리에서 단식 준비물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이틀을 굶고 살이 드라마틱하게 빠질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지만 주말 사이에 살이 더 찌지 않기를, 그리고 위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 전 준비

사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내가 하려는 건 물과 소금만 허용되는 단식이라서. 나는 2리터짜리 생수와 장을 비우기 위한 푸룬 주스를 담았다. 그리고 단식이 끝난 뒤 보식 기간에 먹을 견과류와 두유, 그리고 채소 몇 가지를 더 담았다. 단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블랙커피까지는 허용이 되는 것 같았는데, 꿀물부터는 의견이 조금씩 갈리기 시작했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은 아예 빼는 게 나을 것 같아서, 48시간 동안 나는 물, 소금, 블랙커피만 입에 넣기로 했다.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한 푸룬 딥워터를 오전 8시에 마시고, 오전 8시 30분부터 내 본격적인 단식이 시작되었다. 저 푸룬 딥워터 말인데, 되도록 외출하지 않는 날 마시기를 권한다. 겉면에 '맛있게 빠르다'라고 되어있는데, '빠르고 오래간다'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효과는 아주 좋은데, 화장실을 쉬지 않고 들락거려야 한다. 마실 분들은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최소 7시간은 외출을 하지 않아도 될 때,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도 될 때, 그럴 때 마셔야 한다.


단식 1일 차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시작하고 반나절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푸룬 딥워터의 영향으로 화장실 밖에서 보낸 시간이 짧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첫 번째 위기는 오후 1시쯤 찾아왔다. 일단 허기를 느낄 때마다 물을 마셨고, 오후 3시쯤에는 커피를 한 잔 연하게 내렸다. 내가 커피 원두를 갈기 시작하자 방에서 자고 있던 여명이가 번쩍 깨서 다가왔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간식을 먹어도 세 번은 먹었을 내가 이제야 커피 내릴 준비를 하는 게 여명이에게도 의아했을까. 내가 뭘 먹으면 그 김에 자기도 간식을 조금 얻어먹곤 했는데, 내가 아무것도 안 먹어서 좀 당황스러웠을 거다.

생명수 같았던 커피 한 잔

여명이 간식을 챙겨 주는 동안 방 안에는 커피 향이 돌기 시작했다. 향을 맡으니까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연하게 내린 커피를 거의 1시간 동안 아껴 마셨다. 교정 봐야 할 문서를 오전 내내 화면에 띄워놓고 한 글자도 검토를 못했는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까 그제야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게 살을 왜 찌워서 이런 셀프 고문을 하고 있나 싶었다. 커피로 한 3시간은 기운을 낼 수 있었는데 저녁 무렵이 되니까 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이제 소금 차례. 단식하는 사람들은 히말라야 핑크솔트나 죽염을 먹는다는데, 나는 그냥 집에 있는 천일염을 한 꼬집 덜어냈다. 저녁에는 소금도 그렇게 맛있었다. 손끝으로 조금만 찍어 먹었는데도 짜서 더는 못 먹을 수가 없었다. 극소량 밖에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소금만 허용이 되는 건가 싶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배가 너무 고팠다. 단식을 시작하면 여러 종류의 맛있는 음식들이 다 생각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첫째 날 나를 괴롭혔던 유일한 음식은 식빵이었다. 막 구워낸 식빵 딱 한 조각이 너무 먹고 싶었다. 단식이 끝나고, 보식까지 마무리되면 꼭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집에서 식빵을 사냥해오겠다고 다짐하며 안 오는 잠을 청했다.


단식 2일 차

보통 나는 아침에 먹을 메뉴를 미리 정해 두고, 그 즐거움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그런데 둘째 날은 아침에 눈을 뜨기가 정말 싫었다. 되도록 천천히 일어나서 깨어있는 공복 시간을 줄여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는 없었다. 우리 집에는 끼니를 거르면 하늘이 두 쪽 나는 줄 아는 김여명 군이 있다. 내가 단식을 하든 말든 여명이 밥은 챙겨야 했다. 희한하게 여명이는 그날 내가 단식을 하는 줄 알았는지, 아니면 자기도 엄청 피곤했는지 내 옆에서 이불을 덮고 사람처럼 한참을 같이 잤다. 이유가 뭐였든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게...농담이면 좋겠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여명이 밥을 챙겨 주고, 나는 그 옆에서 처량하게 물을 마셨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둘째 날은 좀 일찍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마시면서 오랜만에 나이브스 아웃을 다시 봤다. 이미 봤던 영화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용은 머리에 안 들어오고, 크리스 에반스가 손에 든 로투스 비스킷만 눈에 들어왔다. 내 단식으로 여명이도 평상시 주말보다는 간식을 좀 적게 먹었다. 그게 미안해서 사냥놀이를 평소보다 더 오래, 격렬하게 해 줬다. 여명이 간식을 챙겨주면서, 옆 자리에 앉아서 '여명아, 그거 무슨 맛이야? 맛있어?'라며 한참 말을 걸었다. 여명이는 아주 귀찮아하면서 소가 파리 쫓듯이 꼬리로 나를 쳐냈다. 그 순간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처량한 것 같았다. 낮에는 그렇게 배가 고프고 음식 생각만 나서 어쩔 줄 모르겠더니, 저녁 무렵부터는 배도 많이 안 고프고 음식 생각이 많이 나지 않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다음날 먹을 사골 채소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사골 채소탕의 재료들

찾아보니 정해진 레시피는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내 마음대로 끓였다. 양파, 양배추, 당근, 토마토를 사골 육수에 넣고 거의 1시간 동안 끓였다. 아직 단식 중이라 맛은 볼 수가 없었다. 일단 냄새는 그럴듯했는데, 냄새와 달리 맛이 너무 이상할까 봐 염려스러웠다. 다음 날 회사에 가져갈 견과류와 두유, 채소탕 도시락을 챙겨 놓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드디어 뭔가를 먹을 수 있다.


보식 기간

8시쯤 출근한 나는 8시 반을 기다리며 커피 원두를 갈았다. 고작 48시간 단식을 해놓고 직장 동료들에게 48년 동안 단식한 사람처럼 생색을 냈다. 상냥한 동료들이 약간의 호들갑을 섞어가며 적극적으로 반응해줘서 나는 오전 내내 잇몸이 말랐다. 드디어 8시 반, 나는 아몬드 하나를 한참 동안 꼭꼭 씹어 먹었다. 그냥 아몬드 한 알인데, 허니버터 아몬드처럼 달고 고소하고 짭짤했다. 아몬드가 이렇게 맛있다니. 아몬드 10알, 호두 3알 정도를 한참 동안 오도독오도독 깨물어 먹었다. 2021년에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보식 첫째 날은 그렇게 견과류, 두유, 사골 채소탕을 먹었다. 보식 기간 중에는 탄수화물을 되도록 안 먹는 게 좋다고 해서 되도록 저 메뉴로 식사를 했다. 한 이틀 굶으면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 좀 사라진다고 했는데, 나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당장 저녁에 먹을 사골 채소탕에 모짜렐라 치즈를 얹었다. 치즈는 탄수화물 1g 미만으로 들었다니까 괜찮겠지...라고 합리화를 마치고, 나는 치즈가 녹아 있는 채소탕을 맛있게 먹었다.

둘째 날도 아침과 저녁은 비슷한 메뉴로 먹었다. 단지 점심 식사로는 피자를 먹어야 했다. 내가 이렇게 우발적으로 단식을   모르고 진작에 잡아놨던 약속이라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조각만 먹고 손을 떼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속세 음식은 너무나 맛있었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조각을 먹었다. 식탐이 하나도  줄어든  같아서 조금 슬펐는데,  이틀 남짓 동안 위가 조금 줄어든  같았다.  조각을 먹었더니 밤에 잠들 때까지 배가  고팠다. 다른 사람들은 원래 랬던 걸까. 단식을 마치고 나서 나는 피자  번을 제외하고는 식단을 지켜가며 보식을 했고, 보식 기간 동안 살이 조금  빠졌다.




모래사장에서 모래 한 국자를 덜어낸 느낌이긴 해도, 어쨌든 단식을 마치고 나서 살이 4kg 정도 빠지긴 했다. 어차피 일반식을 하기 시작하면 몸무게는 금방 돌아오긴 할 테니 숫자에는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줄어든 몸무게보다 내가 더 크게 느낀 것들이 있다.

그동안 내가 필요 이상의 음식을 많이 먹었다는 걸 이틀 동안 깨달았다. 단순히 칼로리의 문제가 아니라 몸에 좋은, 최소한 해롭지라도 않은 음식을 적당한 양만 먹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편의점 인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편의점에 자주 다녔는데, 앞으로는 되도록 내가 먹을 음식을 재료부터 직접 골라서 직접 요리해 먹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아직은 내공이 부족하지만 여명이의 간식도 언젠가 직접 만들어 주고 싶다. 이번에 간식 라벨을 찬찬히 읽어보며 알 수 없는 성분들이 참 많다고 느꼈다. 내가 조금 더 부지런히 품을 들여 여명이도 몸에 좋은 음식을 적당량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식 끝나고 먹기 시작한 건강한 무언가들

그리고 생활하면서 더 사소하게 자주 움직이기로 했다. 단식을 하면서 집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는 먹을 것 생각만 났는데, 잠깐 공원을 산책하면서 겨우 나는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면 좀 더 생산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앞으로 집에서 괜히 군것질이 하고 싶으면 여명이와 사냥 놀이를 하기로 했다. 식탐 있는 인간과 고양이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 될 것 같다. 여명이와 내가 더 오래 건강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사소한 부분부터 바꿔나가기로 했다. 짧기도 길기도 했던 48시간이 우리의 건강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사냥 놀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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