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의 기분_김먼지
다시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기 시작한 지 어느새 한 달 남짓이 지났다. 책과 상관없는 일을 한 지 1년 3개월 만에 구관이 명관을 외치며 다시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 무난한 회사에서 무난한 사람들과 무난하게 일을 해나가고 있다. 아직 회사에 완전히 적응을 마치지는 못했지만, 슬슬 출근길에도 내 책상에도 익숙해지는 중이다. 여전히 월요일이 돌아오는 건 조금 괴롭지만, 그래도 내 일을 내 책상에서 내 속도로 할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하다. 이번에 직장을 옮길 기회를 두고 다시 편집자로 살지 말지를 고민할 때, 내가 너무 좋아했던 이 책을 다시 읽었다. 2년 전쯤에 독립출판으로 만들었던 버전으로 읽었던 책이라서 같은 책인데도 다른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거의 모든 문장에 공감하며 읽었는데, 이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책이 좋아서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걸 텐데, 왜 이렇게 책이랑 사람 모두에게 치이며 살아야 하는 걸까 싶었다. 그런데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와 보니 어느 일이든 사람에 치이지 않고 살 방법은 없는 것 같아서, 이왕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치이며 살아야 한다면 좋아하는 것 때문에 괴로운 게 낫다는 결론을 냈다. 가능하다면 제일 말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 정도를 업으로 삼을 수 있으면 더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띄어쓰기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저기에 든 예시 거의 전부 때문에 머리를 싸맸었다. 그리고 제일 괴로운 건 붙여쓰는 게 원칙이나 띄어쓰는 것도 허용되는 단어들. 원고 교정을 볼 때 내가 띄어쓰기로 했는지 붙여쓰기로 했는지 나올 때마다 헷갈린다. 저런 건 포스트잇에 붙여놓고 시작하는데, 교정 횟수가 늘어날수록 저 포스트잇이 빼곡해져서 나중에는 이게 의미가 있나 싶다 항상. 그리고 띄어쓰기를 포함한 저 국어규범이라는 게 종종, 좀 자주 바뀌는 것도 나를 괴롭힌다.
첫 회사에서 사수가 그랬다. 아무리 여러 사람이 여러 번 교정을 봐도 안 보이는 건 죽어도 안 보인다고. 꼭꼭 숨어있던 오타가 비로소 보이는 건 책이 나와서 서점에 깔린 뒤라고. 나도, 사수도, 팀장님도, 부장님도, 본부장님도 이 잡듯이 꼼꼼하게 봤던, 내가 처음으로 책임편집했던 책에서 오타가 나온 걸 보고 오타는 진짜 저절로 생기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출판일을 하기 전까지 편집자는 책상에 앉아서 교정지와 눈씨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러 사람과 업체의 의견을 조율하느라 정작 교정지를 조용히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겪으며 충격을 받았었다. 이거 내성적인 사람이 할 일은 아니구나 싶으면서 진로를 잘못 정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다. 전화벨만 울려도 심호흡을 한참 해야 했던 입사 초반 나에게 이런 조율 문제는 제일 괴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데 그렇게 많은 사람과 업체가 필요한 줄은 몰랐다. 책을 무사히 세상에 내놓기 위해 그들의 의견과 일정을 조율하는 게 내 일이었다. 심지어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웃음 대잔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자며 디자이너며 외주업체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입사 첫해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끔 아찔해진다.
만들고 싶은 책과 만들어야 하는 책의 괴리 때문에 괴로워하는 장면이 이 책에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온다. 드라마 중쇄를 찍자!에서 야스이를 보며 했던 생각을 이 작가도 했다는 것에 반가움과 씁쓸함을 함께 느꼈다. 출판사도 결국은 이윤을 내야 하는 기업이다 보니,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 소신 있게 기획한 책이 잘 팔린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서점에서 도대체 이런 종류의 책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나 싶을 때가 있지만, 많이 팔리기 때문에 만드는 거다. 이런 책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사볼까 싶어서 판권면을 봤을 때 5쇄 이상 찍었다는 걸 발견하면 아득해질 때가 있다. 한 번에 아무리 적어도 2,000부는 찍었을 그 책은 도대체 몇 부나 팔린 걸까. 하지만 잘 팔리는 그 책 덕분에 그 출판사에서는 실험적인 기획도 해볼 수 있었을 거다. 상품성만 고려해서 책을 기획하는 야스이가 있어준 덕분에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 수 있었던 코코로처럼.
책을 좋아하고, 글도 아주 못쓰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학교를 하나씩 졸업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출판일을 하고 있었다. 책에서 편집자의 이름은 찾기가 어렵기에 책과 관련된 일은 작가밖에 모르니까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게 될 줄 알았는데, 나한테 생각보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없다는 걸 책을 만들면서 깨달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이렇게 많구나 하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느꼈다. 편집자가 아니었던 작년에 여명이를 만나면서 그 과정에 대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사람을 무조건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브런치에서 나는 왠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쓰면서 나는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누군가 쓴 글을 다듬고 그 글을 돋보이게 만들 기획을 하는 게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다른 누군가의 꿈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획하고 돕는 일도 꽤 괜찮은 일이라고 느낀다.
쓰는 일이 여전히 맞지 않는 옷 같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뭔가를 꾸준히 쓰고 있다. 읽는 능력, 글을 다듬는 능력만큼 쓰는 능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읽고 쓰는 일은 의식적으로 꾸준히 하려고 노력 중이다. 작가는 '지면을 가진 사람'이라는데 나는 아주 작은 지면도 여전히 좀 버겁다. 그래도 빈 종이에 뭔가 이야기를 채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를 알고 나니 내 손에 들린 원고를 쓴 작가의 마음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집과 고양이를 돌보고, 가족과 친구에게 시간과 애정을 쏟으면서도 나를 돌보는 시간을 확보하려는 저 마음을 나도 너무 잘 알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멋진 책으로 만드는 한편, 내 생각도 어딘가에 꾸준히 쓰고 정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꾸준히 읽으면서 글을 보는 눈을 키우고, 꾸준히 쓰면서 잘 읽히는 좋은 글이 뭔지를 고민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겠다.
문장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것저것 구구절절 소감을 읊었지만, 사실 이 책은 그냥 재미있다.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렇지는 않지만 출판사에서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그냥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12구짜리 멀티탭으로 사는 괴로움을 안고 여기저기 치여서 납작한 책갈피가 된 기분으로 사는 편집자의 생활을 가장 와닿게 그려낸 것 같다. 다시 출판사로 돌아가기 전 각오를 다지려고 읽기 시작한 책인데, 깔깔 웃으면서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되도록이면 많은 책에 꽂혀본 책갈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