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이야기
1
밀폐된 공기와 질서 정연한 숫자들. 오고 가는 이들의 설렘이 불안을 뭉개는 곳. 적당한 규모의 호텔 엘리베이터에 무게추처럼 서있는 남자가 있었다. 꽉 끼는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표정은 더 각졌다. 마땅한 모자가 없어 가리지 못한 흰머리는 억셌다.
노인은 마음의 흔들림으로 엘리베이터의 하강을 느꼈다. 문 위에 전광판 속 빨간 숫자들은 천천히 줄어들었다. 그만큼 만남은 가까워졌다. 노인은 이윽고 홀로 전광판 정중앙에 서 있는 숫자 1이 고개를 숙인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였다. 카랑카랑한 벨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액세서리로 치장한, 늙어 보이지 않으려고 늙기로 결심한 불혹 전후의 여성과 마주했다. 여성은 노인을 보고 깜짝 놀라 상체를 뒤로 밀었다.
"몇 층 가십니까?"
"... 6층이요."
노인은 여성의 당황에 개의치 않고 나지막이 물었다. 여성은 명품백을 고쳐 잡으며 대답하고 엘리베이터 반대쪽 구석으로 몸을 기댔다. 숫자는 천천히 올라갔다. 순간을 올라가는 것처럼. 여섯 번 불편한 공기가 흐르고 문이 열렸다. 여성은 엘리베이터를 나서며 중년을 바라봤지만, 노인의 시선은 엘리베이터 버튼에 고정됐다. 여성은 낯설었지만 갑자기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싸구려 호텔의 구색이라며 후한 칭찬을 마음에 담고 좌측 복도로 걸어갔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은 멀어지는 하이힐 소리를 단칼에 자르고 다시 침묵을 지켰다. 노인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쿵 하는 작은 소리가 엘리베이터 바닥에 깔렸다. 이번에도 빨간 숫자는 부분 동작을 거쳐 고개를 숙였다.
문이 열리고 두 남성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몇 층 가십니까?"
"..."
젊은 금발 청년이 중년을 보고 반사적으로 인사했고, 노인은 청년의 패기를 잠깐 응시하더니 고개 대신 목소리를 숙이며 물어봤다. 청년 옆에 서 있던 호텔 관리인은 표정을 구겼다.
"제이크 씨가 묵으실 방은 13층 복도 끝 방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노인은 청년이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걸 듣고서야 13층을 눌렀다.
"내일 아침부터 바로 시작해주셔야 합니다. 아까 합의한 대로 한 달이고, 그 이상은 확답 못합니다."
"옙,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청년과 관리인의 대조되는 목소리가 좁은 공간을 채웠고, 노인도 거기 있었지만 비집고 나가려는 것처럼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13층에 도착했다. 고개를 숙인 사람에게 나비처럼 날개가 생겼다.
"고생하십쇼!"
"이 쪽입니다."
청년은 고개를 숙이며 우렁차게 인사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감시자가 있는 것처럼 노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한 동안 엘리베이터의 숫자와 시간이 멈췄다. 젊은 재잘거림이 잦아들고, 구두굽 소리가 가까워졌다. 관리인이 혼자 엘리베이터에 탔다. 관리인도 노인도 입을 열지 않았다.
관리인은 한숨을 푹 쉬고는 눈을 부릅떴다. 빠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으로 손을 내밀었고, 버튼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노인은 신경질적으로 1층을 누르고 버튼을 몸으로 가렸다. 덕분에 관리인의 손가락은 노인의 상의 주머니 코앞에서 뻘쭘하게 떠 있었다. 관리인은 혀를 찼다. 고개 숙인 사람의 날개가 사라질 때까지, 둘은 그 모습을 바라봤다. 문이 열리고 닫혔다. 노인은 다음 진동을 기다렸다.
2
이 호텔에서 일한 지 2주가 지났다. 지나간 사람의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랬는데, 대게 비슷했다. 사람들은 전부 비슷한 걸까. 이불과 쓴 수건은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형태에서 자유로운 아이들은 마음껏 기지개를 켜며 자빠져있었다. 전등을 끄고 나갔던, 내비두고 나갔던, 내가 보는 풍경은 밝다. 스위치 하나로 정리할 수 있었다. 쓰레기통도 얼마나 찼던 똑같았다. 어차피 일반으로 다 묶을 것들, 아무리 봉다리에 눈을 갖다 대도 내용물은 드러나지 않는다. 보인다는 착각만 울퉁불퉁한 하얀 굴곡에 덧씌우게 된다. 이불이나 침대에 뭐가 묻는 경우도 드물다. 아무리 속이 시커먼 인간이어도 순백의 천은 더럽히기 어렵나 보다. 간혹 묻어있는 것들은 보통 의도치 않은 물감 한 획 같은 그레이비소스 아니면, 모종의 방점 비슷한 사랑의 증표였다. 그 깨발랄한 흔적들도 시트 째로 갈아버리니, 내게 방 청소는 머물다 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과 정반대 되는 행동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머물다 떠난 곳이 추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엄습했고, 소름이 막 끼치는 거다. 종종 찾아오는 건강과는 거리가 먼 충격에, 들고 있던 밀대를 떨어트리거나, 둘이서 쫙 펴고 있던 이불 시트를 꾸기곤 했다.
여행은 좋은 것이다. 새로운 걸 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새로움은 익숙함에서 나오는 거고, 익숙함은 여행에서 나오지 않아야 하니까. 그래도 새로운 곳에 떨어진 나는 좋아한다. 거기서 활기찬 척하며 이것저것 얻어가는 걸 좋아한다. 살아남는다는 거창함을 인정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게 기분이 안 좋았다. 직원들은 그 노인을 성가셔 하지만, 나름 즐기며 방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인을 '벨보이'라고 불렀다. 그 노인은 보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깊은 수심으로 괜히 뚫어져라 쳐다보게 될 정도였지만, 특유의 과묵한 표정, 방어적이지만 굳건한 자세 때문에 고집불통의 어린아이 같았다. 벨보이는 이 호텔의 장기 투숙자였다. 14층 복도 끝에 있는 제일 비싼 방에 자리 잡은 그는 처음엔 그저 조용히 방에만 있었다고 했다. 그 어떤 룸서비스도 받지 않고 어이없는 조형의 흔들의자에 손을 깍지 끼고 누워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거무칙칙한 양복을 입고 엘리베이터를 점유하기 시작했다. 어떤 직원도 그 양복이 벨보이가 처음 투숙했을 때 입었던 옷이라고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더럽힐 수 없어서 말끔한, 더러워질 일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그 노인이 호텔 가운만 입고 작은 미동으로 삐걱거리던 나날은, 직원들에게 너무나 무던한 풍경이었다. 그 뒷모습에 사로잡힌 직원들은 벨보이의 양복을 모종의 전투복장으로 취급했다. 축 처진 그의 어깨를 참전한 용병의 으쓱거림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벨보이는 언제나 엘리베이터 어느 중간에 우뚝 선 채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물어봤다. 몇 층에 가냐고. 벨보이는 자기가 어떻게 불리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버튼을 완강하게 사수했다. 계속되는 기행에 불편했던 직원들은 쳐 주던 맞장구를 집어치우고 투명인간 취급하려 했지만, 벨보이의 고집은 불편한 자세만큼이나 강력하고, 꾸준한 행보가 무색할 만큼 빨랐다. 행여 들어온 누군가 벨보이를 무시하고 버튼을 누르려하면 기를 쓰고 막으며 엘리베이터의 유일한 동반자가 되었다고 한다.
문지기라 하기엔 오고 가는 이를 막지 않았고, 왕이라 하기엔 그 작은 영토에 누구도 국민으로 거두지 않았으니, 직원들에게 벨보이는 엘리베이터 그 자체였고, 호텔이 조금만 낮았으면 그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손님들은 벨보이의 불편함에 환불을 요구했고, 몇몇 유별난 손님들은 그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가여움을 즐겼다.
호텔에서는 이 엘리베이터를 쫓아낼 법도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장사도 잘 안 되는 호텔, 가장 비싼 스위트룸의 고정 수익은 방치를 공존이라 부르기에 충분히 짭짤했다. 뜬소문들이 올라갔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처럼 명멸했다. 사실 은퇴한 대기업의 대표라던지, 검은 돈을 만지다 쫓기고 있다던지, 성공한 자식들이 내다 버려서 넘쳐나는 노잣돈을 쓸 곳이 없다던지. 벨보이는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띵띵 거리는 엘리베이터보다 조용했고, 층을 나타내는 빨간 숫자들보다 경직되어 보였다.
3
금발의 젊은 청년은 약속한 기간이 다가오자 조바심이 났다. 동난 여행 자금을 채우려고 근처 일거리를 알아보던 중 얻어걸린 그 호텔은 청년에게 제격의 공간이었다. 세상이 경력이라 부르지 못하는 경험만 쌓아온 청년에게 호텔 일은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호텔은 나쁘게 말하면 엉망진창인 곳이었다. 직원과 손님들의 동선도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조금 큰 싸구려 모텔에 불과했던 그 호텔은 청년에게 잠깐 들렀다 떠나기에 최적인 여행의 쉼표였다.
부조리한 업무들도 한 달만 참으면 되니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지만, 청년에게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생겨 버렸다. 벨보이. 벨보이의 끝을 보고 싶었다. 청년이 진정으로 보고 싶었던 것은 벨보이의 시작이었지만, 이미 지나간 순간이니 끝이라도 봐서 시작을 어렴풋이 섞어 먹고 싶었다. 대부분의 감정들처럼 말이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까 궁금해 몸을 내던진 여행에서 만난 벨보이는 어떤 명확한 지표처럼 느껴졌다.
청년은 엘리베이터에 자주 들락날락 거리며 벨보이와 대화를 하고자 여러 번 시도했지만, 언제나 실패에 그쳤다. 청년이 무슨 말을 해도 벨보이는 묵묵부답으로 전광판을 쳐다봤고, 손 쓸 방도가 없어진 청년도 같이 빨간 숫자들을 응시하다 고개가 아파질 뿐이었다. 거대한 청소 도구함을 엘리베이터에 밀어 넣어보기도 하고, 층 수를 알려주는 고객과 작당모의를 하는 등 여러 변수를 만들어봤지만 다 무용지물이었다. 벨보이가 새벽에 자러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가가려 복도에서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복도에서 그를 맞이한 벨보이는 다시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버렸고, 며칠 잠을 못 잔 것이 유일한 성과였다. 청년은 벨보이의 어떠한 반응도, 기억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청년은 새삼스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본인이 왜 이렇게까지 그에게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 진짜 그가 문지기와 다를 게 없고, 자기는 불청객에 다름이 없는지 거듭된 생각의 피로가 현기증을 낳을 무렵,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허름한 호텔에 단체 관광객이 찾아왔다. 교양과 유쾌, 어느 것도 충분히 있지 않아 조금 있는 것들이 전부 사라지는 혼성 중년들이었다. 그들은 일제히 수속 절차를 밟고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벨보이의 물음이 떨어지기도 전에 전광판에 처음으로 글자가 떴다. 빨간색으로 검은 배경을 압도하는 만석이라는 단어는 호텔 지배인의 쾌재를 응징할 심판자를 불렀다.
4
벨보이는 연세에 걸맞은 가래 섞인 불투명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다, 나가!!!"
교양과 유쾌를 잃은 단체 관광객들은 반발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속속들이 엘리베이터에서 쫓겨났다. 노인은 그들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뺐어 휘두르며 위협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다시 프런트로 향했다. 지배인은 환불하려는 단체 관광객들을 설득하려는 시도도 포기하고 직원들을 집합시켰다. 직원들은 벨보이에게 소리치며 어떻게든 밖으로 빼내려 했지만, 기세에 눌려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연신 열고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이 성난 벨보이의 거친 호흡을 가려줄 뿐이었다.
직원들은 그제서야 경찰을 부르기 시작했고, 달콤한 관조의 꿈에서 벗어나게 되어 큰 아쉬움을 느꼈다. 1층으로 내려가려 엘리베이터를 부른 손님들만 괜한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1층 로비에 모여서 전광판의 빨간 숫자들을 눈으로 좇을 때, 오직 청년만이 계단을 뛰어다니며 엘리베이터를 따라다녔다.
청년은 벨보이를 엘리베이터에서 꺼내주고 싶었다. 지금 엘리베이터는 14층에 있지만, 벨보이의 엘리베이터는 지금까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청년은 14층에 도착하고 숫자를 바라봤다. 숫자는 나침반을 등진 채 고개를 푹 숙인 사람처럼 보였다. 이곳저곳을 계획 없이 여행 다녔던 그 용기로 열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어느 때보다 문에 가깝게 위치한 노인의 흔들리는 눈빛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과 노인의 눈이 맞았다. 노인은 들어오려고도, 입을 떼려고도 하지 않는 청년을 째려보다 문을 닫으려고 했다. 청년은 노년의 손이 버튼으로 향하기 직전, 노인의 구겨진 넥타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몇 층 가십니까?"
"... 자네는 아나?"
노인은 닫기 버튼을 누르려던 오른손을 힘 없이 내리고는 따지듯이 되물었다.
"가보면 알더라구요, 하하."
청년은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다. 어딜 가든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 그 고독한 불안을 묵살해 줄 것이라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는, 욕을 얻어가며 웃는 얼굴로 빌붙어 살아가고 싶다고. 그렇게 해야만이 훗날 가만히 있을 수 있다고, 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한숨을 쉬고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갔다. 통쾌함이라고는 전혀 비출 수 없는 표정으로 복도를 걸어 나갔다. 노인은 울고 싶었고, 청년은 웃고 싶었다. 둘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꾹 참고 무표정을 지었다.
다음날, 두 남자가 체크 아웃했다.
엘리베이터는 과연 몇 층에 있는가
몇 층에 있었다고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