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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04. 2023

불행은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完

무엇하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내 인생답게 이번에도 변수는 없었다. 그것도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과 함께 클리셰 없는 더러운 팔자를 속으로 욕했다.


"여기 지역에 있는 응급실에 전부 확인해 봤는데 정형외과 선생님이 안 계신다고 해요. 살고 계신 지역의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오마이갓.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20분 거리에 응급실을 두고 2시간을 걸려서 가야 한다고? 어떻게 정형외과 의사가 단 한 명도 없을 수가 있는 거지? 듣고도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두 시간에 걸쳐서 집 근처의 응급실로 가는 일뿐이었다. 차 안의 미세한 떨림조차 통증으로 연결되었다. 빠진 어깨가 이토록 예민할 줄은 미처 몰랐다. 방지턱을 넘어갈 때는 그냥 혀 깨물고 죽는 게 낫다 싶었다. 매일 같이 한 번은 넘기는 방지턱이 이렇게 무서워 보이긴 처음이었다. 전기충격의자로 고통을 받은 원숭이가 전기충격의자를 보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방지턱만 봐도 숨이 턱턱 막혔다. 누워 있으니 차의 진동이 너무 강하게 와서 앉아서 여러 번 자체를 고쳐 잡아야 했다. 이러나저러나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차는 또 왜 이렇게 천천히 가는 거지? 싶었는데 내가 너무 아파해서 일부러 살살 운행 중이었던 것이다.


"저 괜찮으니까 그냥 세게 밟아주세요. 아파도 빨리 병원으로 가는 쪽이 나을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 밖엔 없었다. 나의 간절한 부탁에 운전해주시는 대원분은 구급차의 비상사이렌을 켜고 2차선 도로에서 역주행을 해가며 최대 속도로 달려가셨다. 2차선 도로에서 역주행을 그렇게 많이 하는 걸 처음 겪어봤다. 아픈 와중에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봤다. 그렇게 1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분명 2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순간순간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죽을 것 같은 1시간이었다. 나를 지탱해 준 건 나의 의지도 아니고 언니의 간절함도 아니었다. 우습게도 구급대원의 미모였다. 요즘 구급대원은 얼굴을 보고 뽑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구급대원분이 너무 잘생기셨다. 마지막까지 치료 잘 받으시라는 말을 하는 그의 친절한 언사와 더욱 친절한 미모 덕분에 고통스러운 1시간을 버티어낼 수 있었다.


응급실에도 순서가 있는 것을 왜 몰랐을까. 병원이 아니라 시장통 같았다. 세상에나. 이 시간에 다치거나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응급실에 와본 적이 없으니 전혀 몰랐다. 그러나 나는 응급 중에서도 응급이었다. 힘들게 얇은 코트를 벗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기 위해 방사선실로 들어갔다. 방사선실 선생님은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잡아주시는데 이때가 제일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글자로 옮기는 지금 다시 어깨가 시큰 거리는 느낌이다. 이런 걸 보고 PTSD라고 하는 걸까? 대여섯 장 정도의 사진을 찍는데 족히 30분은 걸린 것 같다. 잡아주는 포즈를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움직이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견딜 수 없이 아파서 벽을 짚고 한참을 쉬어가면서 찍어야 했다. 다시 떠올려도 너무 고통스럽다.


엑스레이를 찍고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은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좀 살 것 같으니까. 촬영하느라 자세를 여러 번 고쳐 잡았더니 고통이 미친 듯이 몰아치고 있었다. 언니는 응급실에서 내내 손을 붙잡고 90도 각도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나마 그 자세가 가장 덜 아팠다. 손을 잡은 채로 선생님이 언제 오시는지 고개를 들어 살피는데 그 미세한 진동에 어깨의 뼈가 시리도록 아파왔다. 너무 아파서 울어본 게 얼마만일까? 눈물이 줄줄 나지만 울 수도 없었다. 우느라 들썩거리는 호흡에도 통증이 왔다. 제발 의사 선생님이 빨리 와서 이 고통 속에서 나를 구원해 주시기만을 바랐다.


한참 만에 선생님이 오셨다. 체감상 한참만이긴 하지만 사실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이었다. 응급실에는 응급의 응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말을 한 것 같은데 정신이 없어서 속으로만 한 것 같았다. 의느님은 이불을 밧줄처럼 만들어서 나를 요리조리 동여매기 시작했다. 미세한 진동으로도 아파 죽을 것 같은데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지? 아까 속으로만 살려달라고 해서 이러시나? 그냥 빨리 어떻게 좀 해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속으로만. 후에 인턴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두 명 오더니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빠진 어깨를 쭉 잡아서 당기는 것이다. 아아악!!! 정말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21세기 고문으로 딱이다 싶었다. 중범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조리 어깨를 강제로 탈구시켜서 지금 같은 꼴을 당하는 형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고문에 가까웠다. 한참을 울며 씨름하는데 이걸로 안 되겠다는 소리를 하셨다. '지금 이 고생을 하고 못했다고요? 저 방금 천국에 살짝 다녀왔는데요?'천국이 아니라 사실을 지옥이었다. 어깨를 당기는 동안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내가 계속 선생님 쪽으로 몸을 기울이니 치료가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 선생님은 자기보다 좀 더 높아 보이는(?)분에게 나를 넘기게 되었고 높아 보이는 선생님은 세상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좀 재워야겠네요."


재운다고요? 아니 재워서 뭘 어쩌시게요. 이걸 마취까지 해야 하는 일이었나요? 영화에서처럼 그냥 쑉 하고 맞춰주면 끝나는 거 아닌가요? 정말 그건 영화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나요? 사실 여기서 뭘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온몸에 진이 빠져있는 나 대신 보호자로 있는 언니에게 설명을 했다.


"살짝만 재울 건데 잠에 들 수도 있고 안 들 수도 있어요. 기억을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얼마 뒤 간호사 선생님이 나에게 마취제를 놓았고 다시 의느님께서 오셨다.


"음, 마취 잘 됐네. 시작할게요-"


아니요 선생님. 저 잠들지 않았아요. 선생님 저 아직 모든 통증이 느껴진다고요! 선생님 이거 아니에요! 분명 들리게 말을 했는데 1초 만에 어깨가 맞춰졌다. '좀 누워 계시다가 정신 좀 들면 그때 귀가 하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모든 것이 끝났다. 진짜 이렇게 끝이 났다고? 이렇게 쉽게 끝낼 거면 처음부터 오셔서 해주셨어야죠 선생님. 저 왜 이불 두르고 어깨를 빼는 생쇼를 한 거예요.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나는 산에서 조난 아닌 조난을 당하고 약 4시간 만에 원래 어깨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응급실 침대에서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깊은 호흡으로 울면 통증이 심해지는 탓에 아까 다 울지 못한 눈물이 적립되고 또 적립되어 급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응급실에는 꼬마 아이도 있었는데 내가 걔보다 많이 울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언니에게 말했다.


"근데 아까 그 구급대원 진짜 잘생겼었지?"


"어. 목소리도 좋더라."


그제야 언니와 나는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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