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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03. 2023

불행은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下

불행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너무 놀라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가장 놀란 건 어깨가 빠지는 소리였다. 드라마에서 뼈소리 효과음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현실고증 그 자체였다. '후둑-'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가 빠진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마음속의 불안한 상상들이 만들어 낸 허구의 기시감은 아닌지 혹은 꿈은 아닌지 현실과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통증이 찾아오면서 이게 꿈이 아닌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산중턱에서 조난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산언저리에서 어깨가 탈구되는 경험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내가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 119를 부르는 일을 겪게 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일단 전자는 눈앞의 현실이었고 후자는 내 인생의 예상 답안에 전혀 없던 변수였다. 통증이 심해지고 있는 어깨를 부여잡고 119를 기다리고 있었다. 움직일수록 점점 아파왔기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낀 것은 오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핫팩은 손에 쥐어주거나 어떡하냐며 함께 걱정을 해주시기도 했다. 한 20분을 주저앉아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119 대원들이 헬기를 타고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게 아니라면 들것을 들고 그 길고 긴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렇게 앉아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 부축을 받고 내려가려 하는데 통증 때문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오기 싫다고 했을 때 그냥 나를 보내줬어야지. 철이 없게도 언니네에게 원망과 서러움이 북받쳤다. 더욱 아득한 것은 얄미울 만큼 미끄러운 신발이었다. 아무리 조심해서 걸으려 해도 밧줄 없이는 그냥 딱 스케이트였다. 이걸 신고 여길 올라올 생각을 한 내가 정신병자였구나. 하는 자책만 백만 번을 했다.


아주 죽으란 법은 없는 것 같았다. 하산 중이던 중년 부부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시면서 아내분은 남편에게 '우리가 좀 도와드려야 할 것 같은데?'라며 먼저 다가와 주셨다. 아내분은 본인이 신고 계시는 아이젠 박힌 신발을 나에게 양보해 주셨다. 신발을 신겨 주시면서도 우리가 발사이즈가 같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그 성품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신발을 바꿔 신고 남편분의 부축을 받으며 (사실상 거의 업히다 시피였긴 하다.) 케이블카가 있는 곳까지 겨우겨우 올 수 있었다. 케이블카에는 이미 5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는데 아내분께서 맨 앞으로 달려 나가 큰 소리로 외치셨다.


"여기 응급환자 있어요!!!!"


일순간 줄에 서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나에게로 쏟아졌고 부담스러운 시선과 감사한 마음을 안고 케이블카에 제일 먼저 올라타는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내게 도움을 주신 부부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정중하게 했다. 정말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하고 있었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적막만이 가득했다. 가족들은 나에 대한 미안함에 눈치만 보고 있었고 나는 창 밖으로 비치는 나무들을 보면서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올라올 때는 10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내려가는 길은 한 시간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억겁의 시간이었다. 이제 응급실에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럼 영화에서처럼 어깨를 뿅 하고 맞춰주고 모든 게 끝이 날 것이다. 빨리 이 고통 속에서 나를 구해줄 의느님만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또 버티어냈다.


케이블카가 도착을 하고 문이 열리자 드라마처럼 들것과 구급대원, 산의 관리자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려주는 일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지만 그게 119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어지간히 응급한 환자이긴 하구나 살갗으로 느껴졌다. 구급대원은 나를 침대에 누우라고 하는데 아니 제가 지금 그냥 서있는 것도 너무 아픈데 누우라고요? 저 누우면 너무 아파서 큰일이 날 것 같아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거절할 요량이 없었다. 억지로 대충 몸을 누인 채 구급차에 침대를 실었다. 침대가 한 번에 탁-하고 실리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무언가에 걸려서 잘 들어가지 않았다. 쿵쿵 소리를 내며 여러 번 충돌이 있었는데 세상이 무너지도록 아팠다. 그냥 어깨를 도려내는 쪽이 나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원의 말에 다시 한번 내 세상이 무너지고 말았다. 무엇하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내 인생답게 이번에도 변수는 없었다. 그것도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과 함께 클리셰 없는 더러운 팔자를 속으로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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