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원사계 Dec 02. 2023

불행은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上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

어릴 적부터 유난히 사고수가 많았던 인생이었다. 다리에 크게 화상을 입어서 몇 달을 고름과의 전쟁을 하기도 했고, 커터칼로 손가락 살점을 날려 먹은 적도 있었다. 또 평지에서 발목을 얼마나 많이 접질렸는지 반깁스를 했던 횟수만 해도 셀 수가 없다. 덕분에 발목 테이핑 선수가 되어버렸다. 병원에 가면 테이핑은 나보다 잘한다며 의사 선생님의 너스레를 들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내 발목은 나보다도 되려 주변인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너무 많은 사고들을 겪었던지라 나름의 좋은 점도 있다. 어지간한 일에서는 절망이나 자책 같은 걸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몸은 성하잖아. 그럼 됐지 뭐.'의 마인드를 장착하게 된 것.


수영을 배우고 나서 내 인생을 정말 많은 변화를 일구어냈다. 우선은 습관처럼 술에 의존하던 악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것 만으로도 내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나는 술 때문에 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술을 끊어내지 못하던 암흑기가 있었는데 암흑 속에서 반발짝정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먹는 것에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대충, 저렴하게, 배달로 먹던 습관도 개선이 되었다. 나를 보살피는 일에 신중하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운동으로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즐거움을 완벽하게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운동 후 개운함을 맛보게 된 뒤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운동중독이 되었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나에게 큰 의미였다.


우리는 살면서 앞으로 몇 번이나 직업이 바뀌는 삶을 살까? 그 무렵 내 인생의 화두는 직업, 재능 같은 것들이었다. 일각에서는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있소- 우리는 앞으로 수없이 많은 신입 시절을 경험해야 하오- 등의 무서운 말들을 하고 있으니 나 또한 재능에 맞는 일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유튜브며 책이며 '재능'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콘텐츠는 모조리 섭렵을 하면서 지냈다. 비과학적인 콘텐츠들도 얼마나 많이 쓸고 다녔는지 모른다. 사주, 타로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도 알 수 있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내가 찾은 재능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돈이 되지 않아도 계속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라는 것이다. 글쎄다. 내가 돈이 되지 않아도 지속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누워서 유튜브 보기? 친구들이랑 카톡 하기? 그중 가장 중심에는 역시나 수영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수영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 1:1 강습으로 부족한 부분을 잡고 강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 일정을 살폈다. 어느 때보다 살뜰한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11월 말 언니의 생일이었다. 가족들은 둘러앉아 언니를 축하해 주었고 나는 언니에게 조심스럽게 연초 계획을 말했다. 우리의 건설적인 앞날을 서로 응원하며 파이팅 해주고 있었다. 내 인생에 또 어떤 버라이어티 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해내고 싶은 일이 있는 삶이란 더없이 행복했다. 언니의 생일날 그 산에 가기 전까지는.


언니는 생일맞이 별구경을 하자고 했다. 어디 좋은 산이 있는데 거기 가서 별을 보자. 해 떨어지기 전에 전망대 가서 경치 구경도 좀 하고. 어딘가 내키지 않았다. 형부까지 합세를 해서 같이 가자고 하니 그 뜻을 거를 수가 없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어마어마했다. 대한민국에서 몇 번째로 긴 케이블카라며 조잘거리는 조카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참을 올라갔는데도 아직 반밖에 오지 않을 걸 보니 다른 세계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요즘은 11월에도 가을 같은 날이 많아서(심지어 모기까지 날아다닌다.) 그리 춥지가 않은데 산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중턱을 갔는데 눈이 그렇게나 많이 쌓여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남들은 등산웨어에 아이젠까지 중무장을 하고 있는데 나는 코트 한 장에 바닥이 거의 스케이트인 워커를 신고 있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데크는 눈으로 완전히 덮여 있어서 계단의 형체만 남아 있었다.


데크를 앞에 둔 나는 그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음이 석연치 않은 것이었는데 또 여기까지 와서 혼자만 정상에 가지 않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계단 가장자리에 설치되어 있는 밧줄을 부여잡고 미끄러운 바닥을 겨우겨우 올라갔다. 정상에서 보는 풍광은 한겨울의 중심에 있었다. 우리 집은 아직도 가을 같은데 여기는 겨울왕국이 따로 없었다. 문제는 내려가면서부터였다. 밧줄을 붙잡고 한참을 씨름하고 있는데 자꾸만 미끌리는 바닥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공포심이 내려앉았다. 줄하나에 의지를 하면서 조심 또 조심 걸음을 옮겨가던 그때였다. 밧줄을 붙잡은 채 몸이 뒤틀리게 미끄러졌는데 그 순간 어깨가 빠져버린 것이었다.


'후둑-'


너무 놀라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가장 놀란 건 어깨가 빠지는 소리였다. 드라마에서 뼈소리 효과음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현실고증 그 자체였다. '후둑-'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가 빠진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마음속의 불안한 상상들이 만들어 낸 허구의 기시감은 아닌지 혹은 꿈은 아닌지 현실과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통증이 찾아오면서 이게 꿈이 아닌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산중턱에서 조난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맨 몸의 축하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