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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01. 2023

맨 몸의 축하쇼

맨몸으로 축하받아본 적이 있나요?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까지 한글을 떼지 못했다.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하는 꼬맹이였던지라 한 곳에서 몇 달씩 다니지를 못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오만 생떼를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그 무렵 피아노를 잘 치는 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그 마저 오래 지나지 못해 그만두었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는 법이 없는 꼬맹이었다. 당장 학교에 입학할 날은 다가오고 있는데 제 이름 석 자조차도 쓰지 못하는 딸내미 걱정에 엄마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들이 길어지고 있었다. 유치원 도망 전문가였던 내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에서 엄마는 원장 선생님께 반협박하듯 말했다.


"선생님이 책임지고 우리 애 한글만 꼭 좀 떼주세요. 지 이름만 쓰게 해 주세요. 선생님만 믿어요!"


유치원 입장에서는 얼마나 부담스러운 처사였을까. 입학이 몇 달도 남지 않은 아이에게 한글을 알려주는 미션이란 쉽지 않았을 터였다. 아무도 나의 한글 실력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나는 그 해 유치원을 졸업하면서 국어박사상을 받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제 이름도 쓰지 못하는 애가 다른 똘똘한 친구들을 뛰어넘고 국어박사상을 받아왔으니 엄마로서는 얼마나 기특했을까 싶다.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있어서 최고의 자랑은 내가 국어박사상을 받은 것이다. 내 인생에서 그보다 더한 기적 같은 순간은 없을 것이다. 아마 나는 그때 평생에 들을 낯간지러운 칭찬을 다 들은 것 같다.


수영을 배운 지 한 3주 조금 못 미칠 때였다. 자유수영 하는 날 (실은 그냥 킥판 잡고 개미 오줌만큼 나아가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열심히 물에서 헤딩을 하고 있었다. 내 옆에서 아주 어색한 자세로 수영을 하시는 분이 계셨다. 그분은 나에게 말했다.


"물 무서워하시죠?"

"아, 네.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처음 배울 때랑 너무 비슷하셔서요. 저는 물에 뜨는데 7개월 걸렸어요. 1년 반째 초급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어요."

"7개월을 하면 뜰 수는 있어요?"

"매일 하니까 어떻게 되긴 하더라고요."


나는 언제쯤 킥판 없이 물에 뜰 수 있을지, 국어박사상을 받던 기적 같은 순간이 언제쯤 찾아올지 매일 같이 궁금하고 기다려지던 때였는데 그분의 한마디에 나름대로 기한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저분은 7개월 걸렸으니까. 나는 3개월 정도면 할 수 있으려나? 그래, 3개월 까지는 죽어라 삽질해 본다는 생각으로 해보자. 엉거주춤한 포즈로 수영의 흉내라도 내는 그분은 내 눈엔 펠프스였고 조오련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꽉 채운 한 달이 되었던 날이다. 킥판을 끌어안고 배영을 배우던 때였다. 배영은 코와 입이 하늘로 가있으니 호흡의 부담이 적었고 상대적으로 전진을 조금은 할 수 있었다. 킥판 없으면 물에 빠진 생쥐랑 다를 것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날은 배영으로 몸을 풀고 평영 발차기를 배우는 날이었다. 평영은 영법 중에서도 발차는 스킬과 물 잡는 스킬이 어려운 편에 속한다. 특히나 발로 물을 밀어내는 요령이 어려운데 역시나 나는 전혀 하지를 못했다. 배영도 간신히 흉내만 내는데 그 어려운 발차기를 소화할 리가 있나. 다른 수강생들은 평영 발차기를 하면서 한 마리의 개구리처럼 물 위에 떴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데 나는 선생님에게 개인 지도하에 벽 잡고 발차는 연습만 하고 있었다. 남들은 잘만 하는데 나만 왜 이렇게 몸치인 거야! 서럽고, 창피하고, 뭐 한다고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에 울컥했다.


수업 종료 2분을 앞두었다. 평영으로 시작점에 돌아오는 수강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하셨다.


"판 없이 발차기 3번만 해봐요."

"선생님.. 저 못할 것 같아요."


분명 들리게 말을 했는데 선생님이 듣고도 못 들은 척을 하시는 거다. '아니 선생님 킥판 없으면 저한테는 여기가 수심 30미터인 거 모르세요? 저 물에 빠져 죽어요!'라고 속으로만 외칠 뿐 손을 뻗으며 빨리 오라는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물에 바로 잠길 것 같은데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선생님의 손을 잡으러 킥판을 내려놓고 발차기를 내질렀다. 어? 나 지금 앞으로 나간 거야? 판 없이? 어? 이게 된다고? 전진을 했다고? 나는 분명하게 앞으로 나갔다. 발로 물을 밀어서 앞으로 나갔다! 손은 물에 떠있었고 선생님은 잡아주는 시늉만 하셨다. 정말로 이게 됐다!!


"거 봐요 된다니까."


세상 시니컬하게 한마디 툭 던지고 수업은 종료됐다. 그날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킥판 졸업을 3개월로 잡고 있던 나에게 한 달 만의 졸업은 기적과도 같았다. 수업이 종료되고 한참을 킥판 없이 배영도 해보고 평영발차기도 해보고 나를 곤욕으로 몰고 갔던 수평 뜨기도 해 봤다. 우와, 물에서 움직이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운동이 되고 있나 봐. 심장이 뛰고 있어! 땀도 나고 있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수영장 물 안에 들어가서 잠깐 눈물을 훔쳤다. 관심병사이고 열등생이던 내가 판 없이 물에 뜬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기특했다.


기쁜 마음을 숨기고 샤워를 하고 있었다. 한참 샤워를 하고 있는데 매일 얼굴을 마주하지만 인사는 나누지 않는 고인 물 분께서 내 어깨를 툭툭 치시며 말씀하셨다.


"이제 잘하네~"


맨 몸으로 샤워하다 말고 칭찬을 받은 적은 처음인지라 너무 민망했다. 세상 어색하게 '감사합니다~'하고 민망함에 몸서리치며 씻고 있는데 이번엔 다른 분께서 또 내게 말씀하셨다.


"어휴 이제 잘하더구먼!"


엄지까지 치켜세워가며 말씀하시는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굴만 알지 인사조차 해본 적 없는 분들도 나를 예의주시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내게 무언의 관심을 보내주고 계셨던 거였다. 나의 작은 성공에 모른 채 하지 않고 함께 기쁨을 나눠주셨다. 머리를 말리면서도 칭찬세례는 멈추지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 다들 눈여겨보고 계셨던 걸까? 가늠도 되지 않았다.


살면서 칭찬들을 일이 왕왕 있긴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맨 몸으로 칭찬을 받아본 경험은 아마도 다시없지 않을까 싶긴 하다. 누가 샤워하다 말고 칭찬을 받냐는 말이다. 킥판 졸업도, 맨몸의 칭찬 세례도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다. 서른이 넘은 내게 국어박사상을 이야기하면 나는 참으로 부끄럽다. 정확하게는 낯간지럽다. 남들은 쉽게 배우는 한글을 그리 어렵게 배웠으니 괜히 그런 기분이 든다. 한글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가 상까지 받아오는 기적을 일궈냈으니 지금까지도 기특할 수밖에 없긴 하겠다. 평생에 들을 낯간지러운 칭찬을 저 때 다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칭찬을 받을 일이 또 우습게도 생겨버렸다. 맨 땅에 헤딩은 머리에서 피가 철철 날 수도 있지만 물에서 헤딩은 최소한 다치지는 않았다. 그게 나를 한 달 만에 물에 뜨게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3개월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은 1개월 만에 해치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나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더 많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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