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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Nov 30. 2023

5cm의 전진

수영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조카가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던 때가 생각난다. 모퉁이를 돌아 뒤뚱거리며 두 세 걸음을 재빠르게 오는데 그 감동이 어찌나 절절하던지. 내가 낳은 아이도 아닌데 가슴이 저릿할 만큼 감동이었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지금은 말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는 논리왕 악동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모를 쥐락펴락 하는 초딩인 오늘까지도 그 녀석과 나 사이에는 그런 애틋함 같은 것이 있다.


수영장에는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 있다. 고인 물일수록 수영복이 화려한 것이다. 오색찬란할수록 흔히 말하는 수영 짬바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무늬를 입을 생각을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은 밤에 보면 영락없는 그림자였다. 위아래를 시커멓게 하고는 초보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새로운 수영장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내가 마음먹은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센터가 문을 닫는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같은 출석 도장을 찍을 것. 오로지 이거였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던 그렇지 않든 간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물의 감각을 몸으로 익히고 물에 있는 나 자신을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우리 반은 남자 세 명에 나 하나 이렇게 4명이서 수업을 했다. 안타깝게도 이곳에서도 나는 관심병사였다. 킥판을 잡고 다리를 나름 죽어라 움직이는 것 같은데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다른 수강생들은 잘만 하는데.. 솔직히 쪽팔렸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자세를 잡아주는 것 보다도 주눅이 들어있는 내 마음을 잡아 주었다.


"처음이라 안 되는 게 당연해요. 옆에 있는 회원님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킥판 잡고 물에 뜨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중간에 계속 멈춰도 되니까 조금씩 그냥 하세요."


"선생님 근데 제가 킥판 없이 물에 뜰 수 있을까요?"


내가 물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1%도 없었기에 물었던 질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말씀을 해주셨다.


"물론이죠. 킥판 사이즈를 줄여나가면 돼요."


다정한 말이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서였을까.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내가 나를 믿어 주는 것 보다도 남이 나를 믿어줄 때 그 말의 힘이 더 세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선생님의 말만 믿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이어나갔다.

 

자유수영을 하는 날에는 수업 때 배운 몸풀기 운동을 공들여했다. 어깨 근육을 쭉 늘리고 허리를 풀어주고 발목을 돌려가며 제자리걸음을 할 준비를 했다. 매일 달라질 거 없는 실력이었지만 하루에 하나씩 뭐라도 얻어가는 것을 생각했다. 엊그제는 스트레칭하는 게 익숙해졌어. 그럼 된 거야. 어제는 물이 허리춤까지 와도 당황하지 않았어. 이런 식으로 너무 작고 소박했다. 몸을 풀어주면서 마음속으로는 생각했다.


"오늘은 처음보다 스트레칭이 익숙한 느낌일 거고 허리춤까지 오는 물에도 놀라지 않겠지."


같은 시간에 나가다 보니 매일 마주치는 분들이 고정적이었다. 그중 어떤 분들은 코치 역할을 해주시기도 했다. '발목을 쭉 펴고 나가봐~', '허리를 바짝 펴야지!', '호흡을 그렇게 하면 안 돼! 나를 봐. 음.. 파! 음... 파!' 등으로 숙련된 조교의 시범까지 보여가며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게 참 웃기면서도 감사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쉬지 않고 매일 1시간씩 삽질을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호흡만 연습을 하면서 시늉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바닥의 5cm 짜리 모눈 타일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히 작은 모눈타일 1개만큼 전진을 한 것이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다니, 내가 전진을 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다시 해보려 하니 그 사이 몸이 까먹은 것인지, 운이 좋아서 앞으로 나간 것인지 도통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전진을 했잖아! 속으로 얼마나 환호성을 질렀는지 모른다. 유유자적 스무 바퀴를 쉬지도 않고 내달리는 화려한 고인 물들에게는 내가 눈에 보이지도 않았겠지만 나 혼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매일의 목표가 바뀌었다. 어제 모눈 한 개만큼 갔으니까 오늘은 두 개만큼 가보자. 내일은 세 개 갈 수 있겠지. 이 작은 목표를 위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영에 나갔다. 아침에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는 내가 아침을 사랑하게 되었던 날들이었다. 새벽이슬을 맞으면서 수영장으로 가는 걸음은 가뿐했다. 모눈타일은 하나에서 시작해 점차 늘려나갔다. 미션을 성공한 날도 있고 실패한 날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10개만큼 까지도 전진할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건 보폭만큼의 전진에도 숨이 차고 운동하는 기분이 난다는 것이었다.


조카가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던 날 벅차던 마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눈물이 살짝 나려고 하는 진한 감동과 뜨거운 사랑 비슷한 것이 느껴졌었다. 가로세로 5cm의 모눈타일을 전진했던 그날 나 자신에게 조카의 첫걸음마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눈물이 살짝 나려고 했고 나 자신이 너무 기특해서 사랑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물 안에서 내가 배우는 것은 수영이 아닌 걸음마라는 생각을 했다. 녹록지 않은 세상을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 있게 하는 다리의 근육과 나를 믿지 못할 땐 남의 말을 믿어서라도 밀고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나가는 일이었다.


여전히 반에서 관심병사이지만 나를 키워주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몸을 씻고, 모눈 한 개만큼 움직이고, 나에게 칭찬을 해줬다. 누가 봐도 열등생이었지만 열등한 나에게 애틋함이 짙어져가고 있었다. 화려한 수영복의 고인 물들처럼 수영장을 휘어잡지는 못하였지만 5cm짜리 나만의 수영장에서는 내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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