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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05. 2023

생에 가장 우울한 크리스마스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울지 않기, 착한 일 많이 하기, 자기 전에 양말 걸어두기 같은 것들을 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때가 있었다. 아마 8-9살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하는 노래도 불렀다. 올해 내가 어떤 착한 일을 했었는지 머릿속으로 헤아려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엔 어떤 선물이 있을지 기대를 했다. 소풍 가기 전날의 마음이었던 시절이다. 그때 이후로 내가 크리스마스를 챙긴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파티 같은 걸 하기도 했는데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일에 치여 사느라 예수님 태어난 날은 으레 있는 빨간 날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에겐 그저 그런 날이었다는 소리다.


영화에서는 어깨 빠진 사람이 있으면 히어로가 나타나서 시큰둥하게 맞춰 주고 곧바로 원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맞춰지기만 하면 바로 통증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날 밤은 새벽 내내 통증으로 잠들지 못했다. 거진 2주 간은 새벽에 두 번 이상 깨면서 선잠을 자야 했다. 다친 쪽으로는 몸을 돌리고 잘 수 없는지라 매일같이 한쪽으로만 누워서 잤다.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걸까. 끝이 나기는 하는 걸까. 두려운 날들이었다. 다치고 나서 가장 불편한 건 양치였다. 하필 다친 게 오른쪽이라 왼손으로 양치를 해야 하는데 양치에 생각보다 많은 근력이 필요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왼손으로 하는 양치는 똥을 덜 닦은 것 마냥 찝찝하기 짝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질보다는 양으로 결판을 봐야 했다. 이때 양치를 하루에 5번 이상 했던 것 같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일은 정말 큰 마음을 먹고 해야 했다. 하지만 나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잠 못 드는 밤도, 양치도, 머리 감기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아팠던 것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목표의 부재였다. 


하필이면, 정말 하필이면 이듬해 목표로 하고 있던 수영강사 도전에 완벽하게 제동이 걸려버렸다. 살면서 처음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었는데 갑자기 바리케이드를 치고 나를 막아서니 미칠 노릇이었다. 신의 장난질이라는 게 이런 걸까? 한 일주일은 스트레스에 몸부림을 쳐야 했다. 일상생활은 힘들지, 멀리 나갈 수도 없지, 하려던 운동까지 발목이 잡혀 버렸다. 이걸 도저히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었다.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우리의 일상에서 소리 지를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없다. 이도저도 안 되니 내가 한 선택은 그냥 안으로 쌓아두는 것이었다. 방출할 방법이 없으면 쌓아둬야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지깟게 넘쳐서 언젠가는 나가고 말겠지.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어디 가서 말하기 쪽팔리지만 그 시기엔 약간의 우울증과 조울증 증세를 보였다. 기분이 시도 때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마음이 너무 쉽게 피로해졌다. 사람 사는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없다지만 내게는 좀 유달리 없는 것 같았다. 되는 일이 없다 보니 자기 연민이라는 녀석이 걷잡을 수 없이 덩치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최소 6개월은 아무 운동도 하지 않고 회복되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꼼짝없이 집에 묶여있는 연말을 보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일조차 버거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장 아팠던 것 두 번째는 친구들의 연락이었다. 친구들과 내 삶의 괴리감에 오는 연락이 그렇게나 부담스럽고 짜증이 치솟았다. '자존감이 높고 멘탈이 단단한 사람이라면 나와 남을 비교 하지 않습니다.'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 살만 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심리가 불안정하고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서는 저따위의 자기계발식 언어가 때로는 불쾌하게 들린다. 내가 바로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부족한 것 없는 집안에 번듯한 직장, 남들에게 보이는 부분은 모자람이 없는 친구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양반집 자식들 사이에 있는 무수리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안 좋아하는 편인데 저때의 나는 '자존감이 결여된 상태'라고 판사봉을 탕탕 두드려줘야 한다. 그거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그 해 크리스마스는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를 마음속으로 반복하는 청승맞은 날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이야 아주 생쇼를 했구나- 싶지만 저 때의 나는 정말 진지하게 힘들었다. 아마 올 성탄절에도 별다른 이슈 없이 그저 그런 날로 지나갈 것 같다. 그전에는 그저 그런 성탄절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제발 아무 일 없는 연말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처럼 나에게는 이벤트 없음이 가장 큰 이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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