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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06. 2023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서라고요? 上

도전! 한복모델 선발대회

살면서 내가 이걸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도전이나 해볼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폴댄스 배우기일 것이고 철인 3종경기 일 것이며, 힙합비트를 만드는 것 일 수 있다. 가슴속에 꽁꽁 숨겨두고 혼자만 알고 있는 로망 아닌 로망. 넘기고 싶은 임계점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런 일들 중 하나가 수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던 물인데, 이걸 극복하고 나면 더 이상 무서운 일이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속의 바람 같은 게 있었다. 직접 부딪히고 깨져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생각보다 여전히 무서운 것들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큰 산은 넘기고 나니 다른 산들은 좀 작아 보이는 효과가 있기도 했다. 심리적 허들이 낮아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듯싶다.


성인이 되고 나서 정확히는 이런저런 힘든 시간들을 지나고 나서 병적으로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사진 찍기, 나서서 이야기하기, 타인의 시선이 쏠리는 일을 하기 같은 것들을 굉장히 의식적으로 피해 가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삶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쩔 때는 세상과의 맞짱에서 졌다는 패배감이 들기도 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었을까? 알고 싶지도 않고 스스로 알려고 하는 의지도 없다.


한참 덥던 날이었다. 친구A가 나에게 링크 하나를 보내주었다. 가장 크게 보이는 활자는 '대한민국 한복모델 선발대회'였다. A는 나에게 관심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스치듯 말했다. 아니 무슨 모델대회를 내가 어떻게 나가.. 미치지 않고서야. 당시의 나는 스트레스 관리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 보니 몸무게의 앞자리가 변해 있었다. 그로 인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나 의지 같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었다. 한복모델이라는 단어를 보고 춘향이 선발대회 정도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차피 나가지도 않을 것, 뭐 하는 대회인지 살펴나 보자는 생각으로 훑어보는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일반인이 즐기고 주인공이 되는 대한민국의 대회!' 일반인이 즐기는 대회라는 게 존재한다고? 이후의 문장이 더 파격적으로 보였다. 키, 몸무게, 외모와 상관없이 한복과의 어울림을 보는 대회라는데 순간 혹했다. 어차피 나가진 않을 건데 어떻게 신청하는지만 보자!로 생각이 옮겨갔다. 모든 일의 중심에는 '나가지 않음'이 전제해 있었다.


역시나 공짜로 나갈 수 있는 대회는 아니었다. 참가비가 15만 원이 드는데 예선에서 탈락을 하면 15만 원을 그대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떨어지면 돌려주는 거야? 여기서 완전 혹했다. 이쯤에서 무언가에 홀렸던 것 같다. 예선에 지원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전신샷 하나, 바스트샷 하나 총 두 장의 사진을 넣고 지원동기, 포부 같은 것을 적어 내면 끝이었다. 집에서 최대한 공을 들여서 화장하고 벽에 딱 붙어서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아무리 봐도 영.. 너무 평범하기만 했다. 이런 사진으로 예선을 붙겠어? 그래도 대회인데 모델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지원을 많이 하겠어. 움츠러든 마음으로 지원을 했다.


결과는 며칠 뒤 문자로 전달을 해준다. 덜컥 합격을 한 것이다. 세상에. 내가 진짜 합격을 했다고? 이거 그냥 깔아주는 용으로 뽑은 것 아니야? 의심병이 돋아서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경쟁률을 확인해 봤다. 내가 4명을 제치고 합격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친..'


기쁜 마음 앞에 이거 미친 것 아니냐는 마음이 먼저 훅하고 들어왔다. 이게 진짜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4명 중에는 그래도 1등이라 뽑혔다고 생각하니 이걸 그냥 대충 할 수 없었다.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될 것이라는 전제는 일말도 없었다. 부랴부랴 유튜브며 블로그에 이 대회에 대한 정보는 있는 대로 수집했다. 아니 생각보다 무대가 크잖아? 내가 이걸 할 수 있으려나?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피눈물 같은 나의 15만 원은 돌려받을 수 없는 강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선택지는 두 개였다. 15만 원을 버리고 도망간다 아니면 눈 딱 감고 들이대본다. 하고 후회 안 하고 후회 중에서는 무조건 하고 후회하는 경험주의형 인간이다. 사실상 도망은 내 선택지에 딱히 없었다. 살면서 아무리 거지 같은 일일지라도 도망을 간 적은 없었다. 이건 나의 자부심 중 하나이다. 순간의 두려움이 만들어 낸 선택지였고 최소한 돈 낸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만 그리고 내 마음이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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