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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07. 2023

자아와 자존감에 대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단상

한 인간을 구성하는 '감'들이 있다. 자신감과 자존감. 그리고 '심'들도 있다. 자존심, 자긍심, 자부심. 이 중에서 사람답게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자존감이라는 단어보다는 자신감, 자존심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20대 초중반 어느 즈음부터 유행처럼 자존감이라는 말이 우후죽순 보이는 것이다. '자존감 올리는 법', '자존감 낮아 보이지 않는 법', '자존감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법'등의 콘텐츠들을 엄청나게 많이 접했다. 뿐만 아니다. 셀프 자존감 테스트라는 뭔지도 모를 테스트 같은 것들로 자기의 자존감이 몇 점인지 기어코 확인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 눈에만 그런 것들이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유행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유행을 습득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사람들이 입을 모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입니다 여러분!이라고 확성기를 켜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자존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나 빼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자존감이 그렇게 중요하다며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으니 나 역시 시류를 따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행동은 남들이 봤을 때 자존감이 낮아 보일 텐데. 남들이 나를 얕잡아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점점 기저에 깔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 스스로를 제단 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 정도 시련을 가지고 힘들어하다니. 이건 네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래! 돌이켜 생각을 하면 온 세상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 같다.


이 무렵 자기애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고 어쩌고 저쩌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지만 자기애가 중요하오- 자존감이 중요하오- 하는 식의 이야기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독하게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죽도록 미울 때도 있고 진저리 나게 싫을 때도 있는 게 사람 아닌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죽도록 사랑만 할 수가 있지? 오히려 이질감이 들었다.


친구 중에 J라는 아이가 있다. J와 나는 20대의 가장 뜨거웠던 시절을 함께 일하며 만난 친구인데 이 친구는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 많은 귀감이 되는 친구이기도 하다. 거의 10년이 지난 일이긴 하지만 그때는 엄청나게 무서운 상사와 일을 하고 있었다. 작은 실수에도 세상 붓같이 화를 내고 욕도 서슴지 않는 상사였다. 지금이라면 시대가 변했기에 큰일이 날만한 사람이지만 그때는 그게 그냥 좀 공공연하게 넘어갔다. 아무튼 하루에 한 번은 꼭 혼이 나도 욕을 먹고 그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죽상을 하고 힘들어하곤 했는데 친구 J는 좀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별 욕을 다 먹어도 한 2-30분 지나면 다시 원래의 쿨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퇴근 후에 무엇에 술을 마실지 고민하고 있다. J는 회복탄력성이 심하게 좋은 편이다. 그러면서 항상 내게 말한다.


"난 원래 생각이 없어서 잘 잊고, 잘 까먹어."


아직까지도 살면서 얘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지독하게 회복탄력성이 좋은 J를 보면서 생각했다. '사람은 자존감보다 중요한 게 회복탄력성이야!'어떤 일이 있어도 쉽게 흔들리지도 무너지지도 않는 그 친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이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J를 보니 기억력이 좋지 않아야 한다. 기억력이 30분 이내이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모욕적인 소리를 들어도 '음~ 나 그런 사람 아닌데? 네가 뭘 알아?'라고 생각할 줄 아는 철면피라는 이름의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에 자존감을 한 스푼 얹으면 완성이다.


내가 생각하는 살면서 필요한 자존감은 100점 만점에 40점 정도이다. 스스로를 어느 정도는 사랑하되 미워할 수 있고, 그러나 완전히 바닥을 치지는 않는 정도가 내 기준에서는 40이라는 소리다. 반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의 자존감이면 충분하다. 이 정도면 세상의 풍파에서 나를 지킬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해 꼭 그렇게까지 잘 알 필요도 없고 잘못을 했으면 미워하고 자책도 해야 한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건 어느 한순간의 기억으로 충분한 것 같다. 내가 이뻐 미칠 것 같고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죽겠는 그런 찰나들의 기억이 촘촘하게 쌓여가면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꼭 그게 지속적이지 않아도 된다. 단발적이고 스쳐가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때문에 '어떤 시련과 거지 같은 일들 속에서도 이뻐 죽겠는 나'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회복탄력성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억력, 철면피, 약간의 자존감 콤보라는 것이다. 이런 나만의 개똥철학은 10년째 혼자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택시를 타고 행선지로 향하는 중이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는데 정신과 전문가라는 사람이 회복탄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존감보다 중요한 게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개똥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자존감이나 자신감 뭐 이런 것들에 대해 심도 있는 공부를 해본 것은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위의 글들은 아예 엉터리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스컴에 흘러나오는 이야기들로 자신을 재단하는 일은 멈췄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내 MBTI가 뭔지 잘 몰라도, 내가 나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도, 나만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아도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이 만들어놓은 프레임 안에 나를 가둬두는 것만큼 자아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도 없는 것 같다는 게 나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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