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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09. 2023

나의금주일기上

스트레스를 대하는 자세.

나를 표현하는 문장들 중에 가장 명확하고 임팩트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근면성실한 술쟁이. 그게 바로 나다. 나는 말 그대로 매우 근면성실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이었다. 노동주의 달콤함에 눈을 떴을 무렵이었다. 술 마실 생각으로 하루를 버텨내던 시절이 있었다. 몸 따로 영혼 따로인 나의 눈을 반짝이게 만들어 주는 건 동료들과의 달콤한 술이었다. 일의 특성상 이르면 8시, 늦으면 12시가 넘어서 마치는 날이 많았고 우리에게는 늘 밤이 짧았다. 그러다 보니 술을 빨리 마시는 매우 좋지 못한 습관이 몸에 배어버렸다.


월화수목금금금은 나의 알코올 사이클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맥주 한 잔으로 끝이 나던 소주 3병으로 작살을 내던 내 삶에 술을 빠질 수가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술쟁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가면을 쓴 알코올 의존증이었다. 정말 다행인 건 술 마시고 큰 사고를 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강력한 귀소본능이 기저에 숨 쉬고 있던 나는 술에 어느 정도 취했다 싶으면 정신줄을 꽉 잡고 집에 돌아갔다.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하고 나서 어느 정도 술에 깨서 잠드는 것이 루틴이었다. 이렇듯 큰 충격이 없으니 나의 알코올 생활은 쉽게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2020년부터는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돈벌이도, 가족 간의 문제도 무엇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혼자 술을 마시는 날도 너무나 많아지고 있었다. 나 자신이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매일같이 진하게 받고 있었다. 하지만 맥주로 가득 찬 진흙탕에 빠져버린지가 오래되었고 스스로 끊어지내 못하는 더욱 깊은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벼락을 맞은 사람은 자신이 그날, 그 장소에서 벼락을 맞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벼락이 내리치는 날 피뢰침을 들고 옥상 한가운데에 서서 쇼를 하는 게 아닌 이상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은 예상치도 못하게 몇 천만분의 확률을 뚫고 벼락에 맞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내 인생에도 벼락이 찾아왔다. 피뢰침도 없었고 비 오는 날 옥상에 가지도 않았으니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어느 날 아침 갑작스럽게 귀가 먹먹한 것을 느꼈다. 술을 그렇게 퍼마시면서도 건강염려증이 심한 편인 모순적인 사람이다. 이러다 말겠지. 넘기고 있었는데 점점 증상이 심해지고 있었다. 먹먹증이 생길 만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동네 병원에 내원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비행기 한 번을 타고도 한 달간 먹먹증이 이어지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신빙성 있게 느껴졌다. 적당히 약을 지어줄 터이니 일단은 먹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며칠 지나니 귀가 씻은 듯이 나았다.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알코올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귀가 다시 먹먹해진 것이다. 문을 쿵하고 닫는 소리,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 물건을 탁-하고 놓는 소리 등에 귀가 울리면서 불편감이 심해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증상이 가장 심했는데 공포감이 장난 아니었다. 귀로 유명한 선생님이 계시다는 병원을 방문했다. 명의가 계셔서 그런지 대기만 1시간을 넘게 했다. 선생님은 세상 인자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저주파성 난청인 것 같네요.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으셨나요?"


"스트레스요? 아 네. 근래에 좀 받은 편이에요."


어지럼증, 먹먹증, 이명 이 세 가지 증상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어지는 걸 의학계에서는 '메니에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서 어지럼증만 없다면 그건 저주파성 난청이라고 한단다. 난생처음 알게 되었다. 저런 병이 있는지. 선생님 저 나을 수 있는 거죠? 나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어요. 무언의 메시지를 선생님은 읽으셨다. 카페인, 염분, 수분은 절대주의를 해야 한다는 당부를 하셨다. 귀에 카페인이 좋지 못한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선생님께 조심스레 술은 어떤지도 여쭈었다. 당연히 마셔도 된다고 하는 의사가 어디 있겠는가. 자제하라 하셨다. 병원을 나서면서 알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끊어야 할 타이밍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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