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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10. 2023

나의금주일기下

술보다 어려운 것이 있었다.

"이제 정말 끊어야 할 타이밍이 왔구나."


끊어내야 하는 걸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지난 과오들에게 심판을 받게 되었다. 전날 잔뜩 술 마시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해장을 일삼던 나에게 술과 커피를 모두 끊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세상에게 버림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반강제적인 느낌이 없지 않긴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악순환의 꼬리를 잘라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술은 100% 확실하게 습관이다.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슬프면 슬퍼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바람이 선선하면 선선해서 술 생각이 난다. 파블로프의 개가 되는 상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별의별 이유를 다 갖다 붙이면서 술 마셔야 하는 상황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일상의 중심에 소주병이 우뚝 서있게 된다. 그렇게 술은 습관으로 서서히 젖어들어간다. 술과 연관 짓던 생각들을 다른 쪽으로 화제전환하는 힘이 필요하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 그뿐이다. 슬프면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어보자. 비가 오면 디카페인 커피를 한 잔 해도 좋다. 바람이 선선하면 드라이브를 가보자. 술 마시면 운전을 할 수 없으니 밤공기의 선선함을 드라이브로 달래 보는 것이다. 사고를 전환해 주고 술로 채웠던 순간들을 다른 것으로 대체를 해주다 보니 서서히 술 생각이 옅어지고 있었다. 한 이틀 단주를 하니 삼일차는 쉬웠고 삼일을 넘어가니 2주까지 생각보다 무난하게 넘어갔다. 안 마시다 보니 생각이 나지 않게 되었다. 술은 습관이라고 확신한다.


의사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해주는 유튜브 채널을 종종 본다. 술, 담배, 커피를 끊는다고 치면 술과 담배는 단칼에 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커피는 달랐다. 두 잔 마시던 것을 한 잔으로 줄이고 한 잔 마시던 것을 하프 카페인으로  줄이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서히 줄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뭐든 한 번에 잘라내는 쪽이 편한 법! 상여자스러운 시원시원함으로 단칼에 잘라내는 쪽을 선택했다. 사실 이 무렵 나는 술보다도 카페인 의존이 더 심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이 깨지 않는 나날이었다. 매일 아침 메가커피로 달려가서 아이스라테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뇌가 잠에서 깨지를 않았다. 카페인을 단절시켜 버리니 한 일주일은 병든 닭처럼 하루 종일 하품하다가 보낸 것 같았다. 몽롱한 상태로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기가 막히게 괜찮아졌다. 커피 없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내 경우는 그래도 쉽게 끊어낸 편이다. 그러나 친구 A는 일명 '카페인 두통'이라 불리는 두통으로 한참을 고생했다. 편두통도 아니고 그냥 두통도 아닌 것이 묘하게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그러나 믹스커피 한 잔을 마셔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기묘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서서히 커피를 줄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단주와 단카(카페인 끊기)를 동시에 해본 결과 나는 술보다 커피에 대한 의존이 더 높았던 걸 알게 되었다. 단주는 생각보다 쉽게 했지만 카페인은 정말 어려웠다. 몸이 지치거나 힘들 때 무지성으로 커피를 쭉 들이켜면서 정신을 차리던 순간들이 너무나 간절했다. 특히나 커피 맛집을 가게 되었는데 디카페인을 취급하지 않을 때는 과장 조금 보태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향긋한 커피를 냄새만 맡아야 하는구나. 억울하기까지 했다. 술자리 약속이 사라지다보다 친구를 만나도 카페를 가야만 했다. 디카페인 음료를 팔지 않거나 논카페인 음료가 전부 단순당 덩어리인 경우는 정말 난감했다. 그럴 땐 울며 겨자 먹는 마음으로 그냥 당덩어리를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술을 끊은 뒤로 주변에서는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네가 술을 끊었다고? 개가 똥을 끊지!'대부분이 너 어디 얼마나 가는지 내가 지켜본다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아가리 다이어터처럼 아가리 단주러였던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나의 진중하지 못했던 태도들이 부메랑이 된 것이니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이쯤 되니 나도 오기가 생겼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이거야! 하는 승부욕 같은 것이 생겼다. 결국 그렇게 12월인 지금 거의 반년이 넘게 술과 작별을 하고 지내는 중이다.


나의 단주는 주변에 약간의 이슈를 불러왔다. 몇몇은 어떻게 해야 단주에 성공할 수 있냐고 앓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경험상 술을 완전히 끊어 내는 것은 공포심이 필요하다. 이렇게 마시다가는 아닌 말로 좆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뼈에 새겨지는 충격이 필요하다. 별다른 이유 없이는 스스로의 의지를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물론 나 같은 중증 술쟁이였을 때의 경우이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이만저만한 일을 겪고도 아직 술 못 끊었잖아 깔깔깔. 저런 얘기는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정말 그 이만저만한 사건 속에서 공포를 세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실 과거의 내가 했던 이야기였다. 정말 단주인간이 되고 싶은가? 스스로 대단한 충격을 줘라. 물론 그런 일이 있기 전에 끊어내는 것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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