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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원사계 Dec 11. 2023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방법

꿀밤 놓고 끌어안아 버리기.

뭐 했다고 벌써 12월이 된 것일까. 1년이 마무리되는 12월에 뭔가 지독하게 뿌듯하거나 올 해의 나 자신이 사랑스러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잘 없는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오는데 뭐 하나 이뤄낸 것이 없는 자신이 너무 한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지난 11월의 시작점에 서있을 때 운이 좋게도 브런치에 작가로 데뷔할 수 있게 되었다. 한 3년 간 가슴속의 로망처럼 품고 있던 브런치였다. 글을 쓰고 싶어도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 고귀하시고 품위 있는 플랫폼이다. 그런 브런치에서 나를 작가로 끼워준 것이다. 내게도 같은 곳에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소속감이 생긴 것이다. 11월의 나는 생각했다.


'나 이제 브런치 작가야! 무조건 1일 1 업로드야!'


브런치에는 아주 잘 정돈되고 예쁜 꽃다발 같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잔가지를 잘라내고 불필요한 꽃잎들은 손질을 해줘야 한다. 누가 봐도 일목요연하되 자신의 생각이 잘 들어가 있으며 꽤나 유머러스한 글을 써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것이 있었다. 익명의 누군가가 내 글을 한 글자씩 정독하면 본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핑-하고 도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나에게는 막중한 임무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까. 어떤 걸 써야 할까.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같은 의지는 어느 순간 성냥개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 의지의 불씨에 압박이라는 찬물이 확 쏟아졌던 것이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별 다른 소득 없이 성냥의 불이 툭하고 꺼져 버렸다. 그리고 12월이 되었다. 지난달의 나태함과 도전 정신없음이 부메랑이 되어 비수로 꽂혔다. 나 자신이 너무 고달팠다. 그렇게 12월을 시작하면서 생각했다. 이번 달엔 정말로 1일 1 업로드 지켜보자!


한 달을 세 개로 쪼개면 지금 3분의 1 지점까지 와있다. 열 홀을 어찌어찌 잘 써내려 가고 있다. 아직까지 써야 할 날이 더 많은데 오늘은 머리가 돌아가지를 않아서 너무 고달프다. 고작 10일 썼다고 벌써 이런다고? 그냥 나한테 꿀밤을 한 대 놔줘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럴 수 있다고 감싸야하는 것일까. 그냥 꿀밤 한 대 놔주고 감싸줘 버렸다. 이런 날에는 어떤 글을 써야 하지? 그냥 한 번 재껴버리고 말까? 수 없이 고민을 하다가 한 페이지를 거의 다 채웠다.


그러나 완성된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완벽한 수준의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타협이 가능한 만족의 범주 안에 있는 글들만 발행을 해왔다. 하지만 오늘은 타협이 되지 않는다. 다른 주제로 다른 글을 써보았다. 이 역시 타협점이 없는 글이었다. 이런 날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브런치를 운영하다 보면서 여러 작가님들의 소중한 글을 만나고 있다. 그중엔 진정으로 하루 한 편의 글을 발행하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대체 어떻게 하시는 건지 경이롭다는 생각뿐이다. 이 글을 보는 다른 작가님들 중에서도 분명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계실 거다. 나만 이런 쓰레기 같은 고민을 하는 작가인 건가? 그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두 편의 글을 갈아엎고 결국엔 그냥 조금 솔직해지는 쪽을 택했다. 내일은 좀 더 나와의 타협이 되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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